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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구공오 Apr 05. 2020

5월이 되면, 체육대회를 하자!

너희들은 뛰고, 우리는 기록한다.

새 학기가 익숙해지고, 친구들과 오순도순 이야기를 하며 추억을 쌓아가고, 치열한 중간고사를 마친 뒤에도 치열한 경쟁을 요구하는 것이 있었으니, 푸른 녹음과 쨍쨍한 햇빛이 함께 학생들을 기다리는 체육대회이다.


1학년 때는 방송부로서 학교 공식행사를 참여한다는 게 너무 설레었지만, 2학년 때는 네가 기어코 또 왔구나.란 마인드로 설렘은 모두 물거품이 되어 날아가버렸다. 1, 2학년 때의 체육대회는 전쟁 그 자체였다. 방송부로서 학생들이 하는 모든 체육 활동을 캠코더와 카메라로 기록해야 했기 때문에, 자신이 참여하지 않을 땐, 카메라나 캠코더 또는 방송 지원에 꼭 붙어 있어야 했다.


내가 체육 대회에서 처음으로 땀을 흘린 것은 체육대회 시작을 알리는 교장선생님의 훈화 말씀의 환경을 준비하는 것이었다. 무거운 마이크와 전선 더미가 있는 큰 가방을 이리저리 옮기며, 큰 단상을 방송부원들과 끙끙 옮김으로써 운동장 한 바퀴는 이미 뛰었다고 자부할 수 있을 정도로 정신도 없었고, 땀도 수북하게 흘렸다. 솔직히 말하면, 그때부터였는지. 역시 방송부는 노동부가 맞아!란 생각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우리 학교는 3대 노동부가 있었다. 합창부, 미술부 그리고 방송부. 이 3개의 동아리가 무척이나 힘들고, 빡빡하였다. 오죽하면, 방송부원끼리 오후 2시 점심시간에 모일 때마다 방송 노동부라고 동아리명을 바꿔야 한다면서 극대노를 하였다. (물론, 방송부의 이름은 channel H이었다.)



노동하면 또 생각나는 재밌지만, 소름 돋는 에피소드가 있다. 내가 2학년이 되었을 때, 동아리 선생님과 다 같이 체육대회 준비에 대해 회의를 하였다. 그때, 동아리 선생님은 이번엔 새롭게 해 볼까?’라면서 새로운 장비를 도입시키자! 란 열정이 불타오르는 분이었다. 드론, 새로운 카메라, 촬영용 큰 캠코더를 사자!라는 열정은 너무 좋아서, 방송부원 모두가 동의를 하였다.


그런데, 5000m 이어달리기란 체육대회의 마지막 종목을 좀 더 역동적으로 캠코더에 담고 싶다 하였다. 그 방법은 큰 운동장 트랙 안 쪽에 레일을 다 깔고, 한 사람은 수레 위에서 카메라를 찍고, 몇 사람은 그 수레를 선수들이 뛰는 동시에 계속 밀어야 한다는 소리였다. 그렇게 해서 역동적인 모습을 담아내고 싶다는 담당 선생님의 바람이었다. 하지만, 그걸 듣고, 자신들의 모습을 상상을 한 방송부원과 나는 결사반대를 외쳤다. 중학교와 고등학교가 같이 쓰는 운동장이다 보니 정말 컸었는데, 그걸 몇 바퀴를 선수들과 뛰어야 한다는 게. 저걸 같이 뛸 바엔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다 란 마음의 소리가 나올 뻔하였다.


 다행히도(?), 담당 선생님의 바람은 하나도 이뤄지지 않았다. 지금도 다시 생각해보면,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체육대회에서 안 좋은 일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만년 캠코더 담당이었던 난, 좋아하는 아이가 나오면, 그 아이를 캠코더로 확대하여 자세히 볼 수 있었고, 또한 엄마와 공무원 시험을 치른다는 약속으로 얻어낸 카메라로 내가 좋아하는 친구와 선생님들의 사진을 담을 수 있었기 때문에, 소중한 추억으로 남아있다.


책상과 의자, 책에 갇혀 있는 일상에 벗어나서 다 같이 운동복으로 갈아입고, 열심히 땀을 흘리는 순간, 학년별 이어달리기를 할 때 누가 넘어져 다치지 않을까 조마조마하면서 지켜보았던 순간, 자신의 팀이 이겼다고 기뻐하고 져도 서로를 위로한 순간 그리고 지나가던 선생님들에게 장난을 걸었던 순간.


그 모든 순간들이 그립고, 아련하게 남아있다. 그 모든 순간들을 사랑했고, 지금도 다시 돌아가고 싶을 정도로 사랑하는 순간들이다. 다들 학창 시절을 생각해보면, 순간들이 모여 돌아가고 싶게 만드는 그리운 마음을 만들게 할 것이다. 돌아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기에, 우리는 그 모든 순간들을 단순히 추억으로 포장하지만, 가끔은 꺼내어 그리운 마음을 깊이 앓아보고, 사랑하는 시간을 가지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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