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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숨쉬는솜사탕 Aug 25. 2023

위태로운 중년 부부의 여름 휴가


엄마와 아빠가 여행을 갔단다. 두 사람은 내가 대학에 다닐 때 일본으로 넘어갔는데, 의도치 않게(?) 오랫동안 살고 있다. 벌써 20년 가까이 되어가니까...


일본에는 여기저기에 좋은 온천이 많다. 두 사람은 한 번씩 기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경치가 좋은 곳으로 짧은 여행을 다녀오곤 한다. 이번에도 여름 휴가로 자연 환경이 수려한 온천 마을을 찾은 모양이다.



아직도 둘이 여행을 간다고 하면 좀 신기하다. 왜냐하면 달랑 두 사람이 사는데도 조용할 날이 없기 때문이다. 엄마는 아빠에게 하루에도 몇 번씩 잔소리와 호통을 친다. 젊었을 때 아빠의 성질머리 때문에 마음고생이 많았던 엄마는, 이제 더 이상 참을 생각이 없는 듯하다.


이빨 빠진 호랑이처럼 대꾸도 못하는 아빠가 불쌍해 보이기도 하지만, 사실은 그렇지도 않다. 아빠는 같이 지내기 좀 피곤한 스타일이니까.



둘이서 여기저기 구경을 다니고,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는 상상을 했다. 기차 옆자리에 붙어 앉아 있어도 말 한마디 안 하고, 길에서는 떨어져서 걷고, 침대도 각자 쓴다. 온다 간다 말도 안 하고 각자 볼일을 보러 다닌다. 그야말로 찐 중년 부부의 여행. 정말 재미가 있을까??




살면서 부부에게는 위태로운 순간들이 많았다. 40년이 넘도록 갈라 서지 않은 것이 새삼스러울 정도로... 자식으로서 말할 수 있지만, 그들은 정말 안 맞다. 각자에게 맞는 다른 인연을 만났다면 훨씬 행복한 삶이 되었을거다. 눈 씻고 찾아봐도 둘 사이에 애정이라는 걸 찾아볼 수는 없다.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오랫동안 같이 살 수 있는 걸까? 두 사람 사이에는 보이지 않는 쇠사슬(?)이 있나 보다. 애정이라는 간단한 단어보다 훠어얼씬 끊어내기 어려운. 두껍고 징글징글한. 아마 그 사슬을 이루고 있는 고리 중 하나가 나, 솜사탕이겠지. 그래서 툭 끊어버리고 싶은 싶은 순간에도 차마 그럴 수 없었던 거겠지...



그 이유야 어찌 되었든, 자식으로서 둘을 보면 다행스럽다. 내가 어렸을 적, 원수처럼 싸우던 사람들이 저렇게 의지하며 살아가고 있으니. 심지어 가끔 죽이 잘 맞기도 하니... 사람 일은 알 수 없나 보다.



그러고 보면 알 수 없는 건 나도 마찬가지다. 나이를 먹으면서 두 사람을 보는 눈이 조금씩 부드러워진다. 많이도 원망을 했었는데, 그런 마음도 언제부턴가 잘 보이질 않는다.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고 하는데, 오랜 시간이 흐르면 조금씩 변하기도 하나보다. 나도 엄마도 아빠도, 세월 속에서 조금씩 궁글려지고 있는 걸 보면.



아침에 아빠로부터 톡이 왔다. 오늘 집으로 돌아간다고 한다. 부디 가는 길 많이 싸우지 말고, 무사히 도착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앞으로도 오랫동안 둘이서 좋은 풍경들을 함께 봤으면 좋겠다.



엄마는 싫어하려나??


아빠의 톡. 이거 치려면 한참 걸렸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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