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이렇게 평범하게 사는건 어려운걸까
당신은 대한민국 평균이신가요?
대한민국 평균이란 말이 새삼 낯설게 느껴진다. 내가 과연 평균치란 단어에 어울리는 사람인지 감히 가늠도 되지 않을 정도로 대한민국에서 평균의 삶을 산다는 것은 생각보다 쉽지 않다. ‘나는 남들 버는 만큼 벌어.’나 ‘일반적으로 사람들 사는 만큼 살아.’라는 말을 한다는 것도 쉽지 않은 것이 그만큼 대한민국의 평균은 어쩌면 평균이 아니다.
TV 뉴스에서 2030 청년의 40%가량이 취업을 하지 못해 여전히 구직 중이며 그 비율은 여전히 증가 추세에 놓여 있다고 한다. 장기간 취업하지 못한 청년층 고용률은 4년 내 가장 낮은 수준을 나타냈고 취업이나 수험준비를 하는 비율은 역대 최고치를 나타내고 있는 요즘이다.
대한민국 임금 평균소득이 세전 기준으로 3600만 원(월 300만 원) 수준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고임금 시대로 접어들었다. 정작 내 주변에는 그 정도 고임금 근로자가 많지 않은데 대한민국의 지표는 그렇지 않다고 드러낸다. 하루 8시간에 꼬박 야근이나 기타 근무를 해야 겨우 발끝에 닿을 수 있을 정도의 임금을 받는 절대 대다수의 사회 초년생과 사회경력단절자의 사회생활 평균은 그야말로 넘사벽이 되어버렸다.
단순히 코로나 탓을 하기엔 어폐가 있다. 이웃 나라 일본은 최근엔 한 뿔 꺾이긴 했으나 여전히 해외 취업을 원하는 외국인 근로자를 우대하고 있으며 미국 역시 바이든 정부로 들어서면서 취업비자 약 22,000개 충원 예정이며 미국 내 고용주는 이미 97,000곳 이상이 지원하여 다양한 국적의 이민자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일할 수 있는 노동력을 찾고 있다. 더욱이 그렇게 힘겹게 구한 노동력의 가치를 존중하고 있으며 미국 내 시민권자와 대등한 대우를 약속하고 앞으로도 그렇게 운영하고자 계획을 수립하고 있다.
좋은 대학을 다녔고 능력 있고 실력 있는 사람들의 취업률은 높고 고임금 노동자로서 업무를 한다고 생각하겠지만 뜻밖에 고학력 저임금자로 전락해버리는 예도 많다. 현시점에서 취업한 것만으로도 어쩌면 대한민국에서는 평균이라는 기대치에 서 있다고 말할 수도 있겠지만 철저히 배척되어 3D 업무를 해야 하는 환경에 놓인 정말 많은 수의 사람들은 여전히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있다.
2021년 4% 정도에 육박하는 임금상승률을 기록했지만, 체감은 크지 않다. 고용주와 피고용인 간의 2022년도 임금 기대 상승률의 차이 값은 무려 1,500원이나 된다고 하니 그 갭을 좁히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 한편으로 단순히 임금상승만 꾀한다면 중위소득 값에 들 수 있을까 하는 의문도 되려 든다.
2010년대 초반 4천 원대에 머물렀던 아르바이트 시간 당 근로소득은 누구나 납득할만한 금액이었으며 조금 더 힘들고 어려운 일을 하는 경우는 1.5배 많게는 2배 이상의 임금을 받아가며 일을 했던 기억이 있다. 그러나 지금은 업무 강도를 논외로 하고 그저 시간당 금액이라는 허울에 둘러싸여 무조건 특정 금액 이상을 받아야 하는 상황으로 흘러가고 있다.
‘일한 만큼 돈 받기 싫어? 그럼 누구는 8천 원씩 최저임금 받을 때 반절만 받던가.’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의 의견도 존중한다. 그런데 언제까지고 아르바이트생이나 비정규직을 전전하며 일을 할 생각은 없지 않겠는가. 소위 일컫는 아르바이트(Part-time Job)는 특별한 업무 스킬을 필요로 하지 않으며 간단하고 편안하게 업무 수행할 수 있으며 특별한 책임의식이 없어도 할 수 있는 일들을 맡기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런데 만약 그들의 최저시급이 기하급수적으로 올라 중소기업 신입사원의 연봉을 단순히 아르바이트하면서 벌 수 있다면 어떻게 변할까?
당연히 대부분의 많은 사람이 일하는 것을 포기할 것이고 정말 최저시급에 영향받지 않는 고임금 노동자들만 직장에 다니며 근무하고 다닐 수 있을 것이다. 아르바이트생과 같은 임금을 받으며 스트레스도 받지 않는 일을 할 수 있는 곳이 있는데 왜 중소기업에 취업하겠는가. 아닐 거라고? 중소기업도 최저시급 영향을 받아서 월급을 올려주면 되는 거 아니냐고?
소득주도 성장의 문제는 돈을 더 벌어서 소비를 증진 시키자는 목표나 현실은 녹록지 않다. 개인은 돈을 더 벌고 조금 더 나아지는 삶을 ‘단기간’살 수 있을지는 몰라도 궁극적으로는 임금을 지급하는 중소기업들은 얼마 버티지 못하고 파산을 맞닥트리고 말 것이다.
정말 더 큰 부익부 빈익빈의 양극화가 더해지는 셈이다. 대한민국에서 평균의 삶을 산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에 가까워진다는 말이다. 현재 40%에 육박하는 미취업 수는 이를 증빙하고 기업은 채용을 꺼리고 있다. 코로나 시대가 정점이던 2020년 초반 이후 경제는 우상향 곡선을 타고 상승하고 성장하고 있지만, 사람들은 오직 돈을 벌어 투자를 바랄 뿐 상식적인 근로 생활 및 근로 생활을 통해 벌어들이는 수익은 그저 일부에게만 가능한 일에 해당한다.
비관적으로 이야기했지만, 더욱이 힘든 상황을 대비해야 다음 단계의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다. 우리가 사는 지금 이 순간 나는 여전히 고민스러웠다. 나는 대한민국의 어디쯤 있는 것일까? 나는 대한민국의 평균에 있을까?
당신은 대한민국의 어디쯤이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