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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오이디푸스 Jul 21. 2020

"왜 그랬어?"는 왜 그랬는지를 묻는 것이 아니다?

같은 워딩 다른 의미

너 이거 왜 이렇게 했어?


  사무실에서 일하다 보면 여기저기서 자주 들려오는 말이다. 이런 말은 주로 어떤 문제가 생겼을 때나 누군가가 작성한 자료를 상사한테 보고할 때 상사들의 입에서 나온다. 이런 말이 나왔을 때는 거의 대부분 상황이 좋지 않은 경우가 많다. 그리고 상사들의 말투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짜증과 분노가 섞여있다. 이때 "이러저러해서..."라고 이유를 설명하려고 하면 말이 끝나기도 전에 상사로부터 한 소리 듣기 일쑤다. 

"그걸 말이라고 해?" 

"변명하지 마" 


  왜 그랬냐는 질문에 왜 그랬는지를 설명하는데 더 혼이 난다. 이것은 "왜 그랬어"라는 말이 두 가지의 뜻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왜 그랬어"라는 말은 똑같은 워딩인데 뜻은 두 가지다. 당연히 거기에 대한 대답도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그런데 질문의 해석을 잘못해서 답변을 엉뚱하게 하게 되면 상대방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수 있다. 


  첫 번째는 말 그대로 "왜 그랬어"라는 질문이다. 이 때는 왜 그랬는지를 설명하면 된다. 간단하다. 하지만 문제는 두 번째다.  두 번째는 원래는 꽤 긴 문장인데 "왜 그랬어"로 줄여져서 말해진다. 원래의 문장은 다음과 같다. 

"내가 이렇게 하지 말라고 여러 번 말했는데 네가 이렇게 해서 문제가 생겨 일이 골치 아프게 됐다. 그래서 난 지금 너한테 화가 난다."

"어제까지 완료하라고 분명히 지시했는데 지금까지 아무런 보고도 없이 일을 처리하지 않으면 내가 너를 어떻게 믿고 일을 맡기겠어? 내가 너 일하는 것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봐야겠니?"

이것 외에도 무수히 많은 문장들이 있다. "왜 그랬어"라는 말은 마치 경상도의 '쫌'과 전라도의 '거시기'와 같은 문장이다. 그때그때 상황에 맞게 해석해내야 한다. 그래야 제대로 된 대처를 할 수 있다. 



  나는 주로 말 그대로의 "왜 그랬어?"를 많이 사용한다. 왜 그랬는지가 정말 궁금하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야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 팀에 비슷한 시기에 들어온 두 명의 신입사원이 있다. 이 친구들이 나에게 검토를 받으러 오면 잘못된 부분들을 많이 발견하게 된다. 그러면 나는 "이건 왜 이렇게 했어요?"라고 물어본다. 그때 두 사람의 대답은 다르다. 


  A의 대답은 "자료를 찾아보니까 이러저러하게 나와 있고 제가 생각해보니 그게 맞다고 판단이 돼서 이렇게 했습니다."이다. 본인이 그렇게 하게 된 판단 근거를 나에게 설명해준다. 그러면 나는 A가 왜 이런 결과를 도출하게 됐는지 그리고 A가 일을 처리해 나가는 방식 등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그 자료는 오래된 자료로 지금은 그 자료를 안 보고 이 자료를 보니까 앞으로 이 자료를 참고하세요"라던지 "그렇게 판단할 수 있지만 그렇게 했을 때 이런 문제들이 있어서 그것보다는 이렇게 하는 것이 좋아요"라고 피드백을 줄 수 있다. 


  반면의 B의 대답은 "죄송합니다"이다. 왜 그랬는지에 대한 대답을 하지 않는다. 그러면 나는 피드백을 주기 어렵다. 그리고 다음에도 같은 실수를 할 가능성이 크다. 내가 여러 번 더 물어야지 왜 그랬는지에 대한 대답을 들을 수 있다. 


  왜 그럴까 생각해보니 이유를 설명했을 때 변명한다고 더 혼나는 경험을 많이 하지 않았을까 싶다. 우리나라에서 자고 나란 사람이라면 대부분이 그럴 것이라고 생각된다. 우리가 어린 시절,  아빠한테 혼날 때 내가 왜 그랬는지를 말하고 생각을 말하면 더 혼나게 되고 옆에서 엄마는 "잘못했다고 말씀드려. 그래야 끝나"라고 말하는 장면들이 떠오른다. 그런 상황에 길들여진 것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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