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로소 집주인이 될 자격을 얻은 기분
매일 손을 닦고 설거지하고 변기 물을 내리지만, 그 물이 어떻게 어디로 가는지 몰랐다. 장마에 그 많은 빗물이 어디로 가는지도.
사흘간 아침부터 마감까지 현장에 머물렀다. 마을 우수관을 묻는 작업 과정, 정확한 위치를 내 눈으로 확인하고 사진으로 남겨야 했기 때문이다. 이 우수관은 장마철 마을길이 빗물로 침수되는 것을 막기 위한 마을 사람들 간의 약속이다. 고작 다섯 가구가 거주하는 작디작은 마을이지만 우리 집은 가장 첫 집이자 아래에 위치한 집이기 때문에, 우수관을 잘못 설치하면 장마철엔 다른 집의 수도 역류를 유발할 수도 있다.
그리고 땅 위만큼 땅 아래가 언제나 궁금했다. 내가 사용하는 물의 경로를 알고 싶었다. 공사 첫날 정화조를 묻고, 추후 변기가 설치될 지점과 파이프로 연결된 걸 보고 신기했다. 그간 내 변들이 빠져나가던 통로가 고작 저렇게 생긴 파이프였냐며.
시골에도 도시처럼 공공하수처리시설이 있는 토지가 종종 있다. ‘하수처리구역’이라 부른다. 하지만 우리 마을은 몇백 미터 차이로 ‘하수처리구역 외 지역’이다. (하수도사업소에 전화해 주소를 말하면 토지의 하수처리구역 편입 여부를 알 수 있다.) 이 경우 ‘개인하수처리시설’, 즉 정화조를 묻고 개인이 관리해야 한다. 그 관리란 주기적으로 일명 똥차를 부르는 것이다. 시골 풍경.
화장실에서, 부엌에서, 샤워실에서 사용한 물은 파이프를 거쳐 ― 정화조를 거쳐 ― 마을 아래 어딘가를 흐르는 구거(천)를 따라 ― 북한강으로 흘러간다고 한다. 왠지 한 단계가 더 있어야 할 것 같은 느낌적 느낌인데. 지도를 봐도 주변에 하수처리장이 없다. 따라서 정화된 물이 강으로 흘러 들어가는 게 분명해 보인다. 가급적 강에는 몸을 담그고 싶지 않아지는 대목…!
집 안의 물의 흐름과 순환. 집의 ‘대동맥’ 그리고 오늘은 보일러와 가스관 설치도 있어 ‘모세혈관’ 속 혈액순환도 테스트했다. 집의 굵고 얇은 혈관들의 작동. 집이 살아 숨 쉬는 것과 다름없다. 그리고 집의 혈관은 지구의 혈관과도 직결되어 있다는 중요한 사실. 휴지, 세제, 옷의 성분과 소재 선택에 신경 써야 하는 이유.
내 집의 혈액순환을 관찰하느라 요즘 내 몸의 혈액순환은 엉망이 되었지만, 땅 위 & 아래를 모두 보고 나니 비로소 집주인이 될 자격을 얻은 기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