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래프톤 웨이"를 읽고..
늘 가던 길을 걸으면 인생은 달라지지 않는다. 이 책은 끝이 어디인지 알 수 없는 곳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다만 시간은 유한하고 인간은 불완전하다는 점을 상기시켜주기라도 하듯 창업이나 사업에 대한 로망을 담았다기보다는 아주 처절하고 날 것의 이야기를 전해준다. 마치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길을 걸어보겠느냐는 의지와 결단을 테스트하는 것처럼.
이러한 의지는 각자가 진정으로 '풀고 싶은 문제'와 '비전'이 생길 때 비로소 완성된다. 그러나 의지만으로 이 성공의 전제 조건들은 충족되지 않는다. 큰 운도 따라줘야 하고 뜻을 함께 할 수 있는 동료들도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운'이 아주 혹시라도 찾아올 때까지 그나마 버틸 수 있다. 버틴다는 건, 그리고 책임을 진다는 것은, 생각보다 전혀 멋있거나 전혀 고상하지 않다. 오히려 때로는 짜치고 더럽고 치사함을 견디는 일에 가깝다. 하지만 그 처절함은 '비전'이라는 명분 아래 정당화된다.
창업 당시 블루홀 스튜디오는 드림팀에 가까웠다. 최고 수준의 경영진, 대부분 스타트업들은 감히 접근할 수 없는 크기의 자본, 그리고 게임과 업계를 이해하고 있는, 아니 통달하고 있는 베테랑 개발진까지. 그러나 그런 그들에게도 성공은 꽤나 오랜 기간 동안 신기루에 가까웠다. 버티는 여정 가운데 많은 이들이 상처 입었고, 떠났고, 또 견뎌내었다. 그 긴 과정에 오롯이 함께 하지 못한 이들을 힐난하거나 끝까지 버틴 이들만 칭송하는 것은 어쩌면 무의미하다는 생각이 든다. 회사란, 그 무게를 지탱하고 있는 사람들의 삶으로 이루어진 것인데, 모두의 삶이 그렇듯 그 모순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각자의 삶과 결정을 나의 근시안적인 이해도와 시각으로 제단하고 싶지 않다. 다만 그 무모한 여정에 함께한 이들의 용기에, 특히 그 전 과정을 버텨낸 이들에게는 조금이나마 더 큰 경의를 표하고 싶다.
장병규나 경영진이 자신들의 민낯, 혹은 치부 아닌 치부를 드러내면서까지 이러한 책을 출간한 이유는 뭘까 반추해보았다. 성공적인 serial entrepreneur로서, 혹은 처음부터 세밀하고 정밀하게 계획들로 점철된 성공담으로 본인들을 포장하고 싶은 인간 본연의 욕구는 누구에게나 있을 것이라 믿기 때문이다. 관망자일 뿐인 내가 감히 그 속뜻을 100% 이해할 수는 없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길은 걸어볼 만 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은 아닐까 싶다. 다만 그 길은 처절하다고, 그리고 그 처절한 사투와 같았던 여정을 버티게 해 줬던 근간은 '비전'과 '고객의 문제 해결'을 향한 열망이라고. 설사 배틀그라운드 성공의 기회가 찾아오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경영진은 크래프톤 창업을 절대 후회하지 않았을 것이다.
나이를 먹을 수록 책임과 삶의 무게의 크기는 더 빠른 속도로 커지기 때문에 선택의 기로에 설 때마다 더 신중해진다. 너무나도 당연한 말이지만 기회비용 역시 그만큼 커지기 때문인데, 이는 궁극적으로 어떠한 삶을 영위하고 싶은지 내 개인 실존에 대한 문제를 깨닫는 영역으로 희귀되는 것 같다. 제프 베조스는 이러한 영역에서도 그의 천재성을 가감 없이 보여주는데 바로 후회 최소화 법칙(Regret Minimization Framework)이다. 이 관점에서 조금 더 곱씹어 보면, 우리네 삶에서 가장 중요하고 희귀한 자원은 '시간'이다. 이런 '시간'이라는 요소를 고려하면서까지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선택을 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그 선택과 집중을 위해서는, 우리 각자가 정말로 '풀고 싶은 문제'가 무엇인지 깨닫는 것이 가장 중요함을 상기시켜 준다. 물론 정답은 없다. 또한 타인의 선택이나 결과를 한 두 단어로 제단 할 권리 역시 우리에겐 없다. 다만 우리 각자의 욕구와 의지를 오롯이 이해하는 것에서 이 끝을 알 수 없는 여정을 새로 시작하거나 점검할 수 있다고 믿는다. 일모도원하다.
인상 깊었던 quote 몇개..
"장병규는 '회사란 이익을 내는 곳'이란 정의에 동의하면서도,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에게 회사란 혼자서 이루기 힘든 성과를 내기 위한 곳이었다.
"비전을 창조하는 것보다 비전을 변경하는 것이 더 어려운 일이다. 창업가가 비전을 몇 년 만에 바꾸는 경우라면 더욱 그럴 것이다. 그렇기에 경영자는 비전을 재고하는 습관을 들여야 한다. 확고한 비전의 소중함을 이해하면서도, 비전 따위는 변경할 수 있다는 마음을 가져야 한다. 그렇다면 변하지 않는 것은 무엇일까? 단 하나만 꼽으라면, 고객 우선 가치다. 세상에 수많은 조직이 있지만 고객이 없는 조직은 존재 가치가 없다."
"나의 이기심은 자연스럽지만 타인의 이기심이 나에게는 자연스럽지 않다. 어쩌면 인간에 대한 애정이 점점 식어가는 자신을 발견할 수도 있다. 하지만 절대 사람에 대한 애정을 버려서는 안된다. 경영은 본질적으로 사람에 대한 문제를 다루는 것이기에 사람에 대한 애정이 없다면 사실상 멋진 경영은 끝난 것이나 다름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