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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감자 Jan 17. 2022

왜 쓰고 싶은가

Tick, Tick, BOOM

틱틱붐. 좋다는 사람이 있길래 봤다. 아니 대체 뭐가 어디가 좋다는 건데...!

근래 들어 나는 이런 영화와 이야기를 싫어하게 되었다.


1. '현실 감각 없는' 사랑 이야기.

2. 예술가의 삶 '미화'.


모두 내가 이십대 때 끔찍하게 사랑했던 이야기. 그래서 슬프게도 부모님이 공들여 돈들여 잘 설계한 항로를 대차게 이탈시킨 '불온한' 이야기들. 그래서 누군가 이런 이야기를 보고 듣고 크게 감동받아 인생의 핸들을 꺾는다면 이 한몸 던져 가로막고 오랫동안 설득하고 싶다. 영화는 감동을 주기 위해 직조된 잘 짜여진 내러티브라고. 현실이 아니라고. 라면 먹고 갈래? 를 보며 이영애 나쁜년.. 하던 우리는 이제 이영애의 나이 쯤이 되고 나선 유지태가 너무나도 버겁고 답답하다.


틱틱붐은 그래, 작가의 삶을 큰 미화 없이 보여준다. 엔딩 또한 그가 자신의 대성공을 보지 못한 채 죽었으니 비터스윗하다. 그런데 이 시선에 로망이 있다.. 그럼에도 자신을 불태워 그는 위대한 작품을 만들지 않았는가..! 이 작중 시선 때문에 우리는 예술가의 삶에 로망을 가진다. 몇 없는 '영화로 만들어 질 정도의' 성공한 케이스를 '극화' 시킨 이이야기를 보면서. 대체 왜. 왜 우리는 만들고 싶고 쓰고 싶은 걸까. 이 욕망은 어디서 발현되는 것이며.. 이 것이 큰 야망으로 번지는 경우, 왜 이 불씨는 나의 삶까지 삼켜 버리는 것일까. 그럼에도 왜 내려놓지 못할까.


이 괴로움은 지난 한 해 내가 내 일을 '싫어하는' 지경까지 가게 만들었다. 끔찍하게 싫다가도 어떤 순간에 위로받고 행복한 걸 보면 진심어린 애증이라는 말이 더 맞겠지만, 글쎄 나는 애를 앞에 두고 싶진 않고 증오가 더 크니. 증애라고 부르던가 해야겠다. 삼십대 중후반이 넘어가면 직장인 10년차가 된 친구들은 꽤 많은 돈을 벌고 모았으며 가정을 이루고 자식도 가진다. 좋은 집과 차, 비싼 옷, 세련된 취향과 고급 취미를 가진다. 아니야 존나 팍팍하거든? 할 수도 있지만 그건 집이 커서 대출금이 많거나, 아기가 나와서 들어갈 돈이 많거나지 꿈을 쫓느라 허덕이는 나같은 경우와는 다른 팍팍함이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다른 선택을 내려놓고 서로를 동경한다. 평범한 삶에 대한 동경과 하고 싶은 일을 하는 것처럼 보이는 삶에 대한 동경 혹은 오해. 계산없는 사랑으로 물질적 안정에 대한 동경과, 내 한 몸 불타버려도 좋아 진짜 사랑을 하고 싶다는 동경 혹은 오해. 이야기 산업은 이러한 동경과 오해 사이에서 탄생하는 것이지, 실제로는 모두가 만성 불만족 상태다.


 내가 무려 '예술'을 하고 싶다 했을 때, 당시 4050 어르신들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1. 집에 돈이 많아서 (or 시집을 잘 가서) 취미로 할 수 있거나.

2. 천재적인 재능이 있거나.


정말 사람 분통터지게 하는 말이었지. 당신들이 뭘 안다고..! 하지만 이제는 안다. 내 피를 끓게 했던 영화와 이야기들은 로스엔젤레스 대자본 엔터산업이 감동과 카타르시스를 끄집어 올리기 위해 머리를 맞대고 '직조해낸' 것이고, 어르신들, 그러니까 부모님과 선생님이 한 말은 우리 보통의 '삶'이라는 경험에서 비롯된 진심이었음을. 너가 '잘' 살기를 바래서 즉, '평안'하기를 바래서 한 이야기였음을 너무 늦게 알게 된다. 천재이길 바랬는데 천재는 아니라서 삼십대 내내 허덕였고, 이십대는 부모님이 서포트해줘서 아무 생각 없이 예술가병에 걸려 고매할 수 있었으나 그렇게 취향 따라 만난 남편으로 삼십대는 또 다시 허덕였다. 세속적인 평안과 안정에서는 멀어진 삶. 회사 다니는 친구들은 아기를 품에 안은 친구들은 부럽다 하지만, 나는 이제 노력해도 그들의 안정됨에 닿을 수 없음을 아는 삶. 과정에서 행복이 없었다 할 순 없지만 한 발 떨어져 보면 무슨 생각으로 버티고 살았는지 알 수 없는 삶. 여기엔 치기가 있지 더 이상의 로망은 없다.


요즘 나가는 시나리오 수업에서. 퇴사하고 글을 배우고 싶어 왔다는 친구를 만난다. 다시 생각해보라고, 쉽게 퇴사하는 거 아니라고 화들짝 놀라 뜯어 말리는데 이미 퇴사 하고 왔다한다. 어쩌려고 그러니.. 니 사정은 모르겠지만 내가 지내온 시간은 너무도 잘 아니까 눈물이 핑 맺히면서 이 불쌍한 중생... 복직해라고 얘기 잘 해줘야지 하다가도, 다음 시간 이 친구가 써온 진심어린 글을 보면 뭐라 말을 아끼게 된다. 잘 쓰고 못 쓰고는 늘 수 있는 테크닉이다. 그런데 안에 진짜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의 코어는 체급이 다르다. 그래서 수업을 하다 보면, 그런 생각을 한다. 지금은 내가 가르치는 입장이지만 이 바닥은 신입도 베테랑에게 펀치를 먹일 수 있는 곳이라고. 그걸 우린 재능이라 부르는데, 그 재능은 결국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의 힘과 진심이라고. 그래서 나는 생각한다. 우리는 왜 쓰고 싶은가. 우리는 왜 꿈꾸고 싶어 하는가. 우리는 왜 답없는 사랑에 빠져드는가. 그리고 왜 계속 희망을 갖고 싶어 하는가. 이 모든 질문은 우리는 왜 이야기를 사랑하는가로 귀결된다. 그리고 이것은 쓰고 싶은 나의 욕망이 직업이 되었을 때, 가져야 하는 소명의식이다.

내 한 몸 깎아서.... 하 지겨워...


나의 동료 중 가장 돈타령이 심하고 예민하고 동시에 초연한 모 작가는 이 상황을 다음 한 문장으로 정리하고 다시 삶을 살러 넘어간다.


"별 수 있나. 중이병 못 고치고 영화하겠다고 한 십년 전 나를 가엽게 여기고 열심히 산다 ...!"


자 다시 연필 깎고 일하러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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