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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 줍는 사람들

<재즈를 찾아서>

by 밤 비행이 좋아


수확의 기쁨


왕복 2차선 도로 양옆으로 픽업트럭과 소형 버스가 늘어섰다. 한낮 기온은 34도, 가만히 있어도 숨이 턱 막히고, 얼굴에 열이 오르는 날씨다. 마당에 물을 주고 주말 새 자란 잡초를 뽑느라 10분 정도 움직였을 뿐인데 누가 위에서 샤워기를 틀고 있는 것처럼 셔츠 안이 흠뻑 젖는다.


농사를 지어본 적 없어도 이맘때 창문을 열고 농로를 달리면 코끝을 찌르는 알싸한 마늘 냄새에 ‘곧 마늘이 시장에 나오겠군’하고 예측할 수 있다. 드넓은 평야에 심은 마늘과 양파가 차가운 겨울 한기를 이겨내고, 따사로운 봄 햇살을 맞고, 거센 비바람을 견뎌 단단하게 알이 차오르면 이제 농부들의 차례다.

“어째서 기계를 쓰지 않는 걸까?”

벼를 수확할 때는 콤바인(벼 베는 기계) 한 대뿐이지만, 마늘과 양파를 수확할 때는 밭 사람이 그득하다. 어째서 기계를 쓰지 않는지 의아했다가 아차 싶다. 맞다, 마늘과 양파는 뿌리채소다. 마구잡이로 흙을 파내다 보면 소중한 수확물이 상할 수도 있으니 당연히 섬세한 인간의 손길이 닿아야 한다.


농사일은 해가 중천에 떠오르기 전에 마무리해야 한다. 농부들은 이른 새벽부터 바지런히 움직인다. 아이들이 학교 셔틀버스를 타듯 픽업트럭, 콤비버스, SUV에 옹기종기 붙어 앉은 온 동네 농부들과 외국인 인부들이 그날의 일터에서 줄지어 내린다. 덕분에 안 그래도 좁은 시골길이 양옆에 줄지어 늘어선 차들로 더욱 좁아졌지만, 평소와 다르게 성질은커녕 웃음이 새어 나온다. 밖에서 보기에 수확하는 장면은 아름답기만 하다. 신선한 흙 내음과 실한 농작물을 상상하며 군침을 흘리기도 한다.


사람들의 열기는 작열하는 태양도 이길 정도라 오랜만에 동네에 활기가 넘친다. 요즘 들어 다문화 가정이 늘고 있다는 뉴스를 자주 접하는데, 시골에 살면 뉴스를 보기 전에 피부로 느낄 수 있다. 안 그래도 청년 인구가 부족해서 수확할 때마다 일손이 모자란 농가에 외국에서 온 젊은 청년들은 소중한 존재다. 시장에 장을 보러 가거나 식당에 밥을 먹으러 가도 낯선 언어가 배경음악처럼 나직하게 깔린다. 이곳에서는 다르다고 신경 쓸 것 없다. 제각기 쓸모가 있고, 제 역할을 한다면 그저 한몫 제대로 하는 사람 1일뿐이다.



일꾼들은 모자를 쓰고, 긴 상의와 하의로 중무장한 채 고개 한 번 들지 않고 묵묵히 앞으로 나아간다. 나도 귀촌한 첫해에 다양한 농사일에 동원되었다. 9월 중순, 다음 해 마늘과 양파 농사를 위해 땅에서 잡초를 골라내고, 검은 비닐로 멀칭 작업을 했다. 엉덩이에 푹신한 쿠션 하나를 끼고, 눈에 띄는 잡초를 모조리 골라낸 뒤, 2명이 한 조가 되어 카펫처럼 둘둘 말려 있는 검은 비닐을 이랑에 덮는 작업이었다. 만만하게 보고 비닐을 들었다가 ‘어이쿠’ 소리와 함께 허리가 저절로 굽어졌다. 이랑 하나를 겨우 덮었을 때는 이미 30분이 훌쩍 지나버렸다. 삽으로 흙을 퍼서 비닐이 뜨지 않도록 양옆을 덮어주고서 비로소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아니지, 여기를 이렇게 잡고 야무지게 길게 잡고 가야 해.”

엉성한 우리를 보고 주인 할머니가 한 말씀하신다.

“오늘 이 짝 다 덮기 전에는 못간디.”
“진짜요?”

진심인지 장난인지 구분가지 않는 얼굴로 툭 한 마디 던지시고는 옆팀을 코치하러 건너가셨다.


“내가 이쪽, 네가 저쪽에서 잡초 제거를 하다가 가운데서 만나.”
“아니지, 좌우에서 같이 해 나가는 게 낫지.”

들으셨는지 할머니는 간단한 농사일에도 분업화를 따지는 도시 청년들을 안타깝게 바라보신다. 마치 ‘그렇게 논쟁할 시간에 벌써 절반은 제거했것다’ 싶은 표정이다. 멀칭 비닐이 무거워 도저히 혼자 들고 있을 수 없었고 우리는 3인 1조가 되었다. 둘이 비닐을 들고 한 명이 길게 당겨 이랑을 덮어야 했다.


러너스 하이라고 하던가, 온몸이 흠뻑 젖고, 양 볼은 발갛게 익어 금방이라도 쓰러질 것 같은 모양새더라도 마음은 들떴다. 손끝에서 바스러지는 메마른 겉 땅의 감촉과 잡초 뿌리에서 풍기는 구수한 흙냄새에 잡생각을 잊어버리고 반복된 업무에 매진했다. 때로는 반복적인 노동으로 몸과 마음을 정화하고 핵심에 집중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이내 자연 앞에 인간은 얼마나 하찮은가 느낀다. 시골에 와서야 사계절을 온몸으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었다. 곧 사라질 듯한 풍경들, 그러나 다시 살아날 자연. 그 속에서 인간이 추구하는 아름다움이 얼마나 덧없는가. 땅에서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왠지 모르게 부끄러워진다. 양파밭 멀칭 이후에도 모판 옮기기, 복숭아 싸기 등 여러 농사일에 참여하며 뿌듯한 농부가 되어볼 수 있었다. 땅의 기운을 받았다. 땅속 깊이에서 온 힘을 다해 자라온 것을 두 손으로 끌어안는 기쁨은 어디에도 비할 수 없다. 허리를 굽히는 일은 고되지만, 마늘 하나 들어 올리고, 복숭아 한 개 싸개지로 쌀 때마다 땅이 준 선물을 받는 기분이다.


허리를 굽히고 마늘을 캐는 노동자들의 모습은 밀레의 작품 같다. 겸손하고 소박하지만, 그 자체로 아름다운 의식과 같은 일이다. 오래도록 시선을 땅에 고정하고 마늘을 캐고, 양파를 수확한다. 가치 있는 일의 기준은 사람마다 다르다. 농작물의 수확을 목격하면서 그저 흘러가는 삶이 아니라 뚜렷한 목표가 있고, 형태를 만질 수 있는 시간에 대해 고민한다. 나도 나만의 수확을 위해 흙을 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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