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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디터 Jun 21. 2024

[도서 리뷰] 화가의 인생기록관 - 결정적 그림

결정적 순간, 결정적 그림, 영원한 예술로 남은 화가의 순간들

인간은 후회의 동물이라 했던가. 돌이켜봤을 때 지난 발걸음을 긍정할 수 있는 건 매우 용기 있으며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런데 심지어 과거의 내 결과물이 자타가 공인할 정도로 뛰어나다면? 자기 전 루틴처럼 하는 망상이 아니라, 정말 세기의 명작을 만들었다면. 책 ‘결정적 그림’에 등장하는 그림들이 그렇다. 보면 ‘아, 이 그림~‘하게 만들고, 실물을 보기 위해 집을 나서게 만든다. 후회가 아깝게 만드는 그림들. 과연 그 그림을 그린 사람들은 어떤 사람일까.

 

저자 이원율은 헤럴드경제 기자이자 미술 스토리텔러로서, 누적 조회수 1,500만 회를 기록한 대중 친화적인 미술 칼럼을 작성했다. 저자는 이번 책을 통해 명작을 탄생시킨 화가의 삶, 그중에서도 인생을 뒤바꾼 순간을 집중적으로 조명한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맞선 순간/ 마음을 열어 세상과 마주한 순간/ 나만의 색깔을 발견한 순간/ 내일이 없는 듯 사랑에 빠진 순간/ 삶이 때론 고통임을 받아들인 순간/ 그럼에도, 힘껏 발걸음을 내디딘 순간, 총 6챕터로 이뤄져 입맛따라 원하는 테마의 순간을 발견할 수 있다.

 

그림과 삶이 무슨 연관이 있길래. 미술책에서 화가의 결정적 그림, 삶의 결정적 순간을 이은 것일까. 저자는 프롤로그에서 고흐의 <꽃 피는 아몬드 나무>를 통해 그 이유를 설명한다. 평생이 실패와 좌절로 이뤄져 고통스러웠던 고흐. 동생 테오는 광기 어린 고흐도 긍정하며 그의 생활을 후원했다. 자기 아들도 고흐의 이름 ‘빈센트’를 따서 지었다. 그런 동생에 대한 고마움과 조카의 앞날을 응원하기 위해 만든 <꽃 피는 아몬드 나무>. 그가 표현할 수 있는 가장 밝은 색채의 그림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고흐의 따뜻한 그림이라 평하는 <꽃 피는 아몬드 나무>는 그의 일생과 동생과의 관계를 알았을 때 작품의 의미는 커진다.

 

그림을 그리는 것도 사람인지라 명화라고 불리는 그림도 결국 사람의 사연이 들어있다. 저자는 명화란 화가의 사랑과 열정, 혹은 희망과 의지, 광기와 역경으로 이뤄졌으며, 이러한 삶과 순간을 남기고자 만들어진 일종의 결과물이라고 정의한다.

 

개인적으로 아르테미시아 젠틸렌스키가 ‘결정적 그림’이라는 제목과 가장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아르테미시아 젠틸렌스키는 <수산나와 두 장로>라는 그림을 그렸다. 과거 ‘편집’에 대한 책을 읽었을 때 그의 <수산나와 두 장로>가 기존의 수산나와 두 장로를 그린 그림들과 다른 점을 알게 됐다. 젠틸렌스키는 수산나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집중하지 않고 장로가 수산나를 범하려는 상황에 집중했다. 그림에서 드러나는 시선은 그의 인생과 큰 연관이 있다.

 

젠틸렌스키는 그의 미술교사 타시에게 수차례 성폭행을 당했다. 당시 시대상은 그랬듯이, 그녀는 이어지는 타시의 추악한 행동에도 참고 참았다. 자신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 타시와 결혼할 수밖에 없다고 체념했다. 그러나 타시는 젠틸렌스키를 성적으로 착취할 생각 뿐으로 결혼을 거절했다.

 

이에 그는 타시를 고소해 재판을 진행했고, 헤픈 여자이기에 그런 일을 당한 것이 아니냐는 주위 반응에 맞서기 위해 고된 고문도 버텨냈다. 아픔도 두려워하지 않는 그의 당당함 덕분일까. 다행히 조사가 면밀히 이뤄져 7개월 간의 기나긴 시간 끝에 젠틸렌스키가 재판에서 이겼다.

 

재판은 승리했지만, 성폭행 트라우마는 이후로도 사라지지 않아 매번 타시가 나오는 악몽을 꿨다. 젠틸렌스키는 타시에 대한 파괴적인 감정을 해소하기 위해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그렸다. 그는 홀로페르네스를 죽인 유디트를 소재로 6개 이상의 작품을 그렸다. 유디트는 그의 그림 속에서 결연한 의지가 돋보이는 근육질의 여성으로 표현된다. 타시를 비롯한 세상의 시선에 당당히 맞서는 젠틸렌스키의 모습과 닮아있다.

 

<홀로페르네스의 목을 베는 유디트>를 찬사를 보낸 메디치 2세를 향해 ‘고매하신 후원자님, 제가 여성의 몸으로 무엇을 이뤄낼 수 있는지를 보여드리지요’라 답하고, 그림 주문이 들어오면 ‘당신은 시저의 용기를 가진 한 여성의 영혼을 볼 수 있을 겁니다‘라고 답장을 보냈다는 젠틸렌스키. 살아온 인생과 인생 굴곡을 통해 형성된 가치관이 그의 작품에 오롯이 반영돼 있었다.

 

저자는 독자가 화가의 인생에 더욱 몰입하게 만들도록 단편소설처럼 서술했다. 역사적 사실을 나열한 미술관 속 그림 주석과 다르다. 약간의 상상력이 가미되어 스토리텔링으로 화가와 그의 작품을 보여준다. 결정적인 인생의 한순간을 조명해 순식간에 그의 인생과 작품에 몰입하게 만든다.

 

단순한 그림 구경을 넘어 그림의 세계관을 이해하고 싶다면 화가의 인생기록관, 결정적 그림을 읽어보는 걸 추천한다. 명작의 또 다른 이름은 ‘결정적 순간에 따른 결정적 그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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