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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훈 Nov 26. 2021

프라하의 연인의 연인

Day 9

1.고즈넉한 기상


시간은 어디에서나 누구에게도 고즈넉히 흘러간다. 마치 끝나지 않을 기나긴 수험생활이 그랬던 것처럼, 길 것만 같던 프라하에서의 열흘도 이제 아웃만을 남겨두게 되었다.


오늘도 급한 일정은 없기에 여유롭게 일어나 지구 반대편과 안부를 전한다. 격리조건 변경에 따른 신혼여행 일정과 존버하다가 급등한 카카오페이 주가와 정황상 음성이라고 표기된 pcr 테스트 결과 메일을 어떻게 인쇄할 것인가 누워서 고민고민.


기나긴 고민과 번뇌 끝에 결단했다. 더 이상 아침 컵라면은 힘들다.


2. PCR 검사지 수령


생년월일일 적합하게 입력했거늘 계속 부적합하다 하니 할 수 없지, 찾아가는 수 밖에. 다시 버스터미널과 선별검사소가 있는 플로렌씨로 향했다.


검사 결과를 받은 메일에 따르면 정황상 분명 음성인 것 같은데, 생년월일을 입력하면 부적합하다니. 타향에서 사주팔자를 고칠 수는 없었다.

선별검사소에서 짧은 영어로 메일과 여권을 들이대며 “I want a some paper.” 내가 파피루스다. 용케 알아듣고 인쇄까지 해주는 친절한 검사소 직원에게 인사를 건네고 남은 여유를 즐기기 위해 나섰다.


3. 마지막이 될 혼점

프라하에서의 열흘 중 필스너 투어를 갔던 하루를 제외하고는 항상 혼자 점심을 - 그리고 맥주를 - 먹었지만 마지막이 주는 각별함은 의미 부여를 좋아하는 내게 특별하다. 수없이 시계탑과 화약탑, 바츨라프 광장을 지나치고 까를교를 건넜지만, 아직 못 들린 페트르 타워를 들르기 위해 트램을 타고 블타강을 도하하였다. 주로 배는 안고프지만, 아이폰 충전도 해야 됐고 스스로도 충전해야했기에 길가에 보이는 식당에 들어서 맥주를 시킨 후 호흡을 가다듬어 본다.


4. 페트르 전망대, 아기 예수 성당

프라하를 둘러싼 낮은 산 길을 따라 올라가면 시내가 한 눈에 내려다 보이는 중턱이 나온다. 도심을 내려다 보며 열흘 간의 프라하 생활과 맞이할 새로운 생활을 그려보며 감상에 젖어 보기엔 어느덧 쌀쌀한 오후. 전화도 터지지 않는 산등성이를 넘어 - 해발 150m도 안될 것 같다만 - 정상에 도착해서 보니 파리의 에펠탑을  크기로 줄여 제작했다는 에펠탑이 기다리고 있다. 멀리 카를교에서 조명 들어온 것을 봤을 땐 예쁘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가까이서 보니 초라한 형상. 멀리 보아야 예쁘다. 너도 그렇다.

전화는 터지지 않는데 화장실은 1유로나 내라길래 산등성이에 자유로이 흔적을 남기고 내려왔다.



까를교 건너 프라하성 아래 지역을 말라스트라나라고 하는데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것은 3세 아동을 모티브로 한 아기예수를 모신 성당이다. 아기예수는 평소에는 녹색 옷을 입고 있으나 크리스마스에는 하얀색을 입는 등 시기마다 입는 옷이 다른 것으로 유명하단다. 경건한 마음으로 가족의 건강과 세계 평화를 빌며 마지막이 될 성당 투어를 마쳤다.


5.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

전 날 만났던 동생과 바츨라프 동상 앞에서 조우하여 미루 근처의 크리스마스마켓으로 향했다. 크리스마스가 1년 중 가장 큰 명절인 유럽답게 한아름 송이송이 매달려 있는 크리스마스 장식에, 축제 분위기를 물씬 나게 하는 다양한 먹거리하며, 알아들을 수는 없지만 흥겨움이 가득한 대화들까지.

프라하에서 가장 크게 열리는 구시가지 일대의 크리스마스마켓은 일정상 볼 수 없지만 분위기만은 흠뻑 느끼고 갈 수 있었다.


일행과 뜨거운 와인에 감자전, 소세지를 사서 인근 벤치에 자리 잡았다. 뜨거운 와인은 온 몸을 따뜻하게 뎁혀주었지만, 프라하 올드 소세지는 와우…피순대도 아닌 것이 소세지도 아닌 것이 거리감만 느껴지는 맛. 마지막 밤에 맛 보았으니 그 걸로 충분하다.


며칠 전 방문하려 했던 첼리체로 자리를 옮겨 맥주를 이어갔다. 꼴레뇨 외의 새로운 메뉴를 도전하려고 한 바, 거위 다리 구이를 시켰건만 역시 아는 맛이 제 맛이다. 프라하 떠나기 전에 꼴레뇨나 한 번 더 먹어야지.


자리를 옮겨 못다한 맥주들과 못다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일행은 여행 중에 마주한 인연들과 친해질 법하면 맞이해야 하는 이별이 아쉽다고 했다.

지나가면 잊혀질 것들에 대하여 아니 아쉬운 게 어디 있으랴. 수도 없이 걸었던 카를교와 수도 없이 바라 본 볼타강의 야경을 한 번 마음에 아로새긴 후 마지막 밤을 뒤로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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