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간에 무엇을 담을 것인가
싱가포르의 대표 야경하면 빠질 수 없는 마리나베이샌즈. 그 옆으로 시선을 조금만 돌리면 조그마한 원형의 건물을 볼 수 있다. 바로 애플스토어다. 전 세계에 수많은 애플스토어들 중 이곳이 특별한 이유는 무엇일까?
마리나베이샌즈 애플스토어는 유리로 만들어진 구 모양의 건물로, 물 위에 떠있는 구조로 건축되었다. 이렇게 물 위에 떠있는 구조의 애플스토어는 전 세계에서 이곳뿐이다.
스토어는 마리나베이샌즈 쇼핑몰 안에 있는 수중 터널을 통해 입장할 수 있는데,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올라오면 마치 스토어에 입장하는 걸 반겨주는 듯 서서히 빛이 보이기 시작한다. 그렇게 스토어로 향하는 과정부터 다른 차원에 입장한다는 느낌이 들게 되고, 자연스레 공간에 대한 몰입도가 높아진다.
그렇게 돔 모양의 스토어로 입장하면 물과 빛으로 둘러싸인 공간을 만날 수 있다.
360도로 둘러싸인 물, 풍경과 돔의 구멍으로 들어오는 빛을 보고 있자면 매장이기 이전에 그냥 물과 빛으로 비어진 아름다운 건축물에 온 기분이다. 모두들 마치 관광지에 온 듯, 물에 떠 있는 느낌을 즐기고 시시각각 변하는 빛에 집중하는 소비자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특히 건축의 완성은 빛이라는 말처럼 빛이 내려올 때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는데, 그 빛을 따라가면 자연스럽게 제품으로 눈길이 가는 것 역시 인상 깊었다.
하지만 마리나베이샌즈 애플스토어 특별한 건 단순히 예뻐서가 아니다.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는 브랜드 스토어이기 때문이다. 싱가포르에 방문한 관광객이라면 모두가 방문할 수밖에 없는 마리나베이샌즈 스퀘어에 설계한 위치적 장점은 둘째 치고, 그곳과 딱 맞게 설계된 건축물이다. 모르는 사람이 겉에서만 보면 애플스토어라는 걸 눈치챌 수 없고 그저 관광지처럼 보일 정도니 말이다. 스토어 안에서는 싱가포르 상징인 풍경 속에 들어온 기분이 들고, 밖에서는 어느 곳에서 사진을 찍던 함께 찍히는 브랜드 스토어라니. 어느 브랜드 스토어가 도시의 랜드마크가 될 수 있을까? 도시의 구조를 잘 이해하고 상생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할 때만 나올 수 있는 결과물이라고 생각한다.
스토어에서 이루어지는 활동 역시 흥미롭다. 애플 유저를 대상으로 다양한 클래스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특히 저녁에는 애플 제품으로 함께 싱가포르의 야경 사진을 찍는 포토 투어를 진행한다.
이 프로그램이 흥미로운 이유는 전 세계에서 유일하게 이곳에서만 진행하는 프로그램이기 때문이다. 전 세계에서 밤에 운영되는 유일한 스토어여서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라고 한다. 야경이 유명한 마리나베이샌즈 옆에 위치한 스토어의 특성을 잘 살린 프로그램이기도 하지만 그걸 위해 오로지 이곳의 운영 시간을 다르게 설계한 부분도 세심하다고 느꼈다. 특히 관광하기도 바쁜데 기업에서 진행하는 클래스를 들을 이유가 적은 나 같은 관광객 입장에서도 참여해보고 싶은 체험이었다.
도시와 지역의 특색에 맞게 건축물을 짓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만큼 그 특성을 백분 활용해 그 공간에서만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설계할 때에 진정한 시너지가 난다는 것을 느꼈다.
특히 일요일 낮에 스토어에 방문했을 때에는 삼삼오오 앉아 아이패드로 그림을 그리는 수업을 하고 있었는데 클래스에 참여하고 있는 아이들과 고객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스토어의 입구 쪽에서 수업이 진행되고 있는 만큼 제품을 구경하면서도 자연스레 클래스를 듣고 있는 그들의 모습에 눈길이 갈 수밖에 없었는데, 특히 몇몇 아이들 덕분에 스토어 내의 분위기가 좋았다. 진행자의 매끄러운 수업 진행은 물론이고 참여자들이 각자 자신이 그린 그림을 설명하는 모습에 감탄했다가, 까르르 웃는 아이들을 따라 웃는 사람들. 특히 장난스럽게 아이들이 자신의 사진을 편집해 놓은 덕에 스토어 전체에 자연스럽게 웃음꽃이 피었다. 그렇게 흐뭇하게 그 모습을 보고 있는데 갑자기 짜잔-하고 생일 축하 멘트가 나왔다.
알고 보니 클래스를 듣는 아이 중 한 명이 생일이었던 것. 그래서 갑자기 스토어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생일 축하 노래를 불렀다. 모든 이의 얼굴에 미소가 있던 건 물론, 이 모든 과정이 너무 자연스러웠다. 아- 이게 애플의 커뮤니티구나 싶었다.
공간도 중요하지만 그 공간에 무엇이 담기는지가 결국 공간을 완성한다. 아름다운 물과 빛 보다 한 아이의 생일파티를 축하해 주던 애플 직원들과 사람들의 미소가 더욱 기억에 남는 걸 보면 말이다.
브랜드로서 공간을 운영한다면 그곳에 무엇을 담아야 할까? 그게 우리가 브랜드 공간을 설계할 때 가장 먼저 던져야 할 질문 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