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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공구공오 Apr 06. 2020

밤이 되면, 카메라를 끄자!

누군가와 비교를 한다는 것에 대해.

브런치 작가가 된 지금, 고등학교 방송부 기억들을 꺼내어 요리조리 조각들을 맞추기 위해  

방송부원들의 기록들을 따라가 보면, 느꼈던 감정들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방송부원으로서 봄날의 감정이 진하게 남아있는 순간이 있다. 

방송부원이 되기 전, 이동수업을 하러 가던 중 여러 사람을 스쳐 지나던 순간 정말 예쁜 아이를 본 적이 있었다. 벚꽃이 만개한 그 계절과 그 아이의 웃음은 정말 닮았고, 싱그러움 그 자체였다.

 


그 기억이 아직까지도 생생히 남아있었다. 그 기억이 지금보다 더 뚜렷했을 과거의 내가 방송부에 들어갔을 때, 그 아이는 아나운서로 나와 같은 방송부 생활을 함께 하게 되었다. 많이 소심했던 나에게 친절하게 싱그러운 웃음으로 다가와주었고, 먼저 말을 건네 준 아이를 보고, '웃는 모습도 저렇게 예쁜데, 어찌 마음까지 이렇게 고울까.'란 생각을 품었다. 많이 소심했던 나라서, 그 아이가 나에게 말은 건네주어도 낯 간지러워 처음엔 제대로 답을 하지 못하였다. 친절함의 질문을 어색한 답변으로 돌아갔던 점이 많은 후회를 남겼다. 그리고, 좀 익숙해질 무렵 용기를 내어 아이에게 너 방송부로 알기 전에 네 웃는 모습이 너무나 예뻐서 아직도 기억해.란 이야기를 하자, 그 아이는 그때의 싱그러운 웃음으로 답해주었다. 

 


그 외에도, 방송부에는 예쁜 아이들도 많았고, 또한 각자의 개성을 뚜렷하게 가진 아이들도 많았다. 그중에서 제일 생각나던 사람이 웃음이 참 예쁜 그 아이였다. 하지만, 그 밝은 감정으로만 가득 차면 좋았을 내 기억 뒤 편에는 어두운 면도 분명히 존재하였다. 



저 아이들은 얼굴도 예쁘고, 뛰어난 재능도 가지고 있고, 성격도 좋아. 근데 난 뭘 까?’ 

아마, 이 생각의 시점으로 난 가진 게 아무것도 없으니, 무엇이라도 해야만 해!란 강박이 날 옥죄어 왔었다. 학교 행사나 방송부 역할에 참가하여, 내 자리를 확고히 다지고자 노력하였고, 결국 그것은 나중에 날 지치게 만들었다. 어설픈 위로로 그 열등감으로 뭉쳤던 시간을 그럭저럭 어느 정도는 흘러 보냈지만, 어느 순간 아무런 위로도 되지 않았다. 결국 그 마음들을 외면하거나 내치면서, 지금까지 살아온 거였다.

 


솔직히, 대학에 와서도 남과 비교하는 시간은 계속 되었다. 에세이로 내 마음들을 달래 보고했지만, 안되었다. 대학에서는 성적으로 남과 비교를 하였다. 대학교는 나와 진로가 비슷한 아이들과 경쟁하는 거라, 그 진로 분야의 실력과 재능이 비교하기 더 수월했기 때문에, 성적이 실력과 재능의 수치를 나타낸다고 생각했다. 

그때, 나와 성적으로 경쟁을 하는 친구가 있었다. 난 그 친구의 성적을 이기려고 노력했으나, 실패하였고, 또 다른 열등감이 튀어나왔다. 역시, 나보다 머리도 좋다.’,’ 쟤는 이런 감정 안 갖겠지? 날 신경조차 안 쓸 거야.란 나 자신을 갉아먹는 열등감. 열등감은 불덩이처럼 내 마음 한가운데에서 날 끙끙 앓게 하였다. 하지만, 그건 나만 느끼는 감정이 아니었다. 경쟁 친구 얘기만 나오면, 내가 그녀를 신격화 시키며 칭찬하니, 주변 친구들은 내 속을 알고 있지만, 무언가를 알려주지 못해 답답해하였다. 도저히 나 자신을 지하까지 끌어내리며, 남을 칭찬하는 것에 질린 한 친구가 내게 말해주었다.

 



그 애한테는 비밀인데, 걔도 참 많이 불안해하고, 힘들어하더라. 네가 언제든지 치고 올 것 같다고. 자신이 뒤쳐질까 두렵다고 해.

 



친구의 말을 듣자, 나 혼자만 열등감을 가지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란 게 참 놀라웠다. 그 아이는 나보다 좋은 능력을 가지고 있으니 절대 불안해하거나 두려운 감정이 없을 줄만 알았는데. 그제야, 조금은 알게 되었다. 다들 나와 같은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다들, 불안해하고 힘들어하고 행복해하는 타이밍이 남들과 다 다를 뿐이지 똑같은 감정을 겪으며 살아간다는 것을. 그러니 그만, 자신을 지하로 끌어내리고, 낮추지 않아도 된다고. 

그냥, 너의 속도에 맞춰서 살아가라고. 화려하고 장대한 풍경을 가진 바깥이 아닌 초라하고, 미워서 마주하기 싫어도 나를 위로하고, 생각해야 한다고. 

 



하지만, 드라마틱한 상황은 없었다. 그냥 내 사고의 시야를 조금 틔운 것뿐. 여전히 난 남과의 비교를 통한 열등감을 마음 한 켠에 품고 있다. 도려내고 싶어도 도려 낼 수가 없다. 이제는 그냥 저것도 내 한 부분이라 생각하며, 살아간다. 그저 예전과 다르게, 앓고 자책하는 시간을 적게 할 뿐. 난 긍정적인 것만 마음 속에 놔두는 건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긍정적인 것이 반짝 반짝 빛나는 보석이고, 부정적인 것이 투박한 돌이라고 치자. 보석이 끝없이 펼쳐진 곳에 단 하나의 투박한 돌이 보인다면, 당신은 불안해할 것이다. 어디에서 이 돌이 나왔지? 이 많은 보석들이 돌로 바뀌면 어떡하지? 보석의 가치도 그만큼 떨어질 것이다. 널린 게 보석인데, 그거 하나 없어져도 상관없다면서. 그 반대의 상황인 투박한 돌만 한 가득 있고, 그 속에서 하나의 빛나는 보석이 보인다면, 그 보석에만 집착하지 않을까. 이 예시처럼, 보석과 돌의 가치가 공존하기 위해선 둘 다 적당히 있어야 한다. 긍정과 부정은 공존해야 한다. 그 두 가지 속, 어느 것에 더 시간을 쏟을 것인가가 자신이 남과 비교하는 것에 대한 사고를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방법이라 생각한다. 



 

가끔 SNS 계정에 그 싱그러운 웃음을 가진 아이의 사진이 올라오면, 부러운 감정도 들지만, 이젠 잘 살고 있어서 다행이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나와 같이 방송부를 했던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다. 그냥, 자신이 만족하는 인생을 살았으면 좋겠다. 물론, 나한테도.

 



"남의 인생은 편집이 완벽하게 된 흥미진진한 예고편이지만,
 자신의 인생은 편집이 안된 롱테이크 영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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