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개발NGO 모금 광고의 어떤 불균형
* 아래는 국제개발협력민간협의회(KCOC에서 주최한 세이프가딩 사례공유회 <책임있는 시선: 인권을 존중하는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12월 10일)의 토론을 위해 준비한 토론문을 일부 수정한 글이다.
국제개발협력 NGO(이하 '국제개발NGO')의 모금 캠페인은 단체의 활동을 지속하기 위한 자원을 마련하는 수단이자 시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커뮤니케이션 과정이다. 하지만, 국제개발NGO의 모금 및 커뮤니케이션 문화는 오랜 기간 '빈곤 포르노'라는 비판을 받아왔음에도 큰 변화를 이루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이러한 문화를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먼저 국제개발협력의 커뮤니케이션이 어떤 가치와 원칙에 기반해야 하는지를 재확인하고, 모금 성과를 이유로 우리가 외면해 온 문제들을 직시할 필요가 있다. 이 글은 원칙의 관점에서 이 사안을 검토하며, 그 과정에서 드러나는 고민과 쟁점을 조명한다. 또한 성과와 원칙 사이의 불균형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대화 중심의 커뮤니케이션과 모금 실무자의 권한 강화를 제안하고자 한다.
현재 한국 국제개발NGO의 미디어 커뮤니케이션, 특히 모금 캠페인에서의 성과와 원칙은 심각하게 불균형한 상태다. 다시 말해, 모금액이라는 성과는 언제나 적극적으로 추구되는 반면, 빈곤 당사자 인권 보장이라는 원칙은 문제가 되지 않을 정도로만, 소극적으로 적용되고 있다.
국제개발NGO에서 하는 모금 캠페인의 목적은 무엇일까? 국제개발NGO에 일하는 사람들 중 빈곤을 줄이는데 필요한 자원을 모으고, 가난한 이들도 사람답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기 위해 기여하는 것이라는 데 동의하지 않을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동안은 ‘자원을 모은다’에만 너무 치중해 온 것은 아닌지 반성할 필요가 있다. 모금액을 늘리는 것이 모금 캠페인 제작의 중심이 되어 캠페인 주제와 내용도 단체가 중요하게 생각하고 단체가 잘하는 것이 아닌 기존에 모금이 잘 된 것을 기준으로 정해지고, 촬영 과정도 효율성을 중심으로 빨리빨리 그림을 담는데 치중되어 있다.
한편, 빈곤 당사자의 권리 보장은 대부분 소극적으로 이루어졌다. 동의서를 받는 것 같은 절차적 증빙을 남기는 정도, 그리고 개별 실무자들이 촬영 대상이 되는 빈곤 당사자들이 스트레스를 덜 받도록 우호적인 촬영 환경을 만드려고 개별적으로 노력하는 정도로만 이루어지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소극적인 방식은 KCOC 책무성 TF의 세이프가딩 권고*에서도 언급하는 문제의 근본 원인인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충분히 다룰 수 없다.
* 한국 국제개발협력CSO를 위한 세이프가딩 권고: http://ngokcoc.or.kr/bbs/board.php?bo_table=paper01&wr_id=196&&sfl=wr_subject&stx=%EC%84%B8%EC%9D%B4%ED%94%84%EA%B0%80%EB%94%A9&sop=and
촬영 동의를 받는 과정을 예를 들어보자. 2024 발전대안 피다*의 모금 캠페인 연구(연구보고서 2025년 1월 발간 예정) 인터뷰에 참여한 모금 실무자들은 촬영에 참여하는 빈곤 당사자들이 동의의 내용을 충분히 이해할 수 있도록 충분한 시간을 들여서 설명하는 등의 여러 노력을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사회적, 문화적, 경제적 차이로 인해 그들이 동의의 내용을 얼마나 충분히 이해하고, 자발적인 의사에 따라 동의하는지에 대해선 확신을 갖지 못하는 인터뷰이도 있었다.
* 발전대안 피다 홈페이지: https://pida.or.kr/
그렇다면 촬영에 관한 동의를 얻는 과정에서 인권 보장을 적극적으로 추구한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할까? 아일랜드 국제개발NGO의 연대체인 Dóchas에서 발간한 윤리적인 커뮤니케이션 가이드에는 촬영 전, 중, 후로 각각 나누어 해야 할 노력에 대해 언급한다. 촬영 전에는 당연히 충분한 시간을 들여 설명하는 것 외에도 예상되는 결과물과 유사한 영상을 보여주며 이해를 돕는다거나, 촬영 중에는 촬영된 이미지를 당사자에게 보여주며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은 삭제하고 선호하는 것은 따로 표시한다거나, 촬영 후에는 가편집본을 가지고 당사자의 의견을 청취하고 반영한다 등의 내용이 제시되어 있다.
* Dóchas의 The Dóchas Guide to Ethical Communications: https://www.dochas.ie/resources/communications-pe/ethical-communications/
좋은 말인데, 이걸 어떻게 다 하냐고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해도 ‘불평등한 권력관계’를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단체들이 모금액을 극대화하기 위해 어느 정도의 자원을 들일 수 있다면 사실 그보다 더 중요한 원칙을 위해서도 그만큼의 시간과 돈, 노력을 들일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모금액으로 기울어진 불균형을 바로잡기 위해선 무엇을 해야 할까? 모금 캠페인이 NGO의 메시지 전달에 그치는 게 아니라 대화의 과정이 되는 게 중요하다.
우선 단체 내에서의 소통이 필요하다. 연구를 하면서 놀라웠던 사실은 한 단체 안에서도 미디어, 모금 부서는 사업이나 정책 부서와 굉장히 단절되어 있다는 점이었다. 주제나 사례 선정을 모금 부서에서 주도하는 경우가 대다수였고, 모금 캠페인을 계기로 새로운 사업이 만들어지기도 했다. 하지만, 기획 단계에서부터 부서가 서로 적극적으로 소통한다면 모금 성과에 사고가 갇히는 것을 예방할 수 있고, 현장의 맥락, 인권 관점 등도 조화롭게 반영될 수 있다. 그리고 이와 관련해 모금부서가 모금액 외에 성과지표로 삼을 수 있는 대안적 지표도 필요하다.
단체와 시민 사이의 소통도 활성화되어야 한다. 다수의 미디어 캠페인, 특히 짧은 시간 안에 전달되는 TV 모금 광고의 경우 시간과 장소에 관한 정보를 제공하지 않은 채 나래이션과 이미지에 의존해 당사자의 가난과 고통을 전하는 경우가 많다. 이는 시청자들이 그 메시지를 일방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을 넘어 스스로 조사하고 판단하며, 단체와 소통할 여지를 주지 않는다. 이것은 책무성의 문제이기도 하다. 정보를 제공함으로써 그들이 제시하는 상황과 해결책에 대한 설명을 제공할 책임도, 나아가 공개된 정보를 통해 시민, 당사자, 그리고 그 외 다른 이해관계자들이 모금 광고가 단체의 미션과 가치에 따라, 혹은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게 구성되었는지를 판단하고 참여하도록 할 책임도 다하지 않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극단적인 예시지만, 이번에 연구 과정에서 한 어린이의 같은 이미지를 10년 가까이 모금 광고에 활용한 캠페인도 한두 개가 아니라는 것을 발견했다. 한 아이를 10년 동안 고통 속에 박제하는 그런 행위는 매우 부당하다고 생각했다. 이런 사례들이 모금 캠페인 전반의 신뢰도를 떨어뜨리기 전에 NGO가 먼저 정보를 제공하고 앞서 조심하며 시민과 대화하고 시민의 감시와 참여 속으로 들어가 국제개발NGO가 잘못하지 않도록, 빈곤 당사자에게 Do Harm하지(해를 끼치지) 않도록 주변에 많은 시선을 두어야 한다.
단체와 빈곤 당사자 사이의 소통도 더 활성화되어야 한다. 빈곤 당사자들이 제작 전 과정에 지속적으로 참여하며 자신의 의견을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많은 TV 모금 광고는 빈곤 당사자들을 순수한 피해자로 그리는 프레임으로 획일화되는 경향이 있는데, 사실 가난한 이들은 차별과 부정의를 겪기도 하지만, 동시에 그런 억압에 맞서 싸우며 살아가는 존재다. 이들의 주체적인 모습이 담길 수 있도록 기획 단계에서부터 함께 논의하고, 더 많이 조사하고, 콘텐츠 구성에서도 다른 사람이 대신 이야기하는 대신 이들이 더 많이 이야기하도록 하는 방안을 함께 찾아보면 좋겠다.
마지막으로, 모금 실무자들의 권한강화가 이루어져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이번 연구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것 중 하나는 현장에서의 모금 실무자들은 NGO 활동가로서 당사자의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애쓰고 있다는 점이다. 미디어 모금 캠페인 전반에 방송국 관계자나 실적을 중시하는 단체 내 상위 관리자의 영향력이 상당함에도 모금 실무자들은 현장에서 당사자의 권리를 보호하고, 최대한 편안하고 안전한 환경을 조성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말했다.
이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그리고 토론회에 온 사람들을 보면서 변화의 가능성은 이미 우리 안에 있다는 생각을 했다. 이렇게 현장에서 인권을 보장하기 위해 애쓰는 이들이 모금 캠페인 전반에서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지고, 권한이 강화된다면 NGO단체 내로부터의 변화도 기대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쉽게도 이들은 ‘빈곤포르노’라는 낙인과 모금 실적을 중시하고 비판을 리스크로 대하는 단체의 분위기로 인해 논의의 장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이들이 더 크게 목소리를 내고 다른 시도를 하기 위해서는 그들이 근거로 삼을 것들이 많아져야 한다. 그리고 우리의 비판은 ‘포르노’라는 낙인을 넘어 더 구체적이어야 한다. 이번 KCOC 토론회나 발전대안 피다의 모금문화 포럼*에서의 논의 내용이 그런 역할을 할 수도 있고 이러한 논의를 통해 모금 캠페인을 자세히 따져보게 된 사람들이 단체에 전달하는 의견이 그 근거가 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과거 인권 실무 그룹에서 발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도 도움이 될 수 있다. 다만 앞으로 더 보완될 여지가 있다면, 형식과 절차 중심이 아니라 ‘불평등한 권력관계’와 실질적인 적용 가능성을 중심으로 하는 구체적이고 적극적인 미디어 가이드라인을 수립하고, 캠페인 제작 과정에서 인권을 보호하고 과정을 통제할 수 있는 권한이 현장의 모금 실무자나 세이프가드 담당자에게 있음을 명시하면 좋겠다. 구체적으로는 미디어 가이드라인 수립 과정에 모금 실무자들이 각자 경험하고 시도한 내용을 적극적으로 반영하고, 방송국이나 외주 제작사와 협업하는 경우에는 계약서 등에 현장의 모금 실무자가 인권 보장을 위해 촬영 과정을 통제할 수 있다고 명시하는 것 등도 생각해 볼 수 있다.
*발전대안 피다의 인간존엄 모금문화 포럼 공지(보고서 2025년 1월 발간 예정): https://pida.or.kr/notice/?idx=130501013&bmode=view
**KCOC 아동권리 보호를 위한 미디어 가이드라인: http://www.ngokcoc.or.kr/bbs/board.php?bo_table=paper01&wr_id=93&&sfl=wr_subject&stx=%EB%AF%B8%EB%94%94%EC%96%B4&sop=and
정리하자면, 이제는 드러나는 피해를 끼치지 않겠다, 논란을 막기 위한 절차를 마련하겠다를 넘어 ‘가난한 이들도 사람답게’, 즉 이들의 인권과 존엄을 적극적으로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프로젝트를 기획할 때 취약성 분석이나 위험관리 계획을 수립하듯, 미디어 캠페인의 기획 과정에서도 취약한 사람들을 다루는 것에 대한 충분한 사전 조사와 논의, 대응방안을 수립하는 것을 기본으로 단체 내 사업팀이나 옹호팀, 나아가 당사자가 기획 단계에서부터 적극적으로 목소리 낼 수 있도록 하는 체계를 수립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 하더라도 결과물은 같을 수 있고, ‘불평등한 권력구조’는 여전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모금액에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쉬운 선택을 하는 것을 예방하고 캠페인과 관련된 모든 사람들이 지속적으로 상호 논의하고 캠페인의 내용과 목적에 대해 함께 논의하는 공간을 창출하는 것이다. 어떻게 보면 일을 더 어렵고 불편하게 만드는 것일 수 있지만, 국제개발협력의 일은 원래 어렵고 복잡한 것이기에 오히려 일이 쉽게 풀릴 때가 성찰이 필요할 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