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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영 Nov 24. 2024

이제,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



어언 8개월. 공사가 마무리 단계에 다다랐다. 준공검사 신청 준비가 한창이다. 남은 공정의 순서를 촘촘히 계획 중이다. 어느 것 하나도 꼬여서는 안 된다. 꼬꼬무를 3주 동안 못 봤다. 어제는 그알이 시작하기 전에 곯아떨어졌다. 꼬꼬무와 그알 본방 사수를 못했다면 정말 바쁘고 피곤하다는 의미다.


생업과 공사 관리를 병행하는 것은 지친다. 아침에는 아들내미들 돌보고, 억지로 위에 뭐라도 욱여넣고 현장에 간다. 마당의 쇠붙이나 유리 조각, 그리고 끝없는 담배꽁초를 줍는다. (입을 꿰매버릴까?) 해가 짧아 벌써 컴컴해진 초저녁에 귀가해 허겁지겁 밥을 먹는다.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다. 새벽까지 일을 한다. 다행인 것은 월셋집 기운이 좋은지 아침이 개운하다. 7시면 닭 울음소리와 함께 눈이 저절로 뜨인다.


모든 건축주가 이렇게 바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일련의 사건과 상황을 겪으며 그냥 잔말 말고 이렇게 하기로 했다. 더 싫은 소리를 하기도, 싫은 마음을 담기도 싫다. 이제는 조상신도 믿지 못한다. 내 두 눈으로 직접 보아야 마음이 놓인다. 몸은 바빠졌어도 마음이 불투명한 것보다야 낫다. 평소 눈과 손가락으로 일을 하다, 야외에서 느릿하고 다양한 동작으로 잡일을 하니 육체 활동의 균형도 맞는 기분.


소원이 있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 마지막 이사를 끝내면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그 어떤 만남도 않고 싶다. 충분한 정적을 누렸다 싶을 때까지. 오로지 정리정돈과 청소만 하고 싶다. 너무 많은 카톡, 너무 많은 고민, 너무 많은 결정, 너무 많은 일, 너무 많은 소비, 너무 많은 부탁, 너무 많은 싫은 소리를 했다.


창호놈새끼 때문에 적당한 가을 날씨에 입주하지 못하는 게 분하고 아까웠다. 하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연말 겨울에 입주하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 추위에 다들 몸이 굼뜨고, 눈으로 찻길이 막히고, 각자 중요한 약속들로 바쁜 계절. 당분간 날 찾아올 이 없을 테니 침묵의 고립을 만끽하련다. 벽난로 앞에서 마당에 쌓이는 눈이나 보면서.


마을 반장님이 장작 일을 하신다. 집에서 5분 걸어 나가면 참나무 장작을 직접 구매할 수 있다. 이제 택배 받는 것마저 피로한데, 겨우내 필요한 장작이라도 걸어서 직거래가 가능하니 반가운 일이다. 장작을 실어 올 튼튼한 끌차를 하나 구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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