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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멸치맛초코 May 22. 2020

겉으론 말끔하지만 속은 곪아 터진 군상

<해피 엔드 (Happy End)> (2017)



 이 영화를 한 문장으로 표현하자면, "겉으론 말끔하지만 속은 곪아 터진 군상" 정도가 될 수 있다. 영화는 대가족에 '에브'란 아이가 들어오게 되는 시점에서 영화가 시작된다. 로랑 일가들은 누가 봐도 멀끔하고 성공한 집안처럼 보인다. 그러나 그 집안에서도 각자 나름의 고민들을 안고 있다. 앤은 앞가림 못 하는 아들 피에르 때문에 난감한 상황을 겪곤 하며, 조르주는 모든 것을 이뤄냈음에도 삶에 대한 의욕을 잃어 죽음을 갈망한다. 점잖은 성격에 가정적이고 깔끔한 사생활을 가진 것 같던 토마스에게는 은밀한 사생활이 있으며, 이 가족에 편입된 에브조차도 비정상적인 사고와 감정이 있다.

 



 이 작품은 확실히 미카엘 하네케의 바로 전작이었던 <아무르 (Amour)> (2012)와 비교하면 더 재밌는 듯하다. 원래부터도 그랬지만 하네케는 부르주아의 삶을 바탕으로 자신의 의도를 관철하는 감독. <아무르>를 통해서는 질병이 노부부의 삶을 어떻게 무너뜨리는지 느린 호흡으로 가감 없이 보여주었는데, 이후 작품인 <해피 엔드>를 통해서는 부르주아 개개인이 자신의 삶을 어떻게 망가뜨리는가를 보여준다. 부르주아의 삶이 붕괴한다는 점에서는 동일하나, 그 삶을 파괴하는 것이 주체성에 따른 결과인지 혹은 통제 불가능한 요인에 따른 결과인지에 따라 달라진다. 어찌 됐든 물질적인 부분이 충족되었어도 삶에 균열을 일으키는 것에 다른 부분들도 크게 영향을 준다는 점은 하네케가 꾸준히 관철하는 내용.


 그리고 부르주아의 오만함을 드러내는 장면들도 상당수 보여주며 그들을 견지하는 시각도 직접적으로 드러내기도 한다. 앤과 로렌스의 관계를 축하하는 자리에서 아들 피에르는 대접한다는 명목으로 초대받은 적 없고, 아무런 준비도 되지 않은 사람들을 대거 데려온다. 앤은 집안 관리인의 딸이 개에게 물리자 확인하기 위해 찾아간다. 위로의 선물을 건네면서 상처를 확인하며 "그렇게 심해 보이진 않네, 그렇지?"라며 냉정한 태도를 보인다. 타인에게 공감하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사고하며 행동하는 부르주아의 위선적인 모습을 미카엘 하네케는 러닝 타임 내내 꾸준히 묘사한다.



 한편, 제일 흥미로운 지점은 에브와 조르주의 대화 중 조르주의 아내에 대한 대사. 별개의 영화 같던 <아무르>와 <해피 엔드>를 그 대사가 두 영화를 접합시키며 새로운 감상으로 나아가게 만든다. 원래도 인물의 이름을 매번 동일하게 사용하는 하네케지만, 두 작품에 장 루이 트랭트냥이 연기한 '조르주 로랑'이라는 이름은 좀 더 중요하게 다가온다.


품격 넘치는 삶도 붕괴하면 앙상함만 남는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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