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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경 Dec 29. 2019

겁나 잘 살고 있으니까 섣부른 동정은 집어치워

Rebecca Ferguson, ‘Wonderful World’

Wonderful World by Rebecca Ferguson


잘은 모르지만, 생활고에 시달리다 오디션으로 데뷔한 가수라서 그런지 레베카 퍼거슨의 곡들은 두 다리를 땅에 딱 붙이고 있는 곡들이 많다. 그러다 보니 때로는 여러 트랙에서 이야기하는 ‘성공’이나 ‘행복’이 단지 생활고에서 탈출하는 것을 의미하는 것처럼 착오를 일으킬 때가 있지만 1집의 ‘Nothing’s Real But Love’ 같은 타이틀만 생각하더라도 절대 그럴 리는 없다. 그리고 시련과 어둠을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멋진 세상”은 자기계발 세계의 긍정 일변도 외침보다는 훨씬 더 숭고하게 느껴진다.


1절에서 그는 “춥기는커녕 따뜻한 세상인 척 살아”간다. “문을 나서면서 미소를 짓”고 “어떤 폭풍이 닥칠지 걱정하지 않”으며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세상 기준으로 보기에 뭔가 대단한 근거라도 있어서 그러는 게 아니다. 그는 “내 앞을 가리던 커튼을 걷어 젖혀”야 했으며 “다 해결된 척” 해야만 하는 “온갖 명세서”가 쌓여 있다. “모두가 날 사랑하지는 않을 거”라는 사실 역시 잘 알고 있다. 2절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는 애써 “씩씩한 표정을 지어 보”인다. 마치 “난 아무렇지도 않다고 말”하는 것처럼. 그러나 그러기 위해서 그는 “난장판이었던 머리를 단단히 묶어 넘”겨야 했고 “눈에서 흘러내린 마스카라를 닦아 내”야 했다. 왜 이런 힘을 낼 수 있었을까?


난 더 나은 삶을 꿈꿔
날 미소 짓게 만들 일을 찾을거야
아직 닿지는 못했지만 조금만 기다려 봐

씨를 뿌리고 상처를 거름 삼아 꽃을 피울 테니까
날도 딱 좋으니 흙을 뚫고 피어날 테니까
그렇게 난 총천연색 햇살이 땅을 비추는 걸 보아

그리고 생각하지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이야
그래, 이 얼마나 멋진 세상이야


이 사실을 다른 사람들은 모른다. 그래서 2절에는 인상 깊은 대목이 하나 나온다.


주변에 사람들이 없을 때면 피식 웃음을 터뜨려
왜냐면  진실을 알고 있거든




어둠 속에서 빛을 찾는 모습은 나로 하여금 늘 묘한 카타르시스를 느끼게 만든다. 희망이라. 물론 난 오래도록, 아니 지금도 사람들의 동정을 즐기는 편이다. 좀 더 직설적으로는 피해자 코스프레에 가깝지. 하지만 나도 희망이 있다. 물론 내 삶에 볕든다는 희망이 단지 물질적 안정을 의미할 수도 있겠으나 혹은 음악적 성공을 의미할 수도 있겠으나, 나에게는 좀 더 추상적인 무언가를 의미한다. 나는 좀 더 행복하고 쓸모 있는 삶을 희망한다. 내가 더 많은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고 더 많은 사람들을 미소 짓게 할 순간들을 희망한다. 그리고 어쩌면 나도 그런 사람을 찾을 수 있겠지. 퍼거슨은 마치 델파이 신전 입구에 새겨진 문구를 본 소크라테스처럼 자신이 발견한 “진실”에 피식 웃음을 터뜨린다. 흙 속에 파묻혀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 이런 진실은 하찮을지도 모르겠지만 그런다고 그게 삶의 진실인 건 변하지 않기 때문에. 그러니까 겉으로 보이는 것만 가지고 날 판단하고 동정할 필요는 전혀 없다. 난 겁나 잘 살고 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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