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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동훈 Nov 22. 2021

프라하의 연인의 연인

Day 3

1.이른 기상


어제 충분히 많이 돌아다니고 적지 않이 맥주를 마셨음에도 어김 없이 6시에 눈이 떠졌다. 음 오늘도 주식은 떨어졌군. 다행히 시차로 인해 눈 뜨면 장 마감이라 더 볼 일은 없다.

어제처럼 조식과 모닝 맥주를 마시며 오늘의 일정을 그려본다. 프라하성 투어는 한국어 가이드로 들어보라는 동반자의 조언에 따라 월요일에 시내 투어 일정을 잡은 바, 오늘도 근교로 가면 괜찮을 것 같아 적당한 도시를 택하기 위해 여행서를 뒤적뒤적.


그러다가 정한 올로모우츠. 체코에서 가장 문화재가 많은 도시며 그리스 로마 신화 관련 분수들도 많다고 하니 신화를 좋아하는 내게 적당한 여행지였다.


2. 이동


자 그럼 어떻게 가야 하나. 구글맵을 키고 둘러보니 프라하 중앙역에서 Leo Express를 타고 왕복 4시간이 소요되는데, 막차가 오후 4시인지라 실질적으로 4시간 밖에 머물지 못하는 일정.

게다가 버스 비용이 왕복 53유로(약 7만원). 왕복 비행기가 70만원인데 10%나 되는 돈을 들여 갈 만한 곳인가 싶었으나 언제 또 가보겠나 싶어 서둘러 프라하 중앙역으로 향했다.


기술의 발달로 스마트폰과 보조배터리만 넉넉히 있으면 어디서든 길 잃을 걱정 없이 잘 다닐 수 있게 되었으나 정확한 좌표는 또 다른 이야기이다. 정황상 중앙역 앞 버스 정류장인데 - 서울역 환승 정류장 같은 건 줄 알았다 - 아무리 찾아도 Leo는 보이지 않아 당황하던 찰나 용기내서 흡연 중인 독일 병정에게 길을 물었다.


독일 병정은 출신을 밝히더니 할아버지가 올로모우츠에 있어서 다녀오는 길이라며, 어머니가 체코인이라 본인이 체코어를 할 줄 아니 - T.M.I이긴 허다 - 도와주겠다며 선뜻 나서는 것이 아닌가.

오, 왓 어 나이스 가이. 허나 그 역시 여행자인지라 체코인에게 물어도 제대로 된 답을 못 찾던 찰나 구글맵을 자세히 보더니 아무래도 기차 같단다.

오, 역시 하프 체코인이다. 물론, 아이콘을 제대로 해석 못한 내 실수에서 비롯된 것이지만.


고맙다며 연신 땡큐를 남발하자 담배 마저 피우고 같이 가주겠다며 플랫폼까지 데려다 주었다. 그 짧은 시간에 한국에서 왔냐고, 자기 룸메가 광주에서 왔다, 한국 음식이 맛있었다라고 정보를 쏟아 내길래 두 유 노우 싸이? 두 유 노우 bts? 로 대응하려다 친절한 독일 병정에게 시련을 주고 싶지 않아 굿 럭으로 마무리했다.


생각해보니 몇 안 되는 해외 체류 경험 상 기차는 처음이었다. 게다가 고속철이라니. 물론 120km 거리를 두 시간에 주파하는 것이 -광호형이 조금만 더 자전거 타면 따라잡을 수 있을 만한 속도 - 과연 고속철인가 싶긴 하지만. 그래도 나름 와이파이도 되고 쾌적한 바, 화장실만 유료가 아니라면 오는 길엔 맥주 사들고 타야겠다.


3. 올로모우츠


프라하에서  두 시간 반을 걸려 도착한 올로모우츠. 모라비아 공화국의 주도였던 도시인지라 프라하 다음으로 문화 유적이 많은 동네란다. 우리나라로 치면 부여, 전주쯤 되려나. 역에서 내려 트램을 타고 몇 정거장을 지나니, 정황상 관광지로 보이는 곳에 관광객들이 줄 지어 내리길래 따라 내렸다.

그러자 눈 앞에 펼쳐지는 압도적인 광경. 높이가 35미터나 되어 호르니   광장의 랜드마크인 이 건물은 체코에 도착하여 본 성당이 아닌 건물 중 가장 웅장한 건물이었다. 성 삼위일체 석주라 불리우는 이 건물은 17세기 중반 페스트의 종식을 기념하기 위하여 세상 어디에도 없는 석주를 만들 목적으로 만들었다고 한다. 하느님과 축복을 받는 예수님과 미카엘이 삼위일체를 이루고, 성모 마리아가 승천하며 두 명의 천사를 대동하여 삼위일체를 이루는 장관에 인간의 믿음이란 과연 무엇인가하는 근원적인 의문이 들었다.

분수의 도시인만큼 시내에는 여러 분수가 있다. 물론 어떤 연유인지 물을 뿜어내고 있진 않았지만. 시의 중심인 호르니 광장에는 그리스 신화에서 포세이돈과 동격인 넵튠 분수, 본인이 입을 찢어버린 사자 가죽을 뒤집어 쓴 헤라클레스 분수, 그리고 올로모우츠를 발견한 실존 인물이나 신격화된 카이사르 분수가 있으며 광장에서 조금만 걸어가면 머큐리 분수가 있다. 여행서에는 머큐리가 상업의 신, 부의 신이라고 되어 있길래 “어라, 이건 헤르메스인데?” 라고 싶어 찾아보니 그리스 신화에서는 헤르메스가 로마에서는 머큐리가 되었다고 한다. 수은, 수성의 어원이 된 그 머큐리 맞다. 부단히 공부해야지.

점심은 브로콜리 스프와 사슴고기 뇨끼에 (정황상) 꽃빵. 그리고 필스너. 맥주와 먼저 나온 스프를 슬슬 먹고 있는데 이십 분을 기다려도 뇨끼 이 녀석은 감감 무소식이 아닌가. 심지어 나보다 늦게 온 손님들한테는 나왔는데. 그나마 영어가 되는 젊은 직원을 불러 “How long I will wait?” 당최 맞는 영어인지는 모르겠으나 대충 알아들었는지 스프를 먹고 있어서 안줬단다. 아이고, 그냥 국 먹듯이 하려고 한 건데. 그냥 달라고 하자 기다렸다는 듯이 서빙해주는데 맛은 그닥. 사슴고기는 어떤 걸까 싶었는데 - 물론 몇 점 없기도 했지만 - 염소 고기와 크게 다른 것 같지 않더라. 수만리 흑염소탕이 최고다. 물론 꽃빵에는 고추잡채.


식후 설렁설렁 광장을 거닐어 보니 크리스마스 마켓 준비가 한창이다. 많은 가게들이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물씬 풍기며 영업을 하거나 할 것으로 보이니 다음 주만 지나면 한껏 기분 날 것 같다. 물론 여행을 더 미루면 좋았겠지만 그럴 여유가 없던 바, 전조단계의 흥성임으로도 충분하다.

크리스마스 마켓 근처로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마시고 있길래 슬쩍 보니 정황상 뱅쇼인 것 같아 냉큼 한 잔 달라고 했다. 탈세하려고 하는지 카드는 안되고 온리 캐쉬라길래 이를 어쩌나 싶었으나 다행히 어제 화장실 가고 남은 50코루나가 주머니 속에서 발견. 제 갈 길을 찾아 떠나갔다.

따뜻하게 뎁히니 수분이 증발하여 알코올 도수가 더 높아지는 건가. 한 모금만 해도 속이 따끈해지는 것이 아주 든든한 친구를 발견한 느낌이랄까. 그래서 든든한 친구 한 잔 더했다. 든든한 친구는 언제나 든든하다.


2시간 반을 걸려 도착한 도시에 2시간 반쯤 머무니 구경을 다 한 것 같아 일정을 잘못 잡았구나 싶었지만 2시간 반 걸려 돌아가는 수밖에. 우리나라로 따지면 점심에 결혼식 가기 위해 부산 다녀오는 느낌이군. 보통 그렇게 가면 교통비는 줄텐데. 축의 많이 한 셈 쳐야겠다.


4. 돈 조반니에서의 마지막 밤


짐 들고 옮겨다니기 귀찮다는 이유로 열흘을 시내의 한 게스트하우스에서 통으로 묵으려 했었다. 생각해보면 일정 따라 숙소를 옮길 수도 있는 건데, 최대한 느긋하게 보내려다 보니 출발 전 날 부랴부랴 예약을 마쳤다. 제대로 보지도 않는 사전입국신고서에 주소 적어가며.


전 날 밤, 본인이 전에 왔었던 호텔이 싸게 나와서 본인이 3박을 예약했으니 숙소 일정을 조정하라는 두바이 김서방의 다급한 보이스톡. 여행지에서 숙소는 주로 잠만 자기에 혼자 다닐 때에는 게스트 하우스로 충분하다고 생각했는데 꽤나 좋아보이는 호텔이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물론 더블 침대를 3박 내내 혼자 쓰게 될 줄은 몰랐지만.


호텔은 지도상 시내에서는 다소 떨어져 있는 것으로 보이나 프라하가 서울에 비하면 작은 도시고, 지하철도 금방 오기 때문에 실질적으로는 홍대와 이대 정도 거리쯤 되려나. 게다가 출구가 호텔을 바라보고 있는 초역세권. 이 정도면 접근성과 편의성을 다 갖추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나저나 호텔 이름이 왜 돈 조반니인가. 로비에 돈 조반니라고 명찰을 단 아저씨가 어서 오라고 손짓 하고 있어 역사적 인물인가 싶었다. 궁금해서 찾아보니 모차르트의 오페라 제목이자 주인공이 돈 조반니라 한다. 방탕한 삶을 살던 돈 조반니가 비극적인 결말을 맞이한다는 얘기라나. 알아듣진 못하겠지만 예술의 도시 프라하를 뜨기 전에 공연 한 번 보고 가야지.

올로오무츠까지 왕복 5시간의 긴 여정에 지쳐 시내 밤 산책은 간략하게 하고, 고향의 음식 켄터키 후라이드 치킨을 사서 남은 맥주들로 홈파티를 하기로 했다. 전세계 어디서도 고향의 맛을 느끼게 해주다니 참 고마운 할아버지다. 분명 우리나라보다 물가가 싸다고 들었는데 빅맥지수는 결코 낮은 것 같지 않다만.

예상했던 대로 남은 맥주들로는 부족했던 바, 상비약으로 챙겨놨던 베체로브카 작은 병도 꺼내어 까를로비 바리에서 산 잔에 가득 담아 주둥이로 한 잔. 과도한 육식으로 인한 소화불량이 싹 해결되는 것만 같다.


4-1. 꽃보다 할배 - 프라하편


꽃보다 청춘을 보고 무작정 라오스로 떠났던 시절이 있었다. 그들의 발자취를 좇으며 방비엥에서 놀던 시절이 떠올라 유튜브에 검색해보니 아니나 다를까 나영석씨는 프라하도 다녀갔던 게 아닌가.


각자 5-60년씩 되는 연기 경력과 그 보다 더 긴 삶의 경력을 가진 할배들이 여행에서 느끼는 소소한 즐거움에 행복해 보이는 걸 보고 혼술하면서 슬몃슬몃 웃음이 났다. 아마 이게 나영석씨의 마케팅 포인트였을텐데 정확히 당했지 모야.


그리고는 나이 먹고도 함께 여행 다니고 싶은 친구들 그리고 항상 함께할 부인에게 나이 먹고도 재밌게 살자는 약간은 간지러운 카톡을 보냈다. 당연히 한국에서는 잘 시간이니까 답을 기대한 건 아니거늘, 박 모씨는 나라 걱정에 잠 못 이루고 있다가 칼답이 오는 게 아닌가. 나라 걱정되면 술 더 먹어서 주세나 더 납부하라고 삶의 고찰이 담긴 조언을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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