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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임 May 22. 2024

독일, 운전면허에 중고차 한 대 값이라니!

그래도 실패할 권리는 있다.

'오늘이 제발 마지막 운전 수업이기를.'



집에 돌아오는 트램 안에서 간절한 마음으로 이 문장을 되뇌었다. 열흘 전에 운전 실기시험에서 탈락했다. 독일에서는 실기시험에서 탈락하면 그 다음 시험은 2주 후에 볼 수 있으며, 시험 전에 한 번의 운전연습을 해야한다. 오늘이 두 번째 시험 전, 한 번의 운전연습날이었다.


  첫 실기시험을 앞두고 나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수시로 쿵쾅거리는 심장과 긴장으로 뻗뻗해지는 목덜미에 하루 하루 피가 마르는 것 같았다. 시험이 코앞이어서 그랬냐고? 아니다. 시험을 2주 앞둔 시점부터 그랬다. 정확히는 운전학원에서 보낸 지출내역서를 본 후부터였다. 모든 비용을 정리해서 보내주었는데 총지출내역이 5,900유로였다. 손이 떨리고 심장이 뛰고 충격과 슬픔이 한꺼번에 몰려왔다. 내가 이렇게 큰 돈을 운전면허에 썼다는거야??? 무능력하다는 뜻 같아 인정하기 싫었고, 중고차 한 대 값을 날린 거 같아 속이 쓰렸다. '이 돈이면 이 돈이면' 하면서 자책하고 아파했다.


  독일은 운전면허를 따는데 비용이 많이 든다. 코로나 전, 지금처럼 물가가 오르기 전에도 기본 3천 유로는 든다고 했다. 내가 운전학원을 등록할 때는 코로나를 지나면서 운전학원비용이 크게 올랐을 때였으나 기본코스대로 쫙쫙 진도가 나간다면 최대 3천유로 안에서 끝난다는 플랜이 나와있었다.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대로 내가 해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독일은 학생이 시험을 볼 만큼 운전실력이 충분하지 못하면 선생님 재량 안에서 수업 시간을 늘릴 수 있고, 여기에서 최종 비용이 결정난다. (나 스스로 무능력하게 느낀 데는 여기에 이유가 있다.) 젊은 남자 아이들이 빨리 끝내면 3천유로라고 들어서, 나는 아줌마에 나이도 있으니 좀 더 든다고 생각해서 4천유로면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런데 5,900유로라니. 남편이 반올림해서 6천유로라고 할 때마다 나는 바득바득 5,900유로라고 정정해서 말했다. 100유로라도 적게 말하고 싶었다. 비용이 많이 든만큼 내가 무능하다는 뜻 같아서 조금이라도 적게 말하고 싶었다.


  이렇게 비용이 많이 든 데에는 나름 이유가 없지는 않다. 독일은 많이 수업해야 일주일에 두 번이고, 그나마 선생님이 병가를 내거나 휴가를 가면 한 달씩 수업이 없기도 하다. 운전을 띄엄띄엄하는만큼 실력이 탄력을 받아 올라가지 않는다. 나같은 경우는 딸 아이가 아프면서 3개월간 운전을 쉬었고, 선생님도 한 번 바꿨기 때문에 적응하느라 버린 시간이 많다. 독일어로 운전을 배우면서 아무래도 입력해야할 정보 중에서 하나는 듣고 하나는 흘려버렸을 가능성이 높다. 나이가 많으니 반응속도도 느리고, 판단 속도도 느리고. 이래저래 나는 악조건이었다.


이유야 어쨌든 5,900유로를 썼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고, 시험을 한 번에 붙어야 추가 비용이 들지 않을테니 실패할까 부담이 되어 잠이 오지 않았다. 심장이 뛰고, 뒷목 잡을만 하지 않은가. 독일 살면서 독일에 불만을 가져본 적이 별로 없지만 운전면허 시스템만큼은 욕하고 싶다. 어지간하면 면허를 줘도 될텐데 초보 딱지 뗄 정도는 되어야 면허를 받을 수 있다.


  운전수업 비용이 비싸도 너무 비싸다. 운전수업 10분에 14유로, 필기시험에 80유로, 실기시험에 200유로. 앞에 말한 시험비는 학원에 지불해야하는 것이고, 운전기관에는 별도의 수수료를 지불해야한다. 학원이 폭리를 취한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 실기시험에 한 번 떨어지면 실기시험비 200유로, 추가 수업비 130유로, 운전기관에 내는 시험수수료 130유로, 합 460유로가 들어간다.


   스트레스가 너무 심해 정신줄을 잡기 힘들었다. 460유로를 더 쓰지 않아야 한다는 생각에 사로잡혔다. 이러다 오히려 시험을 망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마음을 고쳐 먹었다. 한 번쯤 떨어져도 괜찮다고 주장하기 시작했다. 돈은 아깝지만 한 번쯤은 괜찮다는 생각으로 임하자고 체면을 걸었다. 그렇게라도 스스로를 안심시켜야 차분하게 시험을 볼 수 있을 것 같았다. 가족들에게도 선포를 했다.


"나에게는 실패할 권리가 있어!!"


  5,900유로 쓴 사람이 할 말은 아닌 것 같았으나 부담감에서 자유롭고 싶었다. 혹시 모를 실패를 위해 밑밥을 깔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를 압박하지 말라고 무언의 압력도 넣어야 했다. 우리 모두 마음을 내려놓자고 동의를 구해야 했다.


  그렇게 마음을 다스리고 나니 마음이 가라앉고 스트레스를 덜 받았다. 시험을 차분하게 볼 수 있으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시험에 붙으면 감사, 떨어지면 아직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으로 받아들이고 절망하지 않기.


  그러고는 보기 좋게 떨어졌다. 아깝다가도 결국 준비가 덜 되었다는 것이 드러났다고 받아들였다. 더이상 하고 싶지 않았던 운전수업을 하고 집으로 돌아오며 오늘이 마지막이길 소망했다.




  살면서 이렇게 큰 돈을 배움에 써본 적이 있었던가. 운전면허 비용으로 스트레스를 받다가 나의 생각이 한국에 사는 수험생들에게 가 닿았다.  한국에서는 가정마다 사교육으로 쓰는 총비용이 5,900유로의 몇 배는 될 것이다.


  아이들이 얼마나 부담을 느낄까 새삼 가슴 깊이 공감되었다. 부모의 투자와 기대가 힘이 되기보다 실패하면 안 된다는 부담감으로 다가오리라. 실패가 두렵고 가슴을 졸일 것이다. 나처럼 낯짝 두껍게 '실패할 권리가 있다고' 말하지도 못할 것이다. '꼭 합격하길 바래. 잘 해내리라 믿어.'라는 응원의 말조차 얼마나 버겁고 부담스러울까.


  운전면허에 도전하면서 뜬금없이 성공과 실패의 갈림길에 들어서는 사람들의 입장에 서보았다. 수능을 비롯해 몇 년을 준비해도 합격이 쉽지않은 각종 고시. 그 관문을  통과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이들이 애쓰고 있을까. 나는 다짐했다. 아이들에게 절대 합격을 강요하지 않으리라. 실패해도 된다고 말하리라. 진심으로 실패를 보듬어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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