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화룡점정은 음악이었음을
영화는 종합 예술이다. 극장 안 불이 꺼지고 대형 스크린에서 나오는 영상이 시선을 모조리 빼앗아 가는 것 같지만, 간과할 수 없는 존재감이 하나 더 있다. 바로 소리, 즉 음악이다. 범인 검거가 눈앞인 추격전 상황에는 심장을 조이는 음악이, 나른한 주말 여가 시간을 보여줄 때는 어깨를 살랑이게 만드는 음악이, 극의 클라이맥스에는 마음이 웅장해지는 음악이 흘러나온다.
예술에 조예가 깊지 않은 한 사람으로서 영화 음악의 중요성을 깨닫은 지는 얼마 되지 않았다. 지브리 스튜디오, <해리포터> 같은 유명 영화 ost도 종종 듣지만, <라라랜드>같이 가사가 있고 리듬이 확실한 음악을 더 선호했다.
그런데 때는 2021년, <듄 1편> 개봉 7일 차였다. 판타지 블록버스터 영화 애호가로서 듄의 세계관에 빠져들 준비를 했을 때 나는 영화 음악에 압도당했다. 특히 주인공이 곰 자바(독침)로 일생일대의 시험에 처했을 때, 미세하던 백색소음이 점점 커지고 외계의 주문 같은 소리가 가득 채울 때 나는 음악에 의해 멱살 잡힌 심정이었다. 그 후 처음으로 검색해도 모를 게 뻔한 영화 음악 감독을 찾아봤다. 그 역시 한스 짐머였다.
알고 보니 한스 짐머는 이름만 인지하지 못했을 뿐, 이미 우리에게 익히 가까운 사람이었다. 인터스텔라, 탑건 매버릭, 글래디에이터, 인셉션, 캐리바인의 해적 등 명품 흥행 영화로 손꼽히는 영화들의 음악을 모조리 완성한 장본인이었다. 지난 일요일에 다녀왔던 ‘한스 짐머 영화 음악 콘서트’는 할리우드 히트 메이커 작곡가 한스 짐머의 명곡들만 엄선한 공연이었다.
연주는 WE필하모닉 오케스트라가 맡았다. 한스 짐머의 필모그래피는 SF, 액션, 히어로, 스릴러, 코미디, 첩보, 해적 등 장르와 시대를 넘나드는 작품으로 이뤄졌기 때문에, 그의 다양한 음악 세계를 잘 보여줄 수 있도록 70인조 풀 편성 오케스트라였다. 바이올린, 하프, 트럼펫 등 고전적인 클래식 악기뿐만 아니라 드럼, 일렉 기타, 전자 피아노 등 현대적인 악기도 함께 해 클래식, 대중음악, 전자음악 모두 들어볼 수 있었다.
총 14곡의 한스 짐머 영화 음악을 듣고 난 다음 머리를 지배한 키워드는 ‘클라이막스’였다. 1부의 마지막 곡 <글래디에이터 2000>, 2부의 마지막 곡 <캐리비안의 해적>. 전체적인 1부, 2부의 흐름에서도 점점 음악의 분위기가 고조되는 느낌을 받았지만, 한 곡 안에서도 클라이막스로 치닫는 느낌을 강하게 받았다.
쿵쿵쿵. 공연장을 울리는 북(팀파니로 추정된다)과 드럼 소리에 따라 심장 박동수가 이리저리 바뀌었다. 때로는 스틱으로만 소리를 내기도 하고 짧은 박자로 계속해서 치기도 하고. 한 번씩 정신 똑바로 차리라는 듯 크게 치며 바이올린의 부드러운 선율 아래를 탄탄하게 받쳐줬다.
탑건 베이스 기타, 일렉 기타, 전자 피아노가 흘러나올 땐 클래식 악기가 구현하기 어려운 경쾌하면서 쨍한 분위기가 전달되어 2%가 완벽하게 채워졌다. 뿐만 아니라 첼로, 하프, 미림바 등 정말 다양한 소리가 음악 요소 요소를 이뤄 들으면서 ‘이건 무슨 어떤 악기일까?’ 추리하는 재미가 있었다. 일층에 자리를 잡아 모든 악기가 보이지 않았던 지라 마치 <흑백요리사>의 백종원 심사위원처럼 ‘흠..이건 트럼펫? 호른? 클라리넷..?’ 정체를 점쳐 보며 중얼거렸다. 한 가지 다른 점은 나는 끝내 답을 알지 못했다는 것? 그래도 어쩌랴. 듣기 좋았으면 됐다.
개인적인 최애는 아무래도 <캐리비안의 해적> 메들리었다. 나는 판타지 요소가 가미된 장편 영화를 매우 좋아한다. 그런 의미에서 <캐리비안의 해적>은 중고등학생 때 시험이 끝날 때마다 정주행하던 영화였다. 각 편을 세 번씩은 본 것 같다. 그래서 익숙한 <캐러비안의 해적> 멜로디가 나오기 시작했을 때 어렸을 때 컴퓨터 앞에서 눈을 반짝이며 영화를 보던 내 모습이 떠올랐다. 영화를 다 본 뒤에는 영화 ost 모음을 틀고 동네를 산책하며 해적이 된 나를 상상하곤 했다. 마치 그 시절로 돌아간 듯, 해적 세계관에 몰입할 수 있는 연주였다. 화려한 연주가 끊이지 않고 이어져 마치 오케스트라단이 ‘이거 기다렸지? 다 알아 ㅎㅎ’라는 말을 음악으로 건네는 것 같았다.
오케스트라. 한글로 관현악단. 즉, 현의 진동으로 소리를 내는 악기와 관에 공기를 넣어 소리를 내는 악기. 그리고 물체로 타격을 가해 소리를 내는 악기까지. 한스 짐머 영화 콘서트는 다양한 악기들이 만나 가장 낮은 곳에서 가장 높은 곳으로 향하는 여정이었다. 영화와 음악의 분위기를 잘 보여주는 조명까지 더해져 오롯이 영화 음악에 집중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이 영화라면, 한스 짐머는 어떤 음악을 만들었을까. 내 영화 음악에도 이번에 들은 것과 같이 확실한 클라이막스가 있으면 좋겠다는 상상을 하며 집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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