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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혜봄 Jun 15. 2022

대기업 스펙 중심의 채용의 맹점

무조건 '대기업 스펙'을 중시하는 그대에게

본 글은 작가의 경험을 바탕으로 한 글이나, 3년이 지난 시점에서 작성된 글이므로 약간의 기억 왜곡이나 과장이 있을 수 있습니다.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를 중심으로 재미로만 봐주세요:)


사무실이 살짝 소란스러워졌다. 곧 대기업에서 모셔온 인재가 입사하게 될 예정이라나 뭐라나. 경력 15년 이상의 대기업 출신 팀장님들은 가끔 계셨었지만, 5년 차 이하 직원들 중에서 대기업 출신 인재는 처음이었다.


"이번부터는 대기업 출신이거나 서울 상위권 대학 출신만 채용했으면 해요."


속으로 코웃음을 얼마나 쳤는지 모르겠다. 물론 그들의 스펙이나 출신을 비웃는 것은 아니다. 그만큼 검증된 인재를 데리고 온다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겠지만, 그 스펙을 가지고 있지 않더라도 꽤 괜찮은 실력을 가진 사람들은 많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고스펙 인재를 모셔오면 그에 합당한 대우를 할 여건은 되는지도 궁금했다.


유명 대기업의 전략팀 출신이라던 그분을 소개하며 '전략팀은 타 부서 대비 훨씬 더 스펙을 따지고 똑똑한 사람들만 모여있는 곳'이라는 말을 덧붙이는 것으로 대표님의 기대치를 눈치채기에 충분했다.


그리고, 드디어 그가 입사를 했다. 확실히 기대한 보람이 있었다. 입사 후 빠르게 회사 현황 파악을 한 그는 2~3주 만에 거의 모든 데이터를 뽑아 문제점을 짚고 어떤 것을 먼저 해결해야 할지 제시했다. 그의 발표를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확실히 다르긴 다르네.'라고.

똑똑하다는 소리가 나왔고, 입사 한 달도 안 되어 전 직원 앞에서 저렇게 방향을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이 멋있어 보였다. 그리고 그날, 평화가 깨졌다.

지금 당장의 실무진들로만 꾸려서 해결할 수 있는 솔루션을 제안했던 그에게 대표님은 그 이상을 원하셨다. 좀 더 큰 그림, 본질적인 문제 해결과 회사 전반적인 전략 및 계획을 말이다. 여기서 한 번 짚고 넘어가지면, 그는 대기업에서 겨우 3년 일한 주니어였고 그를 빵빵하게 서포트해줄 팀원 따윈 내부에 없었다. 너무나도 지쳐 보이는 그와 커피 한 잔 하며 물어봤다. 무슨 일 있냐고.


 "아니, 나보고 왜 예전 회사 있을 때처럼 성과를 못 내냐고 하시잖아요. 저는 거기서 명문대 출신 팀원 5명이랑 7년 차 이상 선배님들 3명 이상이 다 같이 몇 개월 동안 밤낮없이 고민하며, 여기 연매출의 몇 배는 되는 예산으로 그 성과를 낸 건데."


너무나 당연한 결과인데, 모르셨던 걸까? 어떻게 대기업 출신 인재 1명으로 대기업만큼의 성과를 욕심낼 수 있을까!

정확히 얼마만큼의 기대치를 걸고 그를 채용했는지는 모르겠지만, 대기업에서의 1/10만큼도 채 지원해주지 못하는데, 그 이상의 성과를 요구하고 있다는 것만큼은 분명했다.

결국 그는 성과를 제대로 보이지 못했다는 이유로 데이터 분석 및 전략 업무에서 마케팅 업무로 옮겨졌고, 잘 맞지도 않는 콘텐츠 마케팅 업무를 하게 되었다. (갑자기 왜...?)


본인의 전문분야도 아닌 업무를, 충분한 경험도 없는 상태에서 자꾸 시키니 성과가 마음에 안들 수밖에 없고 백과사전처럼 두터웠던 대표님의 신뢰는 A4용지 한 장 수준으로 얇아지는 듯했다. 그렇게 머지않아 엄청난 기대를 한 몸에 받고 입사한 그는, 점점 대표님의 기억 속에서 잊혀가고 있었다.


나를 포함한 동료들은 모두 인정했지만, 그는 분명 엄청난 인재이다. 데이터 분석 능력은 스킬적으로도 뛰어난 편이라고 생각했고 인사이트도 꽤나 좋았다. 솔루션 제시 또한 회사에 충분히 적응할 시간이 있었다면 보다 더 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5년 차도 안된 주니어가 스타트업에서 그 정도 제시한 것도 대단하지 않은가.

그런데 충분한 적응기간과 인력배치도 없이 곧바로 원하는 성과를 보이지 않는다고 토사구팽 하다니. 인력낭비도 이런 인력낭비가 없을 것이다.


이 사람이 첫 번째 피해자는 아니었다. 이전에 대표가 ‘극진히 모셔온’ 다른 15년 차 이상 대기업 출신 팀장님들도 비슷한 상황을 겪은 적이 있다.

디지털 마케팅을 주로 하는 교육회사에서 오프라인 마케팅을 주로 하던 엔터업계 팀장님을 모셔오거나, 유튜브 크리에이티브 전문가 분을 모셔놓고는 대표의 의견에 따라주기를 요구했다. 실력 있는 전문가라고 믿고 채용을 했으면 그만큼의 책임과 권한을 함께 주어야 하는데 권한 없는 책임만을 요구하다가 결국 못 이겨 나간 직원이 이미 여럿 있었다.


인재를 영입할 때 어떤 부서에 어떤 역할의 사람이 필요한지 정한 후, 그에 맞는 직원을 뽑지 않아서가 아니었을까? 꼭 퍼즐 조각처럼 다 맞춰지진 않더라도 우리 회사에 없는 인재 중 지금 당장 필요한 인재를 뽑았다면 이런 일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물론 대기업이나 여유가 있는 회사라면 미래를 보고 채용하기도 하지만)

대기업은 스타트업보다 부서나 직무가 훨씬 더 세분화되어 있다. 때문에 연차가 낮을수록 커버하는 업무 범위가 낮을 수밖에 없다. 물론 그만큼 전문성도 높고 깊이도 있겠지만, 넓고 얕은 업무를 커버하는 스타트업의 특성과는 맞지 않을 확률이 훨씬 더 높다.


팀장도 마찬가지이다. 같은 마케팅팀이라도 팀이 세분화되는 범위 자체가 다른데 우리 회사에서 진행할 마케팅 업무와 그 사람의 이력이 맞는지 확인하지 않고 채용했으니 잘 될 리가 없다. 그 사람의 출신 기업, 학교, 스펙보다는 이 직무에 잘 맞는 사람인지를 보는 것이 더 중요하고 대기업과 동일한 리소스를 제공해 줄 수도 없으면서 대기업에 있을 때만큼의 성과를 보이라고 하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욕심인 듯하다.


명심하자, 대기업에서는 우수한 인재들을 뽑아서 '우수한 교육과 시스템과 그간 쌓아온 히스토리를 바탕으로 수많은 시행착오에 대한 학습을 시킨 뒤 우수한 동료들과 함께' 일을 시키기 때문에 그만큼의 성과를 쌓아올 수 있었던 것이라는 것을.

당신이 뽑은 인재는 수많은 역량 중 1~2가지에만 특화되어있을 것이며, 모든 것을 잘하는 인재라면  회사에 입사하는 대신 창업을 선택할 것이다.


대표가 처음인 당신께 하고 싶었던 말

당신에게 필요했던 건 '이탈리아'에서 온 번쩍번쩍한 구두가 아니라, 내 옷장에 있는 '어떤 옷이랑도 잘 어울리고 아무리 뛰어다녀도 헤지지 않는 튼튼한' 신발이었을 거예요. 제 아무리 좋은 인재라도 '지금 우리 회사에' 필요하지 않다면 도움되지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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