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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마치 Jan 13. 2020

비자발적 맥시멀리스트의 삶

두 개의 집


 작고 추운 나의 집은 아메바 같다. 무한 증식하는 아메바.


 서울 집에 도착해서 방에 들어섰을 때 느낀 위화감은 이런 거였다. 분명 짐을 엄청 뺀 것 같은데 왜 똑같지...? 원주에서 달랑 책 한권만 들고 왔는데도 이틀을 지내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나는 집을 이사한 것이 아니라 그냥 하나를 더 만든 거다. 두 개의 완전한 집.

 

 생각해보면 5개월 남짓 머물 집에 참 많은 소비를 했다. 우선 이불 세트와 매트리스를 샀다. 잠은 자야하니까. 공부를 해야 하니 책상과 의자, 스탠드도 샀고, 먹고살아야 하니 식기도 구매했다. 친구들과 남자 친구가 커피포트를 포함한 조리기구를 사줬다. 첫날 샤워를 하자마자 필요성을 깨달아 규조토 발매트도 하나 구매했다. 밥상으로 쓸 접이식 테이블과 난방비를 아껴줄 러그도 샀다. 머리카락이 돌아다니는 게 싫어 핸디 청소기도 샀다. 매일 빨래할 수는 없으니 수건도 10장 샀고, 게다가 가장 최근에는 전신 거울을 배송받은 차였다. 이 모든 것을 검색을 거듭해서 최저가로 구매했다고 자부하지만 티끌모아 태산인 법, 이사한 첫 달의 소비는 몇십만 원 단위를 훌쩍 넘는다. 이렇게 쓰고 보니 5개월 후에 정리할 것이 무서워 풀옵션 매물을 찾은 것이 무슨 의미가 있나 싶다.


 과도한 스트레스로 무분별한 온라인 쇼핑을 하던 시절을 지나, 퇴사 후 흘러넘치는 옷장을 보면서 '미니멀리즘'에 심취하던 때가 있었다. 삶의 흔적을 최대한 축소하고 싶던 때 말이다. 3일 치 옷을 돌려 입으며 요가를 하던 더운 나라에서의 40일. 입던 낡은 옷을 쓰레기통에 버리고 오는 여행 습관. 집 공사에 맞춰 구석에 박힌 물건들을 마구잡이로 버리던 불과 여섯 달 전의 나. 잘 버리는 습관을 들였지만, 한편으로는 잘 사는 습관이 있다는 것을 잠시 잊었다.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필수적이지는 않은, 그 모든 것들을 굳이 구매하는 습관. 뭐든지 쟁여놓으려는 까마귀 같은 습성. 그리고 그렇게 산 것을 다시 미련 없이 버리는 뫼비우스의 띠.


 요즘은 소비하는 나에게 절약하는 내가 잡아먹히고 있다는 생각을 한다. 결코 소비하고 싶지 않지만, 소비를 하고야 마는 비자발적(?) 맥시멀리스트의 삶이란 얼마나 괴로운가. 내 통장에도, 지구에도, 그 밖의 모든 것에 해로운 맥시멀리스트의 삶... 반성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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