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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재경 Jun 15. 2020

죽을 만큼 사랑할 누군가

Sam Smith, ‘To Die For’

To Die For by Sam Smith


모두가 홀로 죽음을 맞이한다면 그렇죠
그래서 겁이 나?
 혼자이고 싶지 않아요


‘To Die For’의 도입부와 중간중간에 등장하는 샘플링 나레이션은 <도니 다코>(2001)라는 영화에 등장하는 대사를 가져온 것이라고 한다(질렌할 목소리는 재녹음한 것이라고 한다). 대목 앞 부분을 보면 질렌할이 맡은 도니 다코는 자신이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믿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써 봤지만 결국 그 사실에 저항하기를 관뒀다고 말한다. 그러자 심리상담사가 “신을 찾기 위해 노력하는 게 터무니없다고 생각하는 거야?”라고 묻자 위 대목이 이어지는 것이다. 직접 보지는 못했지만 영화 줄거리를 보니 영화상으로는 ‘누구든 죽을 때는 혼자’라는 명제가 진리처럼 박혀 있는 것 같으며 결국 주인공 도니 다코 역시 그 사실을 깨닫게 되는 듯하다. 그러니까, 영화에서 다루고자 하는 외로움은 좀 더 근원적인 부류에 속하는 듯하다.


난 널 간절히 원해
그저 네
손길만이라도

내 맘에서 널 지울 수가 없어
외로운 나날이면 난 마치
몽상에 젖어 사는 바보 같아


샘 스미스가 하필 이 영화에서 샘플링을 가져온 것이 ‘To Die For’라는 곡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는 잘 모르겠다. ‘To Die For’에서 다루는 ‘혼자’라는 감정은 위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좀 더 물리적이고 피상적인 외로움에 가까워 보이기는 해서는 말이다. (2020년의 <황조가>랄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상하게 이 노래를 (자주 가는 바에서) 처음 접한 순간부터 도저히 노래를 뇌리에서 지울 수가 없었다. 그 이유는 (샘플링도 한몫했지만) 바로 이 한 줄에 있었다.


난 그저 죽을 만큼 사랑할 사람을 원해




사실 얼마나 진부한 표현인가? 그럼에도 이 노랫말이 이상하게 ‘진심’으로 들렸다(같이 있던 친구는 이 노래가 유독 샘 스미스가 자기 말을 하는 것 같다고 했다). 곰곰히 생각을 해 보니 역시나 가수가 샘 스미스라는 사실을 뺴놓을 수가 없는 것 같다. 노래를 잘하기 때문이기도 하겠으나 그가 퀴어(그 중에서도 게이)라는 사실 때문이기도 하다. 조금만 생각해 봐도 알겠지만 그들이 짝을 찾는 과정은 몇 배로 힘들 수밖에 없다. 풀 자체도 작거니와 그 풀이 이성애자들과 한껏 섞여 있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설령 짝을 찾더라도 그가 ‘To Die For’ 가사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는 (PDA를 포함하여) 일상적인 활동들을 공유하기를 원할지도 미지수이다. 그건 아우팅을 전제하는 거니까. 이런 맥락에서 확실히 ‘To Die For’에 담긴 간절함은 차원이 다른 문제일 수 있다.


그리고 도니 다코가 두려움을 느꼈던 것이 ‘혼자 죽음을 맞이하는 것’이었다면 어떤 사람들은 그걸 교묘히 피해갈 방법이 있다고 믿기도 하는 듯하다. (내가 영화 줄거리를 보고 이해한 게 맞다면 도니 다코 역시 어느 정도는 자신이 마침내 혼자가 아닌 데서 자기 운명을 받아들인 것 같기도 하다.) 바로 너무나도 사랑하는 사람을 얻음으로써, 아니, 정확히는 내가 혼자가 아니라고 느끼게 할 만큼 날 사랑하는 사람을 얻음으로써 말이다. 그렇다면 단지 내가 그 사람을 ‘위해’ 죽을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그 사람 ‘덕분에’ 죽을 수도 있다. 어차피 죽는 순간에도 난 혼자가 아니기 때문에(혹은 비관론자들을 위해 변명하자면 혼자가 아니라는 ‘환상’을 가질 수 있기 때문에) 두려움 없이 죽음을 맞이할 수 있는 것이다. 어쩌면 샘 스미스가 원하는 것도 그런 의미에서 “죽을 만큼 사랑할 사람”이 필요한 걸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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