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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디터 Apr 23. 2024

전시회가 알려준 나의 취향

좁고 깊은 취향이 좋더라, 확실하다는 뜻이니까 -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우연히 '새벽부터 황혼까지' 스웨덴국립미술관 컬렉션 포스터를 접하고 생각했다. 

와, 이거다. 완전히 우리 엄마 취향 저격 전시회.



어렸을 때 미술 전시회를 몇 번 가본 적 있는데, 모두 엄마 손에 이끌려 간 것이었다. 미술 작품을 보는 것보다 누워서 뒹굴뒹굴하는 걸 좋아하는 어린아이는 전시회 구경 내내 다리 아프다고 찡찡거리느라 바빴다. 그래서 어렸을 때 봤던 미술 작품 중 기억에 남는 건 없다. 대신, 엄마가 샤갈의 '도시 위에서' 작품을 빤히 쳐다보며 "엄마는 르누아르, 샤갈, 모네 그림을 참 좋아해"라고 했던 건 잊을 수 없다. 


엄마가 말하는 세 화가의 공통점이나 특징을 전혀 알지 못했지만, 특정 대상에 대해 명확한 좋고 싫음을 표현하는 게 어른스러워 멋있었다. 그때부터였을까. 미술은 내게 미지의 대상과 동시에 '나를 더 잘 이해할 수 있는 매개체'처럼 느껴졌다. 이번 전시회를 보며 나는 조금 더 내 취향을 명확하게 표현할 줄 아는 어른이 되었다.


'황혼부터 새벽까지' 전시회는 스웨덴-대한민국 수교 65주년을 기념해, 마이아트뮤지엄이 스웨덴국립미술관과 협업해 스웨덴 국민 화가 칼 라르손, 한나 파올리, 앤더슨 소론 등 스웨덴/덴마크/노르웨이 거장들의 명작 79점을 준비했다. 


19세기에서 20세기로 전환하는 시기에서 북유럽 특유 화풍이 정립되는 과정을 엿 볼 수 있다. 전환기답게 북유럽 예술가들은 기존의 보수적인 예술계에 반기를 들었다. 스웨덴 또한 왕립 미술 아카데미 현대화를 요구하는 '반대파 선언'이 이뤄졌으며 예술가 협회를 통해 기법이나 주제, 연대 등 여러 방면에서 혁신이 발생했다. 특히 프랑스의 인상주의와 자연주의에 영향을 받았다.


작품들을 하나씩 보며 직접 북유럽에 간 듯한 감상이 들었다. 백야, 설산은 물론 마당, 거실 등 실제 환경들을 그려낸 작품들 덕분이었다. 몽환적으로 채색된 그림, 사진을 찍은 듯 채색된 그림 중 후자에 더 끌린다는 점도 알게 됐다. 브루노 릴리에포르스의<어린새를 물고 있는 고양이> 습작과 한스 프레드릭 구데의 <샌드빅의 피오르>가 그러했다.


또 나는 생각보다 디테일을 사랑했다. 안나 보베르그크의 <노르웨이에서의 습작> 앞에 섰을 때 캔버스 크기에도 놀랐지만, 다양한 색의 물감이 켜켜이 쌓아져 있는 모습이 더욱 놀라웠다. 또 라우리츠 안데르센 링의 <아침식사 중에>를 보며 작품 속 도자기들이 실제 인물의 작품을 표현한 것이고, 그림 속 여성이 읽고 있는 신문 또한 덴마크 일간지와 같다는 설명을 들었을 때 몇 번이고 그림을 다시 확인했다. 


마지막으로 나는 초록과 파란색이 돋보이는 게 가장 확고한 취향이었다. 마음에 들어 앨범에 기록해 둔 사진들을 보니, 청량하고 화사한 색감이 공통점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한나 파울리의 <아침식사 시간>이 이번 전시회의 최애 작품이 될 수밖에 없다. 


낭만적이게도 나무들로 둘러싸여 있는 숲에서 아침식사를 준비하고 있는 모습이다. 식탁 위에는 주전자, 컵, 빵 그릇 등 다양한 식기가 올라와 있는데 형태와 색이 모두 달라 시선을 계속 빼앗겼다. 식탁과 식기에 닿는 빛이 너무 반짝였다. 그렇게 아침식사 시간 폰케이스와 스마트톡까지 구매했다. 에메랄드색의 작은 종지 그릇과 초록색 박스, 빛 표현이 인상적인 주전자. 모든 게 내 취향이었다.


이번 스웨덴국립미술관 전시는 ‘아. 나 이런 거 좋아했었네’의 연속이었다. 아는 게 힘이라는 말처럼. 새로 알게 된 작품들이 많아질수록 내 취향은 더 좁고 깊어지고 있다. 그리고 나를 이루는 확고한 취향은 언젠가 내가 좌절했을 때, 나를 일으킬 힘이 되리라 감히 예상한다. 만약 나와 우리 엄마처럼, 평소 자연과 예쁜 색감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꼭 이번 전시를 추천해 주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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