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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ran May 17. 2021

낯설고 익숙한 계약직


 나의 정신건강을 위해 더 큰 일을 벌이기로 했다. <우울할 땐 일을 하자. 참고.> 사실 일을 찾아 나섰다기보다 마침 일이 굴러들어 왔다. 대학 과사의 행정조교 업무였다. 11학번으로 입학하고 졸업하며 어지간하면 다시 들릴 일은 없으리라 생각했던 곳이었다. 그곳에서 부설유치원 교사라는 타이틀로 3년 가까이 근무를 하고, 이젠 정말 끝이라며 퇴사를 선언했다. 그럼에도 나를 찾아온 이 자리가 반가우면서도 결코 흔쾌하지만은 않았다. 업무량에 비해 작고 귀여운 페이, 1년 단위 계약, 인천-서울 간 지옥철 출퇴근, 주야간 교대근무 등 주변에서 날 뜯어말릴 거리가 무궁무진했다. 무슨 청개구리 심보인지 대부분 지인들이 만류했으나 그 자리를 덥석 물었다. 계약직 이름표를 달고 말이다.


 지금까지 크고, 작은 일들을 결정해야 하는 순간에 섰을 때 나의 청개구리 심보는 제 역할을 충실히 해왔다. '뭐? 하지 말라고? 할래, 해내고 싶어!', '한 번 해보라니... 왠지 안 하고 싶어. 절대 안 해!' 가까운 이들은 이것도 병이라며 그런 나를 두고 피곤하게 살기 위해 작정한 사람이라 표현했다. 대부분 내 선택에 대한 자기만족과, 네 선택이 나쁘지만은 않았다는 타인의 인정으로 끝맺음을 해온 터라, 청개구리 심보가 여전히 맹활약 중인지도 모르겠다.


 여하튼 서른 무렵 첫 계약직 그렇게 시작되었다. 어디 가서 '저 계약직으로 일해요.'라는 말은 차마 안 나오지만, 아이를 재우고 급하게 홀짝이는 믹스커피가 아닌 테이크아웃 커피를 들고 출근다는 메리트가 컸다. 하루 종일 짬짬이 해둔 집안일은 아무도 몰라주어도, 일머리 있게 처리해둔 업무에 대한 보상만큼은 분명했다. 아이가 갖고 싶어 하는 장난감 또한 가계부를 뒤적거리기 전에 엄마가 사주는 거라며 생색내 보았다. 하지만 말 그대로 계약직이기 때문에 계약 만료 후에는 또 어떤 일을 벌일지 미리 염두에 두어야 했다. 십 대 때부터 '미래의 내 모습' 10년 단위 플랜을 꾸준히 계획해왔는데 어쩐지 해가 거듭할수록 실천에 난항을 겪는 중이었으니, 이번 계약직 근무도 그에 한 몫했다고 본다.


 묘하다. 그렇게도 갈망했던 일인데 계약직이란 타이틀이 묘하게 퍽퍽한 기분이다.


cover.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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