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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도디터 Oct 20. 2024

종이인간, 새로운 인류의 탄생 - 장줄리앙의 종이세상

탄생부터 사회까지 종이인간의 종이세상 엿보기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인간>이란 생각을 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만들어 쓰고 사회를 이루어 사는 동물이라고 한다. 앞선 정의에 입각하자면, 나는 지난 일요일 새로운 인류를 목도했다. 퍼블릭 가산에서 열린 전시회 <장줄리앙의 종이세상>에서. 


개인적인 의견으로는 장줄리앙은 국내에서 인지도가 있는 작가 같다. 상대적으로 소식을 늦을 수밖에 없는 엄마마저 장줄리앙 작가를 알고 2년 전 DDP에서 열린 전시회 <그러면, 거기>를 다녀왔기 때문이다. 나 역시 그의 전시회를 직접 가본 적은 없었으나, SNS에서 종이인간 일러스트를 여러 번 접했었다. 


ⓒJean Jullien  


이번 전시회는 그의 대표작인 페이퍼피플(종이인간) 시리즈의 마지막 장이라는 점이 흥미를 끌었다. 장줄리앙은 직관적이고 감각적인 시각 언어로 일상 속 사소한 순간부터 사회적 이슈까지 다양한 주제를 풀어내는 작가다. 이번 전시회 또한 종이인간을 매개로 인류의 탄생 비하인드는 물론 일상생활의 면면을 재밌게 표현했다. 


ⓒJean Jullien  


<장줄리앙의 종이세상>은 크게 3가지 구역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 <페이퍼 팩토리>는 이름처럼 종이인간이 탄생하는 과정을 볼 수 있는 공장이다. 컨베이어 벨트에는 같은 모양으로 잘 재단된 종이인간들이 누워 있고, 이미 완성된 종이인간 선배들은 마지막 숨결을 불어 넣기 위해 열심히 채색 중이다. 마치 자동차 공장 혹은 대규모 빨래터가 연상되는, 엄청난 양의 종이인간이 줄지어 널어져 있는 모습은 ‘이 정도면 인류라고 인정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 생각하게 된다. 


ⓒJean Jullien  


두 번째 구역은 그런 질문에 대한 확답을 주는 공간이다. <페이퍼 정글>을 가득 메우는뱀은 우리 인류의 역사를 시작으로 종이인간의 시조를 엿볼 수 있다. 구불거리는 뱀의 옆면을 따라 시간의 흐름을 짚는 행위는 동굴에 그려진 고대 벽화로 우리 인류의 발전을 유추하는 고고학자가 된듯한 감상을 준다. 꼴에 사학과를 졸업했다고 ‘이 부분은 어떤 문명을 표현했네’, ‘여기는 이 전쟁을 뜻하는 것 같은데?’ 아는 척하는 게 즐거웠다. 전쟁 시기와 오늘날을 표현한 구간에는 폭탄 연기와 자동차 매연으로 벽화 분위기가 탁해 마음이 무거워졌다. 유머 속 풍자도 놓치지 않았다. 


창조자의 어루만짐으로 시작해 나름의 시행착오를 끝에 이루게 된 종이인간 역사를 보며 역시 장줄리앙이 창조한 페이퍼피플은 새로운 인류라고 이야기해도 손색이 없다. 무릇 인류란 동물과 구별되는 사람을 의미하고 사람은 생각하고 언어를 사용하며 도구를 이용해 사회를 이룬 동물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도구를 이용해 나와 같은 존재를 만들어 사회를 이룬 종이인간. 무엇이든 이야기가 추가되면 재미가 배가 되는 법이다. 벽화가 아닌 뱀화 덕분에 세계관이 더욱 깊어지고 흥미로워졌다. 


ⓒJean Jullien  


마지막 구역은 <페이퍼 시티>로 실제 도시를 모티브 삼아 도서관, 영화관, 카페 등 다양한 장소와 그 속에 녹아든 종이인간을 볼 수 있는 곳이다. 아무래도 건물 외벽이나 내부 액자에 쓰인 글들이 영어 또는 불어로 되어 있어 100% 이해를 하긴 어려웠다. 그런데도 언어 없이 이해가 가능하게 하는 그림의 순기능과 작품의 주요 모티브가 우리 일상이기에 부담없이 보고 재밌어했다. 


ⓒJean Jullien  


페이퍼 시티에서 가장 좋았던 장소는 도서관이었다. 역사, 문학 등 다양한 책이 모여져 있는 책장 앞에 삼각형 담요를 뒤집어쓴 듯한 무언가가 있었다. 처음 봤을 땐 영화 해리포터에서 투명 망토를 쓰고 도서관에서 숨어 들어간 주인공이 떠올랐다. 환한 도서관에서 무엇을 보길래 이불을 뒤집어썼나, 호기심에 그의 앞에 섰다. 여기서 대반전. 지금까지 봐왔던 종이인간 형태가 아니었다. 가오리와 같은 상체를 지닌 종이인간이었다. 예상치 못한 곳에서 한번 꺾어 인상 깊다. 피곤한 듯한 표정은 우리 현대인과 다를 바 없어 SNS 프로필 사진으로 설정했다. 


ⓒJean Jullien  


우리 일상과 유사한 형태에 유머 한 스푼이 크게 첨가된 전시회를 다 보고 나니 ‘외계인이 지구에 보면 감상이 이럴까’라는 생각을 했다. 종이인간 덕분에 그만큼 너무 당연한 일상을 낯설게 볼 수 있었다. 쥐라기가 아니고서야, 우리 인간이 만약 다른 세계에 가게 된다면 <걸리버여행기>처럼, 당연히 거인의 위치를 차지할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처음 전시회를 들어서자마자 눈 앞에 펼쳐진 거대한 종이인간과 건물들을 보며 거인국에 초대된 소인이 된 것 같았다. 크기 않은 규모로 관람이 부담스럽지 않고 분위기 또한 무겁지 않으니, 가족과 함께 가기 좋은 전시회다. 동화 같은 경험을 원한다면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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