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회사에도 아웃백 시스템 도입이 가능할까?
주문한 지가 언젠데 왜 아직도 안 나오는 거예요?
지금 시간을 보세요. 20분이 넘었어요!
주말이라 와이프와 함께 동네 식당에서 점심을 먹고 있는데 뒤쪽에서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식당에 울려 퍼졌다. 식사를 하던 많은 사람들의 시선이 그곳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중년의 부부로 보이는 커플이 있었고 그중 남성이 종업원에게 화가 나서 소리를 치고 있었다. 우리보다 늦게 들어온 팀인데 아직 식사가 나오지 않아서 화가 많이 난 듯 보였다. 그렇게 종업원에게 화풀이를 하고는 식당을 나가버렸다.
"난 저런 사람들 싫어"라고 와이프가 말했다.
그리곤 "저 아저씨랑 오빠랑 반반 섞었으면 좋겠어"라고 덧붙였다.
난 어디 가서 말도 제대로 못 하고 반찬을 더 달라고 말할 때도 많이 머뭇거리는 사람이라 한 소리다.
그래서 난 "중간은 없어. 하나만 선택해"라고 말했더니 "그럼 오빠"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와이프에게 선택을 받았다. 기분 좋은(?) 하루였다.
20분 넘게 기다리다 식당을 나간 커플을 보면서 여러 가지 생각들이 들었다.
'이제 곧 음식이 나올 텐데 그냥 나가면 지금껏 기다린 시간이 너무 아깝지 않은가?'
'저 커플은 이제 어디로 갈까? 또 다른 식당에 가서 다시 음식 나오기를 기다려야 할 텐데 그냥 여기서 더 기다리는 게 낫지 않을까?'
'(아마도) 여러 음식 중에서 이 집 음식을 선택한 것일 텐데 다시 새로운 메뉴를 선택해야 하겠구나'
'많이 바빠서 더 기다릴 여유가 없었던 걸까?'
'이미 기분도 상할 대로 상했고 하루 일진이 좋지 않구나'
그리고 글을 쓰는 지금은 이런 생각이 든다.
'주방에선 음식을 하고 있었을 텐데 요리 중인 음식은 어떻게 됐을까?'
그때가 점심 break time이라서 다른 손님에게 가진 않았을 테고 버려졌거나 종업원들이 먹었을지 모르겠다.
'이 상황에서 잘못은 누구한테 있는 거지?'
지금은 코로나 때문에 식사를 거의 집에서 해결하고 있지만 예전 기억을 떠올려보면 내가 아웃백을 갔을 때는 항상 30분~1시간은 기다렸던 것 같다. 그것도 음식이 나오기까지가 아니라 식당에 입장하기까지의 시간이다. 식당에 들어가면 음식이 나오기까지 시간이 좀 더 걸린다. 하지만 내 경험상 음식이 왜 이렇게 안 나오느냐고 화를 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는 것 같다.
아웃백에서는 한 시간을 기다려도 동네 식당에서는 10~20분을 못 기다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다음과 같은 이유들이 있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아웃백에 갈 때는 처음부터 30분 이상은 기다린다는 생각을 하고 가지만 동네 식당을 갈 때는 기다린다는 생각을 잘하지 않는다. 손님이 많으면 조금 늦어질 수는 있지만 그 시간이 길지 않을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 50인치 TV가 10만 원이면 굉장히 싸다고 느끼지만 과자 한 봉지가 1만 원이라고 하면 굉장히 비싸다고 느끼듯이 모든 것은 상대적이다. 아웃백은 처음부터 30분 이상 기다릴 마음으로 갔기 때문에 이미 시간 예산을 그만큼 할당해놨지만 동네 식당은 시간 예산을 설정해놓지 않은 상황이기 때문에 5분만 늦어도 그 시간이 길게만 느껴지고 화가 날 수 있다.
아웃백에 가면 대기표를 준다. 요즘에는 핸드폰 어플로도 되던데 내 앞에 몇 팀이 있는지, 시간은 얼마 정도 기다려야 하는지 예상 대기 시간을 알려준다. 그리고 실시간 업데이트가 된다. 그러면 우리는 선택을 하면 된다. 40분 기다려야 한다는데 기다렸다가 먹을 것인지 아니면 다른 곳에 가서 음식을 먹을 것인지에 대해서 말이다. 하지만 동네 식당은 보통 이런 시스템이 없다. 그래서 주문을 하고 '5분이면 음식이 나오겠지?'하고 기다리고 있는데 10분이 지나도 20분이 지나도 음식은 나오지 않으면 기다리는 입장에서 답답하다. 식당에서는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도 잘 알려주지 않는다. 음식 언제 나오냐고 물어보면 "주문은 들어갔고, 지금 주문이 몰려서 늦어지고 있습니다. 순서대로 준비하고 있고 준비되는 대로 가져다 드리겠습니다."라는 대답을 흔히 들을 수 있다. 20분 기다리라는 답변을 듣고 15분 기다리는 것보다 아무 기약 없이 5분 기다리는 것이 더 길게 느껴질 수도 있다.
아웃백은 대기장소가 식당 앞이거나 식당 입구에 있다. 그곳에는 대기하는 사람들이 모여있고 눈에 보이는 사람들은 모두 나와 같이 식당에 입장하기 위해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다. 그리고 다들 핸드폰을 하거나 개인 볼일을 보면서 잘 기다리고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식당 안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물론 보려고 하면 볼 수 있지만)
하지만 동네 식당은 식당 안 테이블에 앉아서 기다린다. 그렇게 되면 바로 옆 테이블에서 음식을 먹고 있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러면 나도 빨리 먹고 싶어 지고 참을성이 줄어든다.
아웃백은 대기장소에서 대기하고 있으면 직원이 와서 "조금만 더 기다리시면 자리가 날 것 같은데 미리 주문부터 도와 드리겠습니다"라고 말한다. 그리고 얼마 후 자리로 안내를 받고 음식을 기다린다.
반면에 동네 식당은 일단 테이블에 손님부터 앉히고 주문부터 받는다. 손님이 몰리면 여기저기서 주문이 들어온다. 손님들은 자기보다 늦게 온 사람이 먼저 주문을 할까 봐 서둘러 주문을 넣는다. 그리고 직원들은 바빠서 분주하게 움직이다가 주문을 놓치고 주방에 접수 안 되는 사고도 종종 발생한다.
아웃백은 대기의 끝무렵에 주문을 받고 동네 식당은 대기의 시작에 주문을 받는다. 그렇게 되면 주문하고 음식이 나오기까지의 시간이 많은 차이가 난다.
아웃백은 식당을 고급스럽게 잘 꾸며놨다. 직원들도 유니폼을 입고 교육받은 대로 격식 있고 친절하고 손님들을 대한다. 그리고 가격도 싸지 않고 집이랑 거리가 있는 경우가 많다. 또한 자주 오지 못하고 어쩌다 한 번 오는 곳이다(나 같은 경우는 그렇다). 그곳에 가면 나도 매너를 지켜야 할 것만 같은 느낌적인 느낌을 받는다.
동네 식당은 아웃백과는 느낌이 다르다. 덜 고급지고 격식 같은 건 잘 느껴지지 않는다.
이런 분위기의 차이가 사람들의 행동에 영향을 미칠지도 모른다.
회사 업무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식당에서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내놓고, 회사에서 업무 요청을 받고 결과를 내놓는다. 결과물이 다를 뿐 진행되는 과정은 비슷하다. 그런데 내가 일을 어떻게 하고 있는지를 생각해보면 나는 동네 식당 직원이다. 그리고 우리 회사 시스템은 동네 식당이다. 내가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일단 구성원들 간에 각각의 업무에 대해서 합의된 리드타임이 없다. 예를 들어 A 업무는 1시간짜리, B 업무는 6시간짜리, C업무는 7일짜리라는 가이드가 없다. 업무를 함에 있어서 변수가 상당히 많기 때문에 리드타임을 정한다 하더라도 잘 안 맞을 수 있지만 그래도 리드타임은 필요하다. 그것이 있어야 C업무를 요청하면서 내일까지 달라는 말은 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리드타임이 있어야 요청한 사람 입장에서는 리드타임만큼 기다릴 수 있는 인내심이 생길 수 있고, 업무를 요청할 때도 그만큼의 리드타임을 확보하기 위해서 노력하게 된다. 리드타임이 없다면 업무를 요청하고는 결과물을 빨리 내놓으라고 독촉만 할 뿐이다.
업무를 하는 사람은 이미 요청받은 업무만 하더라도 일주일치 이상을 초과했는데, 요청하는 사람은 이러한 사정을 모른다. 그래서 자기의 순서가 언제인지 얼마나 기다려야 하는지 잘 알지 못한다. 그러면 6시간짜리인 B 업무를 요청했는데 3일이 지나고 4일이 지나도 회신이 없으면 답답하고 화가 난다. 업무를 하는 입장에서는 주문이 밀려서 앞의 주문부터 처리해야 하는데 자꾸 독촉을 하고 화를 내니 덩달아 같이 화가 난다. 식당에서 라면을 주문해도 손님이 없으면 5분이면 나오지만 손님이 많으면 20분도 걸릴 수 있다.
아웃백에서와 같이 상황에 따른 업무를 요청하기 위한 대기 시간은 없으며 동네 식당과 같이 즉시 접수할 수 있다. 일이 밀려있어서 접수한다고 해도 처리할 수 없고 다른 일로 바쁘다 보면 접수를 놓치는 경우도 있다. 그래도 동네 식당은 테이블이 한정되어 있어서 테이블이 다 차면 손님을 받을 수 없지만 회사는 다르다. 식당이 축구장 만하다. 손님들이 무제한으로 계속 들어와서 주문을 넣는다.
해외업체(주로 유럽 및 선진국)와 국내업체와 일을 하다 보면 리드타임이 상당히 다르다. 일을 하는 입장에서도 해외업체는 리드타임을 상당히 길게 가져가지만 국내업체는 리드타임을 짧게 가져간다. 해외업체에서 제품 납기가 6달 걸린다(운송을 제외하더라도)는 것들도 국내 업체에서는 한 달만에 만들 수 있다고 한다. 우리나라의 빨리빨리 문화일지도 모른다. 그렇게 한 달 만에 만들기도 하지만 계속해서 납품이 지연되기도 한다. 그래도 해외업체들 보다는 빠르다.
일을 요청하는 입장에서도 해외업체가 이번에 한 달간 휴가가 있고 납품까지 6달 걸린다고 해도 별다른 말을 하지 않는다. 6달 걸리는 것을 기정사실로 하고 다른 곳에서 납기를 줄일 대책을 강구한다. 하지만 국내 업체가 "시간을 두 달은 주셔야 합니다"라고 하면 "야근을 해서라도 한 달만에 납품하라"는 답변을 듣는 것이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회사 분위기도 이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 회사에도 아웃백과 같은 시스템 도입이 필요해 보이지만,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 고객들이 우리 회사를 동네 식당으로 보고 경영진이 동네 식당임을 자처한다면 힘든 일이다.
글을 쓰다 보니 아웃백은 좋고 동네 식당은 나쁘다는 느낌이 있는데 시스템의 차이을 말하고 싶었고, 나는 여전히 아웃백보다는 동네 식당을 훨씬 선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