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movingyouth
Sep 04. 2020
kmdb에서 2020-08-24부터 2020-09-07까지 진행되는 【풍문으로 들었소: '컬트적인' 한국영화】 의 스타트를 드디어 끊었다. 19년 Bifan에서 본 <미지왕>이 충격을 안겨 좋았기에 이번 온라인 기획전에서 첫 번째로 볼 영화는 당연히 <미지왕>이 될 줄 알았건만. 따지고 보면 <미지왕>을 다시 보게 될 때 첫 감상만큼의 충격을 받기는 어려웠을 테고, 정신적으로 지치게 될 것이 뻔하기에 감상을 피하고 있던 건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다시 보고 어떤 점이 좋았는지를 얘기해보고 싶긴 한데.
그런 와중에 박노식이 감독한 영화가 리스트에 있는지는 몰랐었고, 박노식은 2020년 들어 가장 관심을 갖고 있는 '이름'이었기에 <왜?>를 보게 된 것은 수순상 자연스러운 선택이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기대했던 것보다는 재미없었다. 내가 봤던 박노식 감독의 영화들 중에서 가장 좋은 품질이었지만 그전에 봤던 작품들만큼 재밌게 느껴지지는 않았다. 아마도 영화를 계속 끊어봤기 때문에 재밌지 않았던 것 같은데. 그간 봤던 박노식의 영화들이 재밌었던 이유는 전체보다 부분에 집중하며 이 부분들을 뻔뻔하게 이어 붙임으로써 부분들의 합인 전체보다 부분 각각이 더 나은 것처럼 느껴지는 기묘함에 있다고 생각되는데, <왜?> 역시도 역시나 이런 선상에 있었지만 영화를 계속 끊어보다 보니 전체와 부분을 동시적으로 느낄 수가 없었던 것 같다. <왜?> 역시도 부분들만 떼어 보자면 골때리기 그지없지만, 최저 여건에서 최고 연출을 뽑아내려는 씬의 실험들은 이전에 본 작품들보다는 덜하다.
[아시아적 신체]에서도 박노식을 언급하며 설명되는 것이 전라도 사투리이기도 해서 박노식 캐릭터가 꾸준히 전라도 사투리를 쓰는 것이 어떤 감각을 풍기는 것인지 궁금해졌다. 그러니까 from 전라도 캐릭터라는 것이 동시대 관객들에게 어떤 감각을 안기는 건지. 사투리를 잘하는 연기자가 현실감 있는 뫄뫄 이상의 무엇을 담보하나. 리얼리즘....(이상의 무언가..)
박노식에 대한 관심이 동하고 있어서 그것만 눈에 보이는 거 같은데 올해 유독 영자원에서 박노식 이름을 많이 접하는 것만 같아서 너무 반갑다. 이번 영화 품질이 높았는데 영자원 창고에 있는 박노식 감독 작품 중에서 예외적인 건가 궁금하기도 하다. 이제 올해 <악인이여...>를 볼 수만 있다면 여한이 없을 것 같다.
<왜?>에 대한 높은 기대가 꺾인 뒤에 본 <시실리 2km>는 기대 없이 가벼운 맘으로 봐서 더 좋게 느껴졌다. 신정원 감독 신작이 개봉을 앞두고 있고 꽤나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아서 궁금하기도 했는데. 거진 다 재밌었는데 마지막 대낮에 마을 주민들 옮겨가며 귀신 빙의되는 장면이 특히 유쾌했다. 내지인과 외지인이 같은 공간에서 계속 함께함에도 꾸준히 동떨어져있는 것 같은 느낌이 실패인 듯 성공인 듯 뭔지 모르겠어서 더 좋았고. "Feels so good"을 오랜만에 듣게 된 것도 좋았다. 아! 여기서는 귀신만 사투리 쓰던데.. 공포.. 스릴러.. 코미디.. 한국적 교훈..에 아주 약간의 로맨스까지 이렇게 쓰고 보니 진짜 보고 싶지 않은 조합이고 너무 예상 가능한 망작의 영화일 것 같은데 일관되게 재밌게 느껴졌던 거 보니 감독 연출이 영리했던 게 아닐까 싶고 신작을 챙겨봐야겠다. 그런데 이 영화도 이 기획전에 담긴 거 보면 개봉 성적은 안 좋았단 것인데,
기획전 소개에도 굳이 '컬트적'이라고 쓰겠다고 말하고 있지만 '컬트영화'도 모르는 판국에 '컬트적'이라는 말은 더 잘 모르겠다. 뉘앙스는 잘 알겠다. 그런데 여기에 또 '웰메이드'를 '컬트적'에 대비되게 붙여놓으니 또 모르겠다. "유행하는 장르들의 혼종", "마이너들의 열성적 지지", "동시대 보기 힘든 새로운", "개봉관에 오르고", "외면받는"이 모든 것이 가능한 범주로 '컬트적'인 무엇이 있는 것인가! 아 진지하게 쓴 건 결코 아니고 그만큼 이를 '컬트적'인 걸로 퉁치고 간 기획자님의 아이디어가 영리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