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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시형박사 Jun 12. 2019

월드컵 열기에 흠뻑 젖어보자

동아일보 칼럼 연재 2002.03.20 기재

『다음 칼럼은 90년대~ 00년대 이시형 박사가 젊은이들에게 보냈던 이야기입니다. 약 20년의 시간이 지나고, 그때의 젊은이들은 4-50대의 중년이 되었고, 이제 다시 새로운 20대의 젊은이들이 이 사회를 이끌어 나가려고 합니다.  지난 이야기를 읽으며, 그때에 비해 지금은 우리 사회는 얼마나 발전했는지, 어떠한 새로운 문제가 발생하였는지, 함께 생각해 보는 시간을 가졌으면 합니다. 』



 요즈음 우리 한국 터키 친선 협회는 부쩍 바빠졌다. 월드컵에 터키 팀이 출전하기 때문이다. 손님맞이에서 응원전까지, 모두들 가벼운 흥분에 들떠있다. 응원복 디자인, 제작 주문도 마쳤다. 회원들 성금으로 티셔츠도 6천 매 마련했다. 플래카드와 국기는 대사관 측에서 마련한다니 고맙다. 만반의 준비는 끝났다. 이제 결전의 날만 남았다.

 문제는 서울에서 열리는 중국과의 대전이다. 중국은 우선 응원군 규모에서 엄청나다. 거기다 이웃사촌이라 한국 연고자까지 가세하면 온통 운동장이 중국 일색이 될 게 틀림없다. 상대적으로 터키 응원석이 너무 초라해질 것 같다. 기가 죽지 않아야 할 텐데. 믿는 건 터키 팀의 실력이다. 터키는 유럽 챔피언이다. 응원은 열세라도 시합에서 압도해야 할 텐데. 두 팀 실력을 전문가는 어떻게 평가하고 있는지 궁금하다.

 브라질과는 울산에서 붙게 된다. 여기도 만만치 않다. 브라질은 한국 교포가 많아서 국내 연고자도 적지 않다. 그리고 브라질 축구 팬들의 열기는 이미 세계적이다. 우리와는 지구 반대쪽 끝이지만 축구라면 결코 거리가 문제일 수 없는 게 이들의 열정이다. 삼바 춤까지 흔들어 대며 신나게 달려올 것이다. 거기다 축구 명문의 관록과 전통까지 두루 갖춘 팀이다. 정보에 의하면 그쪽 친선 협회도 아주 치밀하고 조직적인 준비를 하고 있다는 데 우리가 걱정이다.    


 ※

 코스타리카전은 인천에서 열린다. 여긴 좀 색다른 걱정을 해야 하는 일전이다. 코스타리카는 거리도 멀고 나라도 작다. 응원군이 아무래도 많지 않을 것 같다는 게 조직위의 판단이다. 우리에겐 다 귀한 손님이다. 우리 회원이 너무 터키만 일방적으로 응원할 수 없을 것 같다. 서운한 기분이 들지 않게 상대팀의 기분을 배려해 가면서 응원을 해야 할 것 같다.

 그래, 당신은 어느 팀인가요? 어느 팀을 응원하고 있는가요? 당연한 걸 묻는 게 아니다. 붉은 악마가 들으면 화낼 소리를 묻고 있는 건 물론 아니다. 그렇다고 편 가르기를 부추길 속셈으로 묻고 있는 것 또한 아니다. 우리에겐 다 귀한 손님인데 차별을 하자고 묻는 건 더구나 아니다.

 어느 나라에 오건 우리로선 손님맞이에 한 점 소홀함이 없어야 한다. 경기장 밖에선. 하지만 일단 경기장에 들어서면 내가 좋아하는 팀이 있어야 맛이다. 그래야 목이 터져라 고함도 나오고 흥분도 된다. 아슬아슬하고 스릴도 있다. 화도 나고, 또 다음 순간 승리의 환희에 도취될 수도 있다. 이게 보는 재미다. 그래야 경기에 빨려 든다. 이렇게 게임을 즐기려면 어느 한쪽의 열성 팬이 되어야 한다.

 물론 점잖게 양쪽 모두를 응원할 수도 있다. 그러다 멋진 플레이가 나오면 어느 팀이건 박수를 보내고, 이런 응원도 나쁘진 않다. 인격적인 수양이 잘 된 사람이라면 이것도 좋다. 혹은 아예 안방 TV 팬도 적지 않을 것이다. 입장료도 만만찮고 덥고 가기도 복잡한데. 그게 좋다면 그것도 좋다.    


 ※

 그러나 경기는 역시 운동장에 가서 봐야 한다. 그 뜨거운 열기와 함성에 흠뻑 젖어 보라. 앉았다 섰다, 고함도 치고, 핏대를 올리고……. 땀에 젖은 온몸이 후끈 달아오른다. 이보다 더 통쾌한 일도 없다. 이건 안방에 앉아선 결코 맛볼 수 없는 스탠드의 진수다.

 또 그런 열기와 흥분에 취하려면 내가 응원하는 팀이 확실히 있어야 한다. 그래야 옆자리 모르는 사람과도 뜨거운 교감이 절로 된다. 특히 이번엔 외국 손님이다. 그들과 함께 어깨동무하고 얼싸안고 환호하고……. 우리 일생에 다시는 맛볼 수 없는 귀중한 순간이 될 것이다. 세계와 손잡고 한마음이 되는 일체감을 가슴에 새길 수 있을 것이다.

 당신이 아니라면 아이들이라도 꼭 보내라. 평생에 잊을 수 없는 좋은 추억, 훌륭한 체험이 된다. 이게 진정 살아있는 교육이다. 아이들은 세계를 향해 눈을 뜨게 될 것이다. 외국 팀을 진심으로 응원할 수 있는 기분, 이게 세계화다. 그 아이는 앞으로 그 나라 일에 관심을 갖게 될 것이다. 이걸 계기로 마치 제2의 조국 같은 느낌도 갖게 된다.

 어느 팀이라도 좋다. 친선 협회 회원이 되어도 좋고, 홈스테이를 신청하는 것도 좋다. 말이 안 통해서? 걱정마라. 뜨거운 가슴이면 된다. 외국 손님이 집에 오면 아이들 눈빛이 달라진다. 그걸 인연으로 세계를 달릴 징검다리가 놓이게 된다.

 한데, 아직도 팀이 없다고요? 터키 응원석으로 오십시오. 터키는 우리에겐 혈맹의 형제국입니다. 피 흘려 우리를 지켜준 형제들입니다.

 지난번 지진 때 우리가 펼친 거국적 모금 운동이 터키 TV에 방영되던 날그곳 시민들은 감동의 눈물로 지켜봤다고 한다특히 노병들은 한국전에 참전한 사실이 그 날 만큼 자랑스러운 날이 없었다고 합니다.

 터키 스탠드로 오십시오의리와 우정을 위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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