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드 헤인즈의 신작. 토드 헤인즈는 대표작인 <벨벳 골드마인>이나 <캐롤>처럼 '소수자'의 범주에 속하는, 사회에 소외된 자들을 어루만지는 영화들을 많이 만들어 왔는데, 이 영화 또한 그 흐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바쁜 나날을 보내는 롭(마크 러팔로)에게 급작스럽게 찾아온 농부들. 처음엔 단지 이 일이 단순히 농부가 근처 공장에 불만을 가지는 정도로 생각했다. 그러나 조금씩 롭이 실상을 목도하기 시작하면서 모든 것이 뒤바뀐다. 한 가족의 일에서 끝나지 않고 한 마을로, 한 주로, 한 나라로, 지구 전체로 더욱 커지며 롭은 처음에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일이 끔찍하게 진행되고 있음을 확인한다.
일류 로펌의 잘 나가던 변호사 롭은 모든 것을 내걸고 이 소송(들)에 몰두하지만, 세상은 그의 노력과는 다르게 그를 고립시켜만 간다. 고객과 기업으로부터 고립되었고, 동료들로부터 고립되었으며, 가족들과도 소원해진다. 하다못해 자신의 건강까지도 자신을 떠나기까지 한다. 그런데도 롭이 지키고자 한 것은. 평생이 고립되었던, PFOA에 노출되었음에도 어떠한 발언도 할 수 없었던 피해자들을 지키기 위해서였다. 화려한 기업 신화에 감춰진 내막을 걷어내기 위해 롭은 모든 희생을 감수했고, 20년이란 인고의 시간을 쏟아부었다. 그 과정을 이 영화는 롭처럼 집요하게 잡아내었다.
영화는 마크 러팔로의 원맨쇼에 여러 조역이 힘을 받쳐주는 구조로 되어 있다. 가정에선 사라(앤 해서웨이)가, 직장에선 톰(팀 로빈스)가 희생을 분담하면서까지 무한한 지지를 보낸다. 대의를 위해, 소외당한 자들을 위로해주기 위한 장치로 사용되다 보니 이런 주연급 배우들이 상당히 평면적으로 사용된 점은 아쉬운 대목. 반면에 영화는 롭의 헌신을 드러내기 위해 끊임없이 균열이 일어나고 피폐해지는 삶을 조명하는데, 이 고귀함에 토드 헤인즈는 존경심과 애정을 담아 밀도 있게 스크린에 담아낸다.
또한 롭이 극을 전개하면서도 피해자들의 삶을 놓치지 않은 점에선 상당히 섬세한 토드 헤인즈의 연출이 돋보인 부분. 소송의 주체들을 꾸준히 등장시키며 PFOA에 피해받는 것이 단순히 신체적, 경제적 피해뿐만 아니라 인간관계나 지역 사회로부터의 피해도 있었음을 꾸준히 관객들에게 인지시킨다. 즉 20년의 세월 동안 피해자들의 고립된 삶을 조명함으로써 이 영화의 당위성을 피력하는 셈이다. 그리고 단순히 재연에서 끝나지 않고 실제 피해자들을 극에 긴밀하게 등장시키며 이 이야기가 피해자들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관객들에게도 삶의 일부이며 낯선 것이 아님을 체감하게 한다. 한편, 카메라 사용이나 감독 특유의 색감 사용법이 자연스럽게 녹여낸 점도 주목할 만한데, 특히 후반부에 사무실로 가는 롭을 부감으로 잡아낸 장면이나, 식당 외관을 담아낸 장면이 특히 인상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