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답게 시리즈: Brand
여행을 하며 기념품을 모은 적이 있는가. 엄마는 여행을 떠날 때면 찻잔을 모았다. 집 한쪽 선반에는 그렇게 모인 다양한 찻잔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네덜란드에 머무는 지금, 엄마와 안부를 나누다가 엄마는 이곳에 예쁜 찻잔이 없냐고 물었다. 찻잔에 관심이 많지 않았기에 글쎄라고 대답하고는 찾아보겠다고 했다. 그리고 가까운 동네인 Delft에 유명한 자기 브랜드가 있음을 알게 되었다. 이름하여 Royal Delft. De Porceleyne Fles ("the Porcelain Bottle")라고도 불리는 곳이었고 박물관에 방문해 경험한 Royal Delft는 흥미로웠다.
17세기 네덜란드는 상업의 중심지로 전성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이 시기 네덜란드에는 동인도회사를 통해 동양의 물품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대표적인 상품이 도자기와 차였다. 하지만 당시 네덜란드에는 차를 마실만한 그릇이 마땅치 않았다. 또한 중국의 명청 교체기(1616~1644)는 도자기의 공급에 장애를 초래했다. 이에 도예가들은 중국의 도자기를 모방하기 시작했고 비슷한 점토를 확보하여 차주전자와 컵을 만들었다.
1653년. 델프트에도 도자기 공방이 하나 세워졌다. 설립자는 David Anthonisz van der Pieth로 벨기에 앤트워프의 도예공이었다. 당시 스페인의 종교재판으로 많은 도예가들이 피난을 떠났는데 그에게 물이 흐르고 허허벌판인 델프트는 도자기 공방이 입지 하기에 좋은 장소였다. 초기에는 타일을 위주로 생산하다가 도자기로 사업을 확장하였으며 정교한 디자인으로 점차 인기를 얻는다. 델프트의 도자기가 유명해지면서 더 많은 공방이 생겨났고 전성기에는 무려 33개의 자기 공방이 있었다.
그러나 잘 나가던 Delft 공방은 위기를 맞이한다. 자기의 원료인 Procelain-clay가 유럽에서 발견되었고 1746년에는 영국에서 white–baking clay를 발견했다. 즉, 더 단단하고 우수하며 가공하기 쉬운 재료가 영국과 유럽에 유통되고 대량 생산되면서 델프트 도자기 공방은 속속히 문을 닫았다. 겨우겨우 공방을 이어가던 와중에 1876년 Joost thooft라는 남성이 델프트 도자기에 관심을 가지고 있다며 공장을 계승하고 싶다고 나선다. 비록 혈연에 아니었음에도 흔쾌히 계승을 허락받았던 그는 델프트 도자기에 새 바람을 불어온다. 그는 Able Labouchere과 함께 도자기 품질을 높이는 작업에 돌입한다. 치밀한 연구를 통해 흰색 영국 토기와 유사한 점토 혼합물을 찾아내어 경도와 품질을 높이고 1879년부터는 델프트 도자기에 만든 사람의 이름과 날짜를 새겼다.
그렇게 점차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은 델프트 도자기는 그 명성과 품질로 1919년 황실에게 칭호를 받으며 현재의 로열 델프트가 된다. 네덜란드 황실에서는 로열 델프트 작품을 쉽게 발견할 수 있으며 지금까지 왕실에서는 귀빈을 대상으로 이 로열 델프트의 도자기를 선물한다고 한다.
전통 방식에 입각한 수제 채색이 특징이다. 목탄으로 윤곽을 그린 후 담비털과 다람쥐털로 만든 특수 브러시를 이용해 물로 농도를 조정하며 디테일을 그려 나간다. 이 작업을 위한 마스터 페인터가 되기까지는 8년이 소요되는 내부 교육 과정이 있다. 그렇게 생산된 작품에는 아래의 고유 마크와 더불어 왼쪽에 화가의 이니셜을, 오른쪽에 연도 코드(영문 2글자)를 쓰고 있다.
중국 도자기의 색상에서 유래되었다. 파랑이 인기를 끈 이유는 당시 문화적 변화와 관련 있다. 17세기 유럽은 단순성을 지향했다. 상류층은 염색이 가장 어려웠던 검은색을 비롯한 어두운 색상의 의류를 입었고 어두운 직물은 부의 표시였다. 네덜란드의 대표 화가인 렘브란트의 그림이 이를 잘 보여준다. 이에 따라 디자인에서도 일종의 절제가 나타나기 시작했는데 그것이 바로 이 델프트의 파랑으로 향했다.
델프트 블루는 강한 밝은 파란색과 함께 부드러운 보라색과 회색톤의 음영이 특징이다. 외곽선은 진한 파란색, 검은색 또는 약간의 적자색으로 나타난다. 델프트의 블루는 시대에 따라 조금씩 변화했는데 박물관에서 이를 살펴보는 것도 흥미롭다.
1919년 황실의 인증을 받아 로열의 칭호를 얻었다. 따라서 황실을 위한 기념 접시나 작품을 만들기도 하며 황실에서는 귀빈을 위해 로열 델프트를 선물하기도 한다.
로열 델프트에는 다양한 컬렉션이 존재한다. 특히 과거의 전통과 현대적 감각을 합하고자 하는 노력을 지속하고 있는데 대표적인 컬렉션 몇 가지를 소개한다.
William 3세의 부인 Mary Stuat 2세는 네덜란드 황금시대에 Delft Blue의 열렬한 수집가였다. 그녀의 이름을 빌려 또 하나의 열렬한 수집품으로 자리매김하고자 하는 열망에 현대적인 감각을 더해 만든 컬렉션이다. Koens & Middelkoop이 디자인하여 핸드페인팅된 대형 버전과 전사된 소형 버전이 있다. 컬렉션은 지속적으로 확장될 예정이다.
전통적 디자인과 현대적인 요소를 결합한 타일이다. 미니멀하고 유머러스한 느낌이 특징이며 네덜란드 고유의 전통과 해학스러움을 작품에 담아냈다.
네덜란드는 미피의 고장이기도 하다. 2002년부터 시작한 미피와의 협업은 지속적으로 확장되었다. 그중 하나는 미피 출생타일로 태어나는 이의 이름과 날짜 그리고 디자인을 선택하면 수작업으로 제작된다.
Blue D1653 Collection은 2017년 로열델프트에 새로움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시작되었다. 전통적인 방식과 현대적인 디자인을 결합시킨 것으로 유서 깊은 마스터 페인터와 네덜란드의 현대적인 디자이너와의 협업으로 만들어졌다. 이를 통해 전통은 물론 혁신 역시도 델프트에서 탄생함을 보여준다.
로열 델프트 박물관에 방문하면 로열 델프트의 연대기에 따른 작품들을 경험할 수 있다. 마지막에는 로열 델프트가 만들어지는 현장을 생생하게 볼 수 있도록 공방 그대로를 보여준다. 다양한 프로그램 역시 진행하고 있는데 Painting Workshop이나 델프트 자기를 통한 티타임, 어린아이들을 위한 교육 및 투어 프로그램 등이 있다.
작은 공방이 하나의 브랜드로 자리 잡기까지 긴 시간이었다. 그러나 대를 이어 쌓아 온 그들의 경험과 이야기는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브랜드만의 가치이다. 더 빠르게 변화하는 세상에서 로열 델프트가 위치해야 할 것에 대해 끊임없이 고민하며 만들어내는 감각적인 디자인이 인상 깊다. 쉼 없이 흐르는 이 네덜란드의 운하들처럼 또 하나의 영원한 블루가 흐르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