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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디터 Oct 08. 2024

뜻밖의 만남, 뜻밖의 발견–서울인디애니페스트 2024

애니메이션. 우리는 흔히 원작 만화를 움직이는 그림 영상으로 구현한 작품을 애니메이션이라고 한다. 단어의 어원을 알아보자면, 애니메이션(Animation)의 Anima는 라틴어로 생명, 정신, 영혼을 뜻한다. 뒤에 붙는 atio는 행위를 뜻해 두 가지가 합성된 애니메이션은 ‘생명 불어넣기’를 의미한다고 한다. ‘애니메이션 그거 오타쿠만 보는 거 아니야?’하는 의견도 많지만 본질에 다가선다면 애니메이션은 멈춰있던 이야기에 숨을 불어넣는 탄생의 과정이라 말할 수 있다. 


새로운 자극, 도파민에 사로잡혀 ‘더 재밌는 이야기가 없을까’ 생각하며 기계적으로 숏츠 화면을 내리고 있던 중 <서울인디애니페스트 2024> 소식을 접했다. 인디 애니? 애니페스트? 무엇 하나 익숙하지 않았다. 인디 애니는 곧 독립 애니로 독립 영화, 독립 출판과 같은 개념이다. 대규모 자본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대중적인 상업 작품와 달리 저예산으로 제작자의 의도 또는 스타일이 짙게 묻어 나오는 독립 작품. 


서울인디애니페스트는 국내 유일 독립 애니메이션 영화제로서, 한국독립애니메이션협회에서 매년 9월 개최하고 있다. 올해로 벌써 20주년을 맞이했다고 한다. 이번 공식 슬로건은 ‘이영차’. 영화제 운영 지원 예산 삭감 등 삭막한 주위 환경에 굴하지 않고 함께 힘을 합쳐 20번째 축제를 멋지게 만들자는 다부진 의지가 담겨 있다. 


‘독립보행’, ‘새벽비행’, ‘랜선비행’ 등 국내 공모 3개 부문, 장편 부문 ‘미리내로’, 아시아 경쟁 부문 ‘아시아로’. 중편 스페셜 ‘파노라마’, 국내초청, 해외초청까지. 여러 부문의 다양한 작품들을 살펴볼 수 있다. 나는 그중 국내초청을 보기로 마음먹었다. 유치원 때 즐겨보던 뽀로로를 제외하고는 명탐정 코난, 지브리스튜디오 등 일본 애니메이션만 접해왔기 때문에 우리나라 애니메이션의 현황이 궁금했다. 


그런데 운명의 장난일까 혹은 계획일까. 행사 당일 사무국 내에서 발권에 혼선이 있었는지 동시간대의 아시아로 부문 작품을 시청하게 됐다. 불이 꺼지고 간단한 트레일러가 나온 뒤 첫 작품이 시작되고 나서야 무언가 잘못되었다는 걸 뒤늦게 깨달았으나 이미 늦었다. 이런 상황에서는 즐겜 모드가 최고다. 덕분에 중국, 일본, 인도, 이란 다양한 국가의 인디 애니를 한 번에 확인할 수 있다니. 이거 완전 럭키비키잖아! 원영적 사고를 가동한 채 기쁜 마음으로 7개의 작품을 모두 시청했다. 


여러 국가 출신의 감독들 덕분일까 7개의 작품 모두 겹치는 부분 하나 없이 저마다 개성이 뚜렷했다. 특히 2D, 3D가 같이 나오거나 실사 영상이 같이 나오기도 했고 드로잉이 주가 되는 작품도 있었다. 무엇보다 신기했던 건 ‘우물 아래 배’ 작품에서 사용된 컷아웃 기법이었다. 컷아웃 애니메이션은 종이, 카드, 사진 등 재료로 잘라낸 평면 캐릭터, 소품, 배경을 사용한 스톱 모션 애니메이션이다. 종이로 만들어진 캐릭터와 배경 덕분에 보는 내내 묘한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고, 인형극을 보는 듯했다. 


색감, 그림체, 음성 또한 다양했다. ‘우물 아래 배’는 중국의 붉은 색감이 돋보였고 ‘퍼스트라인’의 내레이션은 듣는 순간 일본이라는 걸 확신하게 만드는 특유의 비장함이 느껴졌다. 아이스 링크는 쨍하면서도 신비로운 여러 색이 합쳐져 기억에 남고 ‘저기 아빠’ 속 영상 분위기와 닮은 숲과 바다의 차분한 색감이 기억에 남는다. 개인적으로 가장 좋았던 영상 느낌은 ‘수영하는 날’이었다. 보는 내내 에세이의 한 꼭지가 영상으로 구현된 것 같았다. 색연필로 그린 듯한 귀엽고 다정한 색감과 질감은 물론 수영장을 다녀온 날의 일상적인 이야기가 좋았다. 


무엇보다 독립 작품의 백미는 감독의 주제 의식이 아닐까 싶다. 대규모 자본의 구속에서 벗어나 비교적 자유롭게 자기 뜻을 펼치기 좋은 인디 애니메이션. 메시지가 눈에 띄는 작품은 ‘바샤’와 ‘외로운 새, 로비’였다. 두 작품 모두 각각 자연과 정신질환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과감하게 다뤘다. 역지사지를 통해 자연을 존중하는 태도를 갖게 되는 두 형제와 방황 끝에 가족의 품으로 돌아가는 로비. 작품은 끝이 났지만 세계관 안에서 계속 이어질 인물들의 삶을 응원한다. 


이렇게 해서 나의 첫 서울인디애니페스트가 끝이 났다. 아시아로 작품과의 만남은 뜻밖이었지만 그래서 더 좋았다. 원래 예상하지 못한 기쁨이 더 크게 와닿는 법이니까. 이번 페스트를 통해 애니메이션의 무한한 가능성을 엿볼 수 있었다. 기존까지는 애니메이션은 원작 만화 또는 정형화된 느낌을 충족해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페스트에서 만난 뜻밖의 작품들을 통해 애니메이션은 내가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다양한 주제와 형식을 담을 수 있다는 걸 배웠다. 뜻밖의 만남, 뜻밖의 발견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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