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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ouisKurts Mar 21. 2021

난, 그냥 그런 사람이니 이해해

너와 달라 말 못 했던 이야기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그러니 네가 그냥 이해해."



쌀쌀한 공기가 방안을 가득 메우고 어색한 기류가 흐르기 시작했다. 어찌 말을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공간에 놓인 채 무슨 답을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하다가 이내 생각을 조금 정리하고 상대방의 입장에서 이해하려 애를 썼다. 아니, 애를 쓰려고 했다는 표현이 더욱 맞겠지 인생의 관계에서 아니, 남녀 연인의 관계에서 상대방을 이해하고 배려한다는 것이 이토록 어렵고 곤란한 것이었는지를 새삼 깨닫는다.



사람이 살아가면서 모든 이를 만족시킬 수 없듯 모든 상황에서 상황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간헐적으로 왜 이런 행동을 하는지 알 수 없는 사람도 있고 굳이 비수가 되어 가슴에 꽂힐만한 말을 하며 관계를 악화시키는 경우 역시 왜 생기는지 이해하기 어려운 순간들이 있다. 배려하려 해도 배려가 뜻대로 되지 않고 이해하려 해도 그 행동이 나에게 어느 순간 스트레스의 일부가 되는 순간, 인간관계는 서서히 무너진다.



사소한 차이는 맞춰가며 더 이해와 배려를 통해 관계 개선을 할 수 있다 믿지만 상대방은 내가 아니듯 나와 같은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아야 비로소 다른 길이 보이고 상대방을 이해하고 그 순간을 넘어갈 수 있다. 비교적 간단한 한 줄의 이야기지만 조금씩 균열이 생기기 시작한 이해의 관계에서 뜻밖의 어그러짐은 생각보다 더 큰 간격을 만들어내기도 한다.



서른 살이 넘어가며 결혼을 언제 할 거냐 묻는 지인의 물음에 멋쩍은 웃음을 지으며 "곧 하겠지. 서른 중반에는 하지 않을까."라는 무미건조한 말을 뱉고 괜스레 칼칼해진 목을 덮을 겸 커피 한잔을 원샷해버리기도 했었다. 얼음까지 와그작 부숴 먹다가 아직도 풀리지 않은 나와의 연애 관계 때문에 먹먹한 가슴 때문에 얇은 한숨을 내쉬었다.



'서로를 이해하고 알아가는 건 서로 더 많은 대화를 해봐야 할 것 같아.'


'왜 그리 대화나 연락에 목을 매는지 이해가 안가. 필요할 때 하면 되잖아.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



예쁘고 귀엽고 외적인 부분이 모든 면에서 잘 맞는 사람과 만난다는 것은 꽤나 큰 부분을 차지하고 관계를 이어가는 데 있어 큰 부분을 차지하는 것은 맞다. 제 아무리 성격 좋은 사람이라 하더라도 내 이상형과 대단히 동떨어져 있고 만남이 내키지 않는 상태라면 쉽사리 관계를 이어가기 힘들다. 반대로 잘생기고 키도 훤칠한 사람이라면 관계의 면에 있어서 수월한 점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20대는 그랬다 확실히. 외모가 기준에 맞지 않고 소위 같이 다니기에 쪽팔리지 않은 수준의 사람이어야 사귀고 만나볼 수 있다 생각했던 적도 있고, 그 기준에 넘어서지 않는 사람이면 관계를 진전해 나갈 여지 조차 보이지 않았던 것도 사실이다. 20대의 나는 속물이었다. 외면보다 내면을 많이 보는 사람이라고 그렇게 누누이 얘기를 했던 것이 무색했을 만큼.



공교롭게도 30대는 또 다른 국면이다. 경험이 많고 생각이 많다는 것은 따지는 것이 많아진다는 의미다. 이 사람의 가치관이나 됨됨이는 괜찮은지, 안정적인 직장은 있는지 모아 둔 돈은 있는지 앞으로의 비전은 어떨지 생활 방식은 어떨지 등등 많은 면에서 이 사람의 가치와 성격을 바라보는 것이 아닌 모다 물질적인 부분에 신경이 쓰이는 부분이 늘어간다.



조그만 것에 신나서 이야기를 풀 때면 내 이야기 인듯 함께 공감하고 슬픔에 잠길때면 함께 눈물을 흘릴 수 있는 것 만으로도 충분한 순간이 있다. 아무이유없이 공원에서 한시간쯤 사색을 즐길때도 이유를 묻지 않고 여유를 즐길 수 있는 마음이 통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하는 순간이 늘어간다.



왜 있지 않은가, 나의 가치관이 흔들린다는 말. 내가 아무리 선한 취지의 이야기를 했어도 상대방이 올곧게 이해를 하지 못하고, 반대로 이해하며 내가 의도한 방식과 달리 많은 부분에서 싸우게 되고 자꾸만 틀어지는 것이 느껴지는 순간이 잦게 발생하다 보면 과연 내가 바르게 말했던 말이 진정 우리 관계를 위한 말이었는지 혹은 그저 내가 잘못되었는지를 인지하지 못하게 되어버려 혼란이 오게 된다.



그 과정이 심화되면 때로는 세뇌가 되기도 한다. 네가 한 것은 잘못되었다는 인식을 깊숙이 심어주게 되고 그러다 보면 내가 잘못했으니 이 부분을 계속 바꿔야만 한다며 계속 스스로를 채찍질하게 된다. 그 채찍질이 처음에는 가볍게 보잘것없이 느껴지지만, 한 대의 채찍질과 열 대, 스무 대 이상의 채찍질이 가해지면 그걸 받는 입장도 어느 순간은 견딜 수 없는 순간이 발생한다.



더 이상 그 채찍질을 견디고 싶지 않아 튕겨나가게 되는 그런 순간.



관계에서 일방적인 요청이나 자신만을 위한 요구는 분명 위험하고 지양해야 한다. 그러나 나만의 세계와 가치관이 있다 해서 연인이 되고 관계를 만들어나가는 순간 조차 나는 원래 이랬다며 이해하길 바라고 그저 그것만이 나라는 것을 이야기하는 것은 한편으로 이기적인 행동이다. 그럴 거면 진작부터 만나지를 말았어야지.



연인관계는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만나는 것이 아니라, 좋은 느낌을 준 상대방과 더 많이 더 자주 만나보며 관계를 이어나가고 싶은 마음이 대화를 이끌어가는 것이다.



나는 그런 사람이니 이해해,


나는 그런 사람이지만 너에게는 달라.



일방적인 것은 관계를 와해시키지만, 서로의 동등한 노력은 관계를 개선시킨다.


과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오늘,



개선되지 못한 사람과의 책장을 소소로이 덮으며 다음 책장을 여는 그 순간을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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