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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희래 Sep 14. 2024

게으른 한옥의 배롱 없는 여름

헤밍웨이가 사는 한옥

불을 끈 방 안에 홀로 남을 때면 평소에 관심도 없던 괴물이니 귀신이니 어둠과 친하다는 존재들이 떠오르곤 했다. 혹시 침대 아래, 커튼 뒤, 아니면 옷장 안은 아닐까, 살짝 벌어진 옷장 틈이 괜히 불안하게 느껴지면서 작은 소리에도 민감하게 반응하다가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끼이익 - 경첩 소리가 어둠보다 낮게 깔리고 옷장 속에 숨어 있던 털북숭이 괴물이 올타쿠나 씨익 - 입이 귀에 걸릴 정도로 웃으며 쿵 쿵 걸어 나온다. 천적을 만난 멍청한 타조처럼 그만 이불속을 파고들어 두 눈을 질끈 감아 회피한다.


어른이 된 나는 여전히 보이지 않는 불안과 대적하고 때론 무시하는 방법으로 상황을 피하고 만다.

하나하나 맞서기에 나는 너무 바쁘고 피곤한걸.

애써 변명을 둘러대지만, 마음 한 구석에 찜찜함으로 남아 점점 덩치를 키워간다. 그리고 우려했던 일이 벌어진다.


작년 10월 말, 화려하게 피어났던 배롱나무는 마지막 꽃잎을 떨구고 알록달록 물든 이파리마저 모조리 낙엽으로 만든 후에야 편안하게 동면에 들어갔지만 내 마음은 그렇지 못했다. 뿌리 사이에 숨어 있는 옷장 괴물이 우리 배롱나무를 집어삼킬까 불안했다.


유독 매서운 안동의 동장군 때문에 사람의 온기마저 남아있지 않은 자정 무렵 한옥의 실내 기온은 영하로 떨어졌고 추위를 견디다 못한 실내 식물들이 하나둘 시들해지더니 축 늘어져 버렸다. 열심히 물을 줬지만 뿌리마저 까맣게 변해버린 잎들을 살려낼 방도는 없었다. 설상가상으로 여인초와 더불어 가장 큰 화분이던 아레카야자마저 잎의 가장 끝부분부터 말라 들어가더니 동사하고 말았다. 진짜 문제는 내가, 식물처럼 되는 상황이었다. 두려움이 엄습했다.

'올 겨울을 나지 못하는 건 내가 아닐까. 이대로 손님이 끊기고 우리는 굶어 죽는 거야. 온풍기도 틀지 못하고 달달 떨다가...'

턱- 옷장문에 손을 걸치고 한 발짝 가까워진 괴물의 실루엣이 보이는 듯했다.


실내 상황이 이러하니 바깥에 있는 나무가 동사하지 말란 법도 없었다. 많은 초보 식집사가 착각하는데 겨울이라고 물을 충분히 주지 않으면 날이 풀리는 4월 초에 식물들은 모조리 죽게 된다. 더워도, 추워도,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식집사는 정성 들여 성실하게 물을 줘야 한다. 식물이 죽는 이유는 90%의 확률로 물 부족이다. 겨우내 우리가 물을 충분히 준 게 맞을지, 너무 춥지나 않았는지 걱정하며 바싹 마른 가지에서 새순이 돋아나길 초조하게 기다렸다. 다행히도 오동통한 새순이 방긋 올라와 나무는 작년보다 무성해졌다. 한시름 걱정을 덜었지만 장마가 가고 꽃 필 시기가 도래하자 나는 옷장 속 괴물을 떠올리며 다시 초조해졌다. 매일 아침 목이 떨어져라 올려다보는 일이 하나의 습관처럼 굳어졌고 마음속으로 '제발 우리 배롱 괴롭히지 마!' 괴물에게 강력한 경고를 날리며 애써 태연한 척했다.


대구 가로수들은 7월 초부터 일제히 꽃을 터뜨렸고 안동의 배롱나무도 하나둘 개화하더니 금세 만개하여 더운 여름 진풍경을 조성했다.

“우리 집은 작년에 8월에 피었던가?”

“그랬던 것 같아. 가로수는 활짝 피었잖아 이게 어떻게 된 영문이지?”     


올여름, 한옥의 배롱나무는 꽃을 피우지 못했다. 다른 곳에 정신이 팔린 주인에게 항의라도 하는 건지 8월 중순까지 아무런 신호가 보이지 않아 ‘곧 피겠지. 올여름이 좀 유난이잖아’ 애써 외면하던 나조차도 자못 심각해져 이리저리 알아봤지만 누구도 뚜렷한 답변을 내놓지 못했다.

‘영양분을 너무 많이 줘서 그래요.’
‘물은 제때, 정량으로 줬어요?’
‘한 번 꽃 피운 나무는 다음 해에 안 펴요.’     

그래도 잎은 수북하니 건강해 보였기 때문에 올해는 아쉽지만 그냥 넘어가야겠다고 마음을 놓을 무렵 뜻밖의 행운을 발견했다. 저 위, 처마에 닿은 가장 높은 가지에 꽃봉오리가 맺혀 있었다.

“아, 그래. 필 줄 알았어. 우리 애가 특별해서 늦게 피는 거지.”     



뿌듯하게 올려다본 나무에서 벌들이 파티를 벌이고 있었다. 그동안 적으면 서너 마리 많게는 여덟 마리 정도 손가락 마디만 한 크기의 벌들이 한옥 마당 구석구석을 누비며 식물의 수분을 돕곤 했는데 언제부턴가 붕붕거리는 소리가 커져갔다. 방향을 잃은 벌이 통창을 향해 돌진하다가 통 - 통 - 소리를 내며 부딪히는 일이 비일비재했다.

“설마, 근처에 벌집이라도 있나? 무슨 문제 있는 거 아니야?”


그때야 알았다. 우리 배롱이에게 문제가 있을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싶지 않았다. 그동안 아무 징조도  없었던 건 아니었다. 잎사귀가 얼룩덜룩해 보인다거나, 벌과 개미들이 지나치게 몰려든다거나, 나무껍질이 벗겨진다거나 관심을 기울였다면 진작 알아차렸을 문제였다. 내가 무심했다.


가까이서 본 나뭇잎은 생각한 것보다 더 심각했다.  좁쌀보다 작은 진드기들이 우글댔고 까만 똥을 어찌나 싸질러 놨는지 윗 잎은 진드기가 아랫잎에는 진드기 똥이 범벅이었다. 진드기의 단내에 벌과 개미가 몰려들어 나무가 병에 든 것이다.


가상의 괴물이 덩치를 키워 현실로 나타났다. 늦었지만 더 이상 회피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기에 한옥 나무 기둥이 많이 갈라졌는지, 녹슨 곳은 없는지, 빗물받이는 안전해 보이는지, 나무의 진짜 문제는 무엇일지  전체를 찬찬히 뜯어본다. 어쩌면 집을 가꾸기에 나는 자격미달이라는 생각이 들어 부끄러웠다. 


꽃을 피우지 못한 여름은 아무것도 아니지. 이렇게 가을이 지나 겨울이 오면 진짜 나무가 죽을 수도 있잖아.

회피하기에 문제는 너무 크고 명확했다.(게다가 비싸기까지 하다!) 10분 거리에 있는 농약사에서 약을 사 왔다. 12L짜리 분무기를 어깨에 둘러매고 옆구리에 달린 레버를 위아래로 펌프질 하면서 나무를 비롯한 마당 전체에 흠적시듯 뿌려주면서 펌프 한 번에 무사하기를, 번에 내년에는 활짝 피어날 있기를 바랐다.


누구나 피하고 싶은 일들이 있다.

'자연적으로 소멸할 수도 있잖아. 아니면 나중에 훨씬 더 잘 풀릴 수도 있고.'

그렇지만 살아온 짧은 인생의 경험에 비춰보아 인간은 직감적으로 문제를 알아차리고 무의식적으로 회피하거나 무시하려는 성향을 띠며 이러한 문제는 결국 악화하며 심각할 땐 파멸에 이른다. 그제야 우리는 고개를 들어 '아, 이런 문제가 있었지. 어쩌지?' 조금은 무책임한 발언을 내뱉는다.


썩은 치아를 애써 숨기는 상황과 비슷하다. 나는 치과에 가는 걸 100m 달리기만큼 싫어하는 사람으로 치과 방문은 미룰 수 있는 만큼 미루는 편이다. 어쩌면 양치하면서 사라질 수도 있고, 초콜릿을 안 먹으면 괜찮아질 수도 있으니 치과 방문을 최대한 미뤄보지만 결과는 늘 최악이었다. 신경 치료를 하거나 금을 씌워야 했는데 아프고 스트레스받고 심지어 돈도 깨졌다.

"하루만 더 일찍 왔어도 금니는 면했을 텐데요."

의사 선생님의 힐난 섞인 어조에 부끄러운 변명을 늘어놓곤 했다. 아, 바빠서요, 올 시간이 있었어야죠.


여름꽃을 잃는 대가를 치렀으니 다시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을 테다. 오늘도 농약사에서 장미 흑점병을 쫓아버리기 위한 살충제를 사 온 참이다. 34도를 웃도는 더위지만 어쩌겠는가 괴물이 옷장 속에 얌전히 있기를 바란다면 오늘 당장 약을 쳐야지. 미루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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