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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루 Jul 27. 2018

한남동 한 걸음 더

난 酒路 여기를 가 - #3. 한남대路

 시끄러운 동네에서 조용하게 먹고 싶을 때가 있다. 한남동에 갈 때가 대게 그렇다.

 한남동은 진입 나이가 높았다. 어릴 때 이 동네는 외교관이 많은 곳 정도였고, 한창 이태원을 다닐 때는 온 밤을 해밀턴 뒷골목에서 보내기도 모자랐다. 한남동까지 내려오게 된 건 얼마 되지 않았다.

 

 결혼식장까지 잡아둔 친한 동생이 파혼을 했다. 그 이야기를 하며 한남동에서 술을 마셨다. 그 동생과 남자는 이태원 바에서 만났었다. 몇 번 그 남자를 봤는데 너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런데도 결혼한다길래 화도 내고 달래기도 하며 뜯어말렸다. 결국에 고집을 꺾지 못했고 마음을 비우고 축복해주자 다짐했는데 내가 우려했던 일로 파혼했다! 동생한테 화가 나지 않았다. 오히려 너무 다행이어서 눈물이 핑 돌았다. '언니 나 진짜 아끼는구나' 조금은 얄미운 동생이 내게 말했다.


 왜 남의 연애는 그렇게 빤히 잘 보일까? 반은 자리 깔아도 될 정도로 친구의 남자 친구들은 그 속셈이 빤히 보인다. 내 연애는? 증거가 눈 앞에 있어도 무시한다. 감정이 없이 떨어져 보면 적나라하게 보이는 관계인데 내가 하는 관계는 한 치 앞도 모른 채 맹목적으로 '사랑'만을 쫓아간다.



 이태원에서 살짝 떨어져 본 한남동 맛집


스시쵸우



 갑자기 오마카세라니? 개인적으로 가성비란 말을 별로 좋아하진 않지만 스시쵸우는 가성비 좋은 오마카세다. 그런데도 오마카세 특유의 맛과 분위기는 흠잡을 데 없다. 블루스퀘어 뒷골목에 위치한 조용한 가게에 테이블은 다찌 중심으로 8석. 반드시 예약해야 한다. 이 곳을 추천하는 이유는 두 가지. 첫 번째는 샤리(초밥의 밥)의 양이 적은 대신 종류가 많다. 다양한 맛을 느낄 수 있는 재미가 있다. 두 번째는.. 말하는 것조차도 설레는 그 이름, '콜키지프리'



 대부분의 손님들이 각자 술을 가져온다. 단 와인잔은 제공되지 않는다. 좋은 사람과 함께 아껴둔 술을 먹으며 조용히 이야기 하기 최적의 장소다. 가격은 저녁 오마카세 기준 1人 7만원.

 여기는 당시 만나던 남자친구와 헤어지기 조금 전에 왔었다. 헤어짐을 목전에 두고 있을 때라 식당에서 밥을 먹을 때면 매번 서로 으르렁거렸다. 반드시 싸우거나 아니면 싸우지 않으려고 애썼다. 그런데 스시쵸우에서 먹은 저녁은 굉장히 편안했다. 싸우지 않기 위해 애써 대화 화제를 피하지 않아도 되었다. 조용하게 맛을 이야기하고, 앞으로 함께 가볼 좋은 식당과 술에 대해 이야기했다. 따뜻하고 편안한 순간이었다. 날이 선 사람들도 기분 좋게 만들어주는 음식과 공간을 가진 식당이다.



한남북엇국



 시간이 지나도 변하지 않는 식당은 소중하다. 한남북엇국이 그렇다. 한와담 뒷골목에 위치한 2층짜리 식당은 예전보다는 덜하지만 여전히 주말 저녁이면 가득 찬다. 이름이랑 다르게 여기서 북엇국을 먹으려면 이른 저녁에는 와야 한다. 추천하는 메뉴는 피조개무침과 묵은지돼지찜. 철에 따라 메뉴가 바뀌니 벽면에 적힌 이름과 가격을 참고하면 된다.



 여기선 소주나 막걸리를 먹어도 좋지만 안주의 질이 좋다 보니 와인이나 위스키를 가져오는 분들도 많다. 여기도 감격스럽게 콜키지프리! 북적거리는 프로스트에서 맛없는 맥주나 마실 바엔 한남북엇국에서 굴전과 화이트와인을 먹겠다. 너무 조용하지도 시끄럽지도 않은 소란함, 테이블 위에 소주와 함께 올라와있는 좋은 위스키, 전 지지는 구수한 냄새까지. 가끔 연예인을 보는 건 덤이다.




 한 걸음 떨어져 보면 더 많은 것을 볼 수가 있다. 관계가 그렇고 한남동도 그렇다. 날이 서지 않은 채 먹는 식사란 얼마나 값진가. 좋은 사람과 조용한 시간을 한남동에서 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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