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수동 구르프 여신
행복이 찾아오도록 안테나는 늘 세워두자! 행복은 작은것에서도 온다.
토요일 오전 ~ 새벽에 일어나 예정된 건강 검진을 받고 봉은사에서 불공을 드렸다. 새벽 안개가 언제 있었냐 싶을 정도로 화창한 날이다. 영동대교를 신난 음악을 틀고 건너 성수 사거리 신호대기에 멈췄다.
성수 사거리는 서울의 다른 사거리와 다른 느낌이 있다. 우선, 차가 막히거나 사거리 횡단보도 앞에 정지하게 되면 ... 괜히, 미소를 짓는다. 그리고, 무언가를 기다린다. 성수사거리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2호선 전철이 지나가는 모습을 보고 싶은 마음으로 기다린다.
사실 차만 몰고 다녀서 지하철은 1년에 몇번 안타는데 말이다. 뭐라 표현 못하는 나만의 갬성이다. 오늘도 그런 마음으로 성수 사거리에 멈춰 있는데 횡단보도로 지나가는 사람들을 하나둘 관찰하기 시작했다. 뛰어가는 학생들, 두 손 꼭잡고 건너가는 연인 커플, 나 같은 동네 아저씨 등... 그 사이 내 귀를 때린다. 두둥두둥 촤르륵 촤르륵 슈우웅~ 머리위로 2호선이 지나간다. 바람도 적당하고 스피커로 크게 틀어 놓은 박기영의 마지막 사랑도 너무 감미롭게 들린다.
이 때, 내 앞을 가로 질러 따릉이 한대가 지나간다. 순간 ~"와우~ 멋지다." 이런 말이 나와 버렸다. 자전거 타고 지나가는 "20대 후반으로 보이는 여자" 였다. 요즘 워낙 표현이 부정적으로 쓰여서 대체어를 못찾겠는데... 나는 오늘 이렇게 표현하고 싶다. '성수동 구르프 여신?" 이렇게 표현해보자! 겨우 3~4초 스윽 하고 내 차 앞을 지나갔는데 여운이 강하게 남아서 자전거가 보이지 않을 때까지 쳐다보다가 결국은 뒷차가 빵빵거리고 난리가 났다.
성수동 구르프 여신을 묘사해본다.
자전거는 따릉이, 자주 타본 솜씨다. 나는 을지로가 회사라 퇴근할 때, 청계천변으로 따릉이 타고 퇴근하는 사람들을 많이 보는데 ... 가끔 정말 멋지게 타고 가는 사람들을 보면 멋지다라는 말이 절로 나온다.
성수동 구르프 여신은 키는 160정도로 보이는 20대 후반인데, 자전거에 앉은 모습이 허리가 꽂꽂하게 세운 바른 자세로 속도는 10킬로 정도의 약간 빠른 속도로 횡단보도를 지나가고 있었다. 검은 바지 정장 차림이 단정해 보였고 긴 머리를 바람에 45도 각도로 날리고 있고 앞머리는 구르프를 말고 있었는데 구르프가 우리집 딸들이 사용하는 크기가 아니라... 마치 김밥천국의 돈까스김밥 같은 굵고 긴 길이의 구르프 였다. 바람을 가르고 슝~ 지나가는 모습이 너무 멋진데 구르프 때문에 너무 많이 웃었다. 사실, 얼굴은 기억이 안난다. 그 상황을 사진처럼 찍었는데 얼굴은 기억이 안난다. 아마도 얼굴은 볼 생각도 못할 정도로 상황이 웃겼다고 해두자.
요즘은 지하철, 사무실 가리지 않고 구르프 말고 있는 사람들을 종종 본다. 궁금해서 몇번 왜? 그러고 있는지 물어봤는데, 대부분 남친을 만나기 전이나 그런 것과 무관하게 자신의 패션을 위해 머리를 말고 있는 것이라고 했다.
내가 잘보이고 싶은 사람외에는 나의 구르프 말이를 봐도 상관 없다는 마음...
이런 마음은 ... '나는 너무 좋다.' 세상을 살면서 모두에게 좋은 사람이나 예쁜 사람이 될 필요는 없다고 생각한다. 성수동 구르프 여신은 그렇게 내 앞을 지나갔는데 그 장면을 사진으로 찍어서 내가 보관하고 있는 것 처럼 그 순간이 찰깍 내 뇌리에 박혔다. 가끔 성수서거리를 지나갈때나 따릉이를 보면 생각이 날 것 같다. 그리고, 웃을것 같다.
사람이 죽고 사는 것, 좋은 것 나쁜 것, 행복한 것 불행한 것 등 항상 밝고 어두움이 교차하는 것이 삶인데 ... 생각보다 일상에서 찾으려고 하면 행복은 어디에든 있다. 길에도 하늘에도 커피숍의 사장님의 대화 속에서도 식당 이모님의 핑크 소세지 계란 부침 서비스에도 행복은 있다.
그런 행복도 그냥 오는 것은 아니다. 행복해야겠다는 스스로의 마음을 늘 마음속 어딘가에 넣고 다니자... 행복도 행복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에게 온다고 믿는다. 나는 요즘 작은 행복의 씨앗들을 곳곳에서 찾으려고 노력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