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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am Dec 08. 2020

나이를 먹을수록 심플해진다던데


 어김없이 한 해가 저물어가며 의지와 달리 나이도 한 살 더 먹게 되었다. 브런치에서였는지 떠도는 글이었는지 '나이를 먹을수록 사는 게 심플해진다'는 문구를 본 적이 있다. 스쳐 지나갈 수 있는 말이었지만 내 상황과 맞닿아있었는지 꽤 오랫동안 이따금씩 떠오른다.


가치로운 것과 해로운 것을 구분하는 식견

 이 기준만큼은 확실히 심플 해진 것 같다. 요즘 가장 가치로운 일은 에세이를 쓰는 것이다. 내 생각을 정리하고, 능력껏 표출하고, 불완전한 감정을 해소하는 과정이 무척이나 가치롭다. 릴랙스, 마인드 컨트롤과 같은 단어의 의미를 에세이를 쓰며 깨닫는다. 육아 또한 5년 차에 접어들자 내가 해낸 가치로운 일 중 하나가 되었다. 주변에 육아가 체질에 안 맞다는 사람은 봤어도 완전 내 체질이라고 하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물론, 우리 시어머님은 그게 체질의 문제냐고 꼬집으셨지만...) 육아를 하면서 여자로서, 개인으로 많은 것을 포기했다. 포기가 주는 삶은 견디기 힘들었지만, 매일 한 뼘씩 커가는 아이의 성장을 오롯이 느낀다는 것은 충분히 가치 있는 일종의 보상이었다. 가치로운 일들은 나 역시 성장하게끔 한다. 무언가 바라지 않고 행해도 그에 따른 나름 흡족한 보상이 주어진다. 내가 어떤 사람인지 생각해 볼 기회를 주고, 한 번 더 심호하여 달려 나갈 발판이 된다.


 가치로움과 해로움을 놓고 보자면 어쩐지 해로움의 기준이 좀 더 불명확할 수도 있겠다. 유치원 교사라는 직업을 두며 한결같이 성선설을 믿어왔다. 하얗고 깨끗한 아이들의 선한 그릇에 이로운 것들만 가득 담아 주겠노라 다짐했다. 그러려면 나부터가 그런 것들을 골라내는 안목을 가진 사람이어야 했다. 그런데 악착같이 잡다한 본능의 끄트머리만 붙잡고 있는 다 큰 어른을 만날 때면 너무나 쉽게 그들에게 물들어버리곤 했다. (누군가에겐 나 역시 같은 부류의 어른으로 보일 수 있지?) 그들은 스스로를 부정적인 상황에 내모는 것이 익숙하다. 낭떠러지 끝에 서야 타인을 질책하고, 자신을 합리화할 수 있다고 여긴다. 악의 없이 건네는 타인의 손길을 웃으며 붙잡지만 전적으로 믿지는 못한다. 이런 상황에 휘둘릴 여지가 있다는 것만으로도 나에게는 무척 해로운 일이다. 부정적인 상황과, 그 부정에서 파생된 감정적인 사고, 제어력을 상실한 본능 피해 갈 수 없는 프로세스다.


 (어찌 보면) 고작 서른에 가까운 나이지만 지금까지 체득한 심플하게 사는 법이라 함은, 불온전해질수록 나에게 가치로운 일들을 상기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옳은 것이 무엇인지는 몰라도 최소한 해롭지 않은 더 나은 방향을 선택는 것, 그리고 스스로 그 기준을 마련하는 것이 방법이지 않을까 싶다.


cover.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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