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명 좀 할게요
처음 결심과는 다르게 브런치를 거의 건들지 못하고 있다. ‘이게 누구 눈에 띄기는 할까?’라는 지독한 의문이 의지를 약화시킨 탓도 있지만 역시 제일 큰 원인은 마감이 가까웠기 때문이다. 사실 마감이 3~4주 남은 시점이니 그렇게 가까이 온 것도 아닌데 현재 번역 작업 중인 책의 난이도가 상당해서 벌써부터 겁이 나는 것 같다. 마감이 가까워 오면 모든 활동—정말 문자 그대로 모든 활동—이 죄책감을 유발한다. 예컨대, 먹고 자는 당연한 활동을 하는 와중에 혹은 활동을 한 이후에 전전긍긍 시계를 보게 된다. 당연히 내 글을 쓸 시간 역시... 나에게 미안하지만 ‘아깝게’ 된다.
그렇다면 내가 번역가로 사는 이상 이놈의 마감 증후군은 벗어날 수 없는 것일까? 아마 과외 선생님이라는 두 번째 직업을 포기해도 되는 상황이 온다면 훨씬 나아지지 않을까. 통장 잔고를 볼 때마다 언제쯤 그런 날이 올까, 아니 그런 날이 오기는 할까 싶기는 하지만... 역시 나 같은 서민에게 취미는 사치인 것 같기도. 내 글을 쓰는 것 자체로도 돈을 벌 수 있지 않은 이상 결국 마감 기간에는 몸을 사려야 할 듯 싶다. 3월 초가 마감이니 그때 다시 꼭 부지런히 글을 쓰겠노라고 다짐해 본다.
오늘은 그래도 기분 좋은 일이 있었다. 새 책을 의뢰받았기 때문이다. 작업 중인 책을 마감하기 전에 다음 책을 따낸 건 이번이 처음이다. 마감하자마자 바로 이어서 할 책이 있는 건 어떤 기분일까, 살짝 설렌다. 한편으로는 이번에 받은 책도 만만치 않은 책이라 걱정이 되기도 한다. 자기계발 -> 에세이 -> 사회 -> 심리 -> 환경 -> 역사 -> 철학. 다양한 장르를 거쳐 드디어 철학 책을 받았다. 후, 미래의 재경아. 너의 대가리에 삼가 조의를 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