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보혜 Nov 24. 2020

무녀(巫女)의 길

무속인의 길을 걷지 않기로 했습니다.

정말 지겹게 들어왔다.

내 사주 여덟글자를 놓고 그들이 왈가왈부하는 말들을.

그리고 정말 지겹게 보아왔다.

그들의 말에 흔들리는 엄마와 엄마 말에 흔들리는 나를.


어떤이는 내가 무당이 될 팔자라 했고, 또 어떤이는 영가를 타는 몸이라 했으며, 또 어떤이는 집안 줄이 세서 그럴 뿐 무당 노릇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했다.


이유 없이 몸이 아프지 않았더라면, 내가 정신줄을 놓고 사는 일이 없었더라면 나에게 이런 시련은 없었을까?

무당 노릇을 해야되니마니의 씨름은 9년 전 정신과 약을 먹을 때부터 시작되어 지금까지 나를 괴롭혀왔다.


두 돌도 안된 아들 지후를 업고 신의 제자가 되기 위해 제주도까지 들어갔다가 도망쳐 나온 나는 이젠 이런 일 따위 없을 줄 알았다. 그런데 이번에 또 바람이 불었다.


자꾸만 몽을 꾸던 나는 엄마집 근처 점집을 찾았다.

그곳은 신점을 보는 곳이어서 철학을 풀기 위한 책이나 그 어떤 도구도 없는 곳이었다. 나는 나의 생년월일시만 알려준 뒤 가만히 잠자코 있었는데 무속인은 나에 대해 줄줄 얘기하다가 갑자기 방울대를 확 들더니 나를 향해 눈을 흘기며 화를 내기 시작했다.


"할머니, 할아버지가 이모야한테 (딸랑딸랑) 이거 하자고 하는데 이모야 왜 안 하려고 해! 예전부터 자꾸 표적주고 현몽주고 하는데 왜 안 하려고 그래! 그래서 할머니, 할아버지 화났잖아!"


나는 순간 '아... 또 시작되었구나...' 싶어서 모든 걸 체념한 듯 마음을 비우고 그 자리를 일어서 나왔다.

그리고 이 날 있었던 일을 엄마에게 얘기했고 엄마가 다시 점집을 찾아 무속인과 얘기를 나누었다.


진짜 신내림을 받아야 될 사람인지 확인해보기 위해 굿을 하기로 했단다. 이 굿에서 풀어야 될 귀신은 풀고, 신을 하나씩 몸에 실어보는 작업을 했다. 나는 온종일 뛰고 흔든 탓에 너무 힘들어서 울고 불고를 반복했다.


결론은 신내림을 받아야 된다는 거였다. 내림굿 받을 날을 잡았다. 2020년 11월 8일~9일 기장 천지신당.

내림굿이 있기까지 법당에는 20kg 가마니쌀 위로 나를 염원하는 촛불이 밝혀졌다.


나의 초는 꽃을 피우기 시작했다. 신의 조화라 했다.

날을 받고 나니 눈만 감으면 이상한게 보였다. 퐉! 퐉!

꿈도 휘황찬란하거나 이상했다. 진심 무서웠다.

(이때 정신과 약은 먹지 않았다.)


내림굿을 앞둔 십일 전, 양산 엄마집에서 진주 집으로 내려갔다. 사실 신랑과 아이는 아무런 사실도 모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집으로 간 나는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아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이틀이 흐르고 더 이상 지체할 시간이 없어 남편에게 톡으로 기나긴 장문의 메시지를 써서 그간의 일을 설명했다.


남편은 하루 종일 눈물지으며 일도 제대로 못하고 퇴근 후 약속 자리도 겨우 다녀온 후 울어서 붉어진 눈으로 날 보며 그래도 서로가 티격태격 싸우며 힘든 와중에 살았어도 언젠가는 좋은 날 오겠지 버티며 지내왔는데 결국 우리 결말이 이것이냐며 못다 흘린 눈물을 보였다.


그러면서 얘기하길, 30대는 술 마시친구를 만나 놀기아까운 시간인데 무속인 길을 걷는게 말이 되는 소리냐며 '나로 인해 누군가가 피해를 입는다' 또는 '남 때문에 무속인 길을 걷는다'는 아닌 것 같다며 오로지 나만 바라보고 내 생각만 하라고 했다. 남편이 이러한 말을 한 이유는 나는 내가 날 받아놓고 일을 엎으면 누군가가 큰 화를 당하게 될지도 모른다는 마음에 불안감으로 크게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남편과 나의 뜻의 따라 무속인의 길을 가지 않기로 했다. 그리고 모든 일정을 취소하고 현재 다시 정신과를 찾아 약을 타 먹으며 안정을 취하고 있는 중이다.




나는 크진 않지만 내 안에 작아도 확고한 믿음이 있다.

내 안에는 밝고 맑은 크고 큰 자신이 내재하고 있다는 것과, 반드시 잘 될 것이라는 믿음.

누구 하나가 죽어나갈지도 모른다는 말을 듣고도 굿을 접을 수 있었던 이유는 남편의 외조도 있었지만 이런 내 믿음 때문이었다.

크고 큰 나 자신이란 그릇에 그 어떤 신도 담을 수 없다.

그리고 나는 잘 될 것이다. 반드시.

작가의 이전글 어디쯤이 가장 좋을까?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