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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창성 Sep 09. 2018

나는 사실 엄마가 없었다.

3년을 잃어버린 엄마, 그리고 취업의 상관관계

나는 사실 엄마가 없었다. 현재는 있고.

이렇게 3년을 '없었던' 엄마와 나의 취업이 상관이 있다.


신문지를 뒤집어쓰고 뛰어다니는 나와 화난 엄마, 그리고 칸마리

엄마가 가장 사랑하는 계절인 가을의 어느 날, 고등학생인 나는 야간 자율 학습을 끝내고 집에 왔다. 엄마의 표정은 가을이 아니었다. 가끔씩 엄마의 슬픈 표정을 보긴 했지만, 늘 내 할 일하기 바빴다. 근데 그날따라, 엄마의 표정이 듣고 싶었다. 가장 사랑하는 계절인 가을에, 왜 엄마의 표정에 가을이 없을까. 애교가 무기였던 나는, 낭창하게 물었다.


"엄마 왜 기분이 안 좋아 보여."

 

인생 다 산 것 같았던 10대 후반의 우창성에게 한 번의 슬픔도 털어놓지 않았던 엄마가 입을 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이때 엄마의 기분을 처음 물어본 것 같다. 엄마의 대답은 다음과 같았다.


"1965년 6월에 엄마가 태어났고, 3년이 지난 1968년 6월에 다시 태어났어. 엄마가 오늘도 65년부터 68년까지, 30년 같은 3년의 시간을 설명하는데 진이 다 빠졌어. 난처한 이 상황이 싫다."


그렇다. 엄마는 65년 6월에 태어났고, 딸을 연달아 3명이나 가진 할아버지의 뜻대로 3년의 시간을 없는 채로 살았다. 85년에 엄마의 큰 딸인 우리 누나가 태어났다. 엄마는 21살에 누나를 낳았는데, 호적상으로 17살에 아이를 낳은 게 돼버리니 싫었단다. 그걸 살아가며 늘 설명하다 보니 얼마나 난처했고 질렸겠는가. 엄마는 그렇게 3년 동안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있다.


엄마하면 회가 생각나고 회하니까 생각난, 전에 작업한 조개그림

비단 우리 엄마뿐만은 아니다. 그 시절 많은 여성이, '딸'이라는 이유만으로 소리 없이 태어났다. 엄마에게 일명 '출생 비하인드 스토리'를 들은 고등학생. 그때부터 지금까지 엄마는 한없이 작아지고 있고, 점점 행복하게 해줘야 할 대상이 되어가고 있다. 온갖 처세술로 출생을 설명하기 바빴던 엄마의 마른입에,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회를 선물하기 위해 일한다고도 말할 수 있다.


회사에서 엄마에게 보내준 감사의 꽃

그녀가 가장 좋아하는 음식은 회지만, 가장 행복해하는 때는 아들이 행복할 때다. 그녀의 표정은 너무나 잘 읽힌다. 사실, 가족 앞에서는 한없이 여린 사람이라 감정도 야들야들해서 잘 보이는 걸 수도 있다. 그녀가 최근 가장 행복했던 날은 아들이 직장이 생긴 날이다. 그리고 아들의 첫 출근날, 아들의 회사에서 꽃을 받은 날이다. 또 아들이 미팅을 마치고 "너무 행복했어.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여서 미팅이 너무 재밌고 흥분 됐거든"이라고 말했을 땐, 거의 울 수도 있었다.


입사 후 3주가 지난 지금, 엄마가 참 행복해한다. 내가 행복해서 그렇다.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으나 내 마음이 잘 흐른다. 아주 작은 막힘이 있으나, 이내 새로 겪는 즐거움과 성취로 뚫린다. 아빠가 그랬다. 길거리에서 떡볶이 먹지 말라고. 이 말은 즉슨, 짠내 나게 하고 다니지 말라는 뜻이다. 내 일에 짠내가 나지 않는다. 기쁘다. 입사 3주 차의 패기라고 할 수 있으나, 내일이 어찌 됐건 오늘까지는 딱 그렇다. 이미 만족의 궤도를 걷고 있다. 내일도 그랬으면 좋겠다. 그렇게 노력할 거고.


힘, 아침마다 카톡오는 의문의 그녀

출퇴근길이 멀어서 잠을 자거나 공상을 할 시간이 주어진다. 출근길에는 힘을 주는 어떤 사람이 있는데, 그녀다. 아들의 행복이 삶의 대부분인 사람. 덕분에 출근길에는 졸지 않고, 다양한 생각을 심을 수 있다. '지하철 임산부 좌석에 누군가 앉으면 [임신을 축하해요! 당신이 미래의 주인공입니다!]라는 음성이 나왔으면 좋겠다. 그럼 저 자리는 유쾌한 자리, 행복한 배려의 자리가 될 텐데.'와 같은 생각을 심는다. 어떤 날 퇴근길에는 이 브런치를 한 자 한 자 작성하다 졸아 김포공항까지 간 적도 있다. 근데 정말 웃긴 게 뿌듯했다. 잠을 못 자서 수면유도제를 줄곧 먹던 나였는데, 이제는 일 때문에 피곤해서 지하철에서부터 멋지게 잔다. 과연 내가 '그냥 힘든 일'을 한다면 졸아서 뿌듯했을 수 있을까. 과연 내가 '어쩔 수 없이 하는 일'을 한다면, 내 행복이 온전한 엄마의 행복으로 갈 수 있었을까.


스티커 제작 업체에서 쿠폰을 주길래 내가 쓰려고 만들었다. 키치하려고 하나, 그 키치가 뭔지 가장 어렵다.

결국 내 오늘의 브런치가 하고 싶은 말은 딱 세 가지다.

어제와 오늘, 그리고 내일 퇴근길에 지하철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을 내 상황에게 감사하다.

감사는 한다. 하지만 내일 월요일, 잠에서 깨는 일은 살짝 두렵다.

이 세상의 모든 아들들아. 마마보이 하자. 엄마를 사랑하고 공경하는 법에서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법을 배웠다. 결국 모든 것은 엄마로 시작한다. 엄마 만세!


다 쓰고 나서 보니, 아빠가 이 브런치를 읽으면 안 될 것 같다. 아빠도 사랑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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