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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멸치맛초코 May 24. 2020

결국 우린 모두 <라라랜드>로 수렴된다

<라라랜드 (La La Land)> (2016)

 


 영화의 가장 핵심적인 플롯은 역시 단순하게 풀이하자면 젊은 날의 남녀의 사랑과 이별 정도로 말할 수 있다. 그러나 그 평면적인 플롯을 데미언 셔젤은 많은 은유와 기법을 통해 입체적인 예술로 구현했다. 데미언 셔젤은 기본적인 인생관 자체가 그리 긍정적으로 보이진 않는다. 셔젤의 이전작인 <위플래쉬>는 최고의 드러머가 되기 위한 앤드류의 고난을 담은 영화다. 플레처의 상식을 뛰어넘는 교육에 앤드류는 음악을 놓을 정도로 정신적인 타격을 입지만 결국 분노와 광기로 자신을 소진하여 플레처의 인정을 받게 된다. <라라랜드>에서는 세바스찬(라이언 고슬링)과 미아(엠마 스톤)가 현실에 허덕이면서도 서로에 대한 사랑으로 버틴다. 그러나 사랑으로도 해결할 수 없는 장벽들이 그들을 옭아매고, 현실과 타협하기 시작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도 서서히 멀어져 간다. 결국 두 사람은 자신의 꿈을 실현시켰으나 젊을 적 사랑은 추억으로 남는다.     



 데미언 셔젤은 <위플래쉬>와 <라라랜드>를 통해서 자신의 삶에 대한 통찰을 풀어낸다. 하나를 얻으면 하나를 잃는다는, 일리일해(一利一害)의 관점에서 인간사를 설명하고 이해한다. 삶을 희생시킴으로써 인정을 얻어낸 앤드류처럼, <라라랜드>에서는 꿈의 실현과 부의 획득이 사랑의 상실과 긴밀하게 연결된다. 물론 어떤 하나의 결과가 희생을 수반했지만, 그 결과를 셔젤은 충분히 삶의 성공으로 보는 듯하다. 이는 마지막 플래시백 몽타주를 통해 명료히 드러낸다. 경제적, 사회적 성공을 이뤘지만 가장 뜨겁고도 순수한 사랑은 떠났다. 그러나 그 시절을 되새겨보면 어떤 식으로 끝났든 간에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이었다. 다른 성공을 얻었기 때문에 삶의 성공으로 귀결된다고 볼 수도 있지만, 희생된 다른 일부들이 좋은 추억으로 머물러 있기에 이 또한 삶의 성공으로 귀결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런데 위의 견해와 조금 다르게 해석할 수도 있다. 사랑 영화임에도 데미언 셔젤은 사랑에 가장 비관적인 입장을 견지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진정한) 사랑을 잃는 조건으로 예술적인 성취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 플래시백 몽타주가 영화의 어떤 시퀀스보다도 아름답게 주조되었지만, 영화의 제목("La La Land")처럼 이것은 현실이 아닌 상상이고 비현실적인 순간일 뿐이다. 이런 관점으로 본다면 앞의 관점보단 데미언 셔젤의 인생관이 상당히 부정적이라고 할 수 있다.        

  


 한편, <라라랜드>는 뛰어난 완성도에 걸맞게 여러 장점들이 있는데, 대표적인 장점으로는 뮤지컬 영화로서의 기능을 충실히 수행하고 있다는 점이다. 최근 몇 년 동안 꾸준히 뮤지컬 영화들이 나오고 있는데, 유독 이 영화만큼은 여느 영화들과는 다르게 고전 뮤지컬 영화의 계보를 이어가려는 듯하다. LA라는 공간적 배경은 물론이거니와 꾸준히 영화 내에서 언급되는 <카사블랑카> 같은 당시의 고전 영화들을 영화 내로 흡수하여 즐거움을 재현한다. 작년에 개봉한 쿠엔틴 타란티노의 <원스 어폰 어 타임... 인 할리우드>와 유사한 방식으로 당시 시대와 산업에 대한 애정을 듬뿍 담아내어, 관객의 입장에서는 고전 영화들과 레퍼런스를 비교하는 재미도 느낄 수 있다. 그리고 뮤지컬 영화로서 음악에 어울리는 적당한 호흡과 리듬감을 놓치지 않는다. 초반부의 ‘Someone in the Crowd' 시퀀스나 여름 파트에서 두 사람의 뜨거운 사랑을 묘사하는 부분은 뮤지컬 영화만이 줄 수 있는 즐거움을 선사하는 대표적인 예다.      


 과감한 은유와 생략도 인상적이다. 영화를 계절로 나누어 계절의 변화에 따라 두 주인공의 상황적, 관계적 변화를 은유와 생략으로 군더더기 없이 표현한다. 미아의 오디션 장면이나 세바스찬의 공연 장면에서는 주변을 묘사하거나 드러내지 않는다. 핵심적인 스토리는 유지하면서도 흐름을 늘어뜨리는 부분을 제거하여 선택과 집중으로 이야기를 연결한다.     


 청각적인 아름다움과 함께 시각적인 아름다움도 즐길 거리를 더한다. 단색의 옷들을 미아를 비롯한 주요 인물들에게 입혀 시각적인 강렬함과 심경 등을 나타내기도 하며, 해안가의 노을의 색이나 푸른빛으로 채운 우주와 별로 보는 이들의 감탄을 자아낸다. 세트장이나 파티장, 재즈바 같은 공간의 분위기를 형성하는 디테일함도 훌륭하며, 무엇보다도 이 모든 것들이 총체적으로 작용하는 환상적인 미장센은 경이롭기까지하다.      



 영화가 개봉한 지 벌써 4년이 되어간다. 그럼에도 여전히 <라라랜드>는 큰 사랑을 받고 있고 누군가의 “인생 영화”로서 자리잡았다. 영화가 어떤 내용이고 어떤 결말을 가지든 간에 사람들은 자신만의 “라라랜드”를 찾고 싶어하는 듯하다. 우리 인생의 아름답고 행복했던 순간을 기억하고, 앞으로 올 그것을 고대한다. 그 감정들이 우리를 자극하고 결국 이 아름다운 영화로 우리는 매번 수렴된다. 우리는 이 “인생 영화”를 보고 인생을 그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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