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일지 #4
그동안 덥고 바쁘다는 핑계로 산책을 게을리했습니다. 이대로라면 산책 없는 일상이 되어버릴 것 같아 비가 내리기 전 얼른 산책을 다녀왔습니다. 카페에 들러 살구청이 들어간 빙수를 먹고, 음악을 들으며 산책로를 천천히 걸었습니다.
얼마 전부터 전진희 님의 음악에 푹 빠졌습니다. 특히 피아노 연주곡이 담긴 [Breathing]이라는 앨범을 매일 듣는 중입니다. 이 앨범의 매력은 이미 유명하지만, 저는 이제야 알게 되었네요. 어느 날 불안장애가 찾아와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던 그가 모든 마음을 내려놓고 건반을 누르기 시작했던 것이 이 프로젝트의 출발이라고 합니다. 그래서인지 이 음악은 화려한 토핑이 없어도 담백하게 즐길 수 있었던 살구청 빙수를 닮았습니다.
이 앨범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고 힘을 뺐을 때 나오는 작품이 오히려 많은 이들에게 울림을 줄 때가 있습니다. 모두가 그렇다 할 순 없지만, 힘을 빼고 내려놓는 일은 나를 둘러싼 것들이 무너져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의 경지에 이르렀을 때, 그나마 남아있는 일말의 힘으로 행합니다. 그래서 내려놓는 것도 용기가 필요하다고 다들 말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아직 내려놓을 용기가 없습니다. 늘 잘하고 싶고, 실수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큽니다. 그 결과가 늘 좋은 것도 아니면서 말이죠. 그래서 이 음악을 들으며 걷는 이 짧은 시간 동안만큼은 우울해지다가도 차분해지고, 생각이 많아지다가도 비워지는 감정을 그대로 느끼며 내려놓는 연습을 조금씩 해봅니다. 오늘도 산책하길 참 잘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