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리에이터클럽 기록 <타인으로 인해 행복했던 경험>
2020.01.03 시즌 크리에이터클럽(크클) 쓰다보면팀 주간미션으로 작성한 글입니다.
미션 내용
[에세이 : 남] 타인으로 인해 행복했던 경험, 혹은 그 반대의 경험, 그리고 그 과정에서 나를 발견했던 일들에 대한 이야기를 적어주세요!
사랑하는 이의 지친 눈동자를 들여다본 적이 있다. 오래간만의 재회로 들뜬 기분으로 나간 나와 달리, 약속 장소에 나온 그이는 금방이라도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정작 그런 모습을 본인은 모르는 듯했다. 그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미소를 짓기 위해 애써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좋아하는 작품 이야기가 나오면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힐 정도로 즐거워하던 사람이었는데, 내가 기억하는 그의 여름 같은 싱그러움이 보이지 않았다. 뜨거운 모래사장에서 주인을 잃고 한나절을 헤맨 강아지처럼 풀이 죽어 있었다.
일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고 말했다. 퇴근길에도 휴일에도 해야 될 일과 하지 말았어야 했던 일을 계속 생각한다고 했다. 자신은 영화 연출이 업이니 매 작품이 끝나면 현장에서 뛰어다니던 자신은 온데간데 없어지는 기분이라고. 극장에서 모두가 빠져나간 다음 아무도 보지 않을 때쯤 올라오는 엔딩크레딧에 이름 석 자, 그게 자신의 전부 같다고 표현했다.
그날 내가 어떤 말로 그를 위로했는지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다. 우리가 집으로 돌아갈 때쯤 그가 한결 밝아진 표정을 짓고 돌아섰는지도 기억이 없다. 그저 그가 느낀다고 했던 공허함, 그 자리에 꽤 오랫동안 함께 앉아있었지.라는 감상만 남아있다.
언젠가 이런 말을 들은 적이 있다. 사람들은 듣기 위해 듣는 게 아니라 말하기 위해 듣는다고. 그래서 사람들은 누군가 힘들다 할 때 자연스럽게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위로나 충고의 말을 '건네게' 된다고. 하지만 정작 우리를 일으키는 것은 어떤 조언도 귀담아들을 수 없고, 알 수 없는 패배감에 쌓여있을 때에도 혼자가 아니라는 것. 그런 시간을 보내는 동안 많이 아프겠지만 그런 너의 모습조차도 아름답다,라고 말해주는 것. 그런 은은한 온기가 얼어있는 몸을 덮이고 서서히 일어서게 해주는 게 아닐까.
물가에 비친 조명처럼 지친 눈동자가 아른거리던 그 날... 대화는 잊히고 시간은 예정대로 흘러갔다. 새벽을 지새우면 찾아오기 마련인 아침처럼, 인생은 괴로움 뒤에 얄미울 만큼 충만한 생명력을 가져다준다. 이러한 삶의 원리가 우리 모두에게 공평하게 작동하고 있는 걸까. 늦은 새해 인사에 밥 한 번 산다며 시간을 묻는 친구의 연락... 등 뒤에 내리쬐는 겨울 볕이 따사롭다.
크클기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