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정의 돈까스와 행복을 채워줄 수 있는 회사인가
'니 그거 해서 뭐 하려고?'라고 나에게 뜨거운 질문을 던진 지 벌써 3개월의 시간이 지났다. 별 거 아닌 줄 알았는데, 생각해보니 별 거였다. 입사와 동시에 '나는 원래 잘하는 사람이야'라고 자신감 뿜뿜(feat.모모랜드) 모드를 장착했고, 이 모드는 입사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벗었다. 내가 우물 안에 있던 개구리인지, 아니면 태초부터 대단한 사람들이 모인 집단인지. 어찌 됐건 지나친 자신감은 벗었다.
지나친 자신감을 내려놓으니 성실만 남았다. 내가 한 성실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성실하게 일하면 자신감이 비우고 나간 자리를 채워줄 것 같았다. 다 채우면 행복할 것 같았고, 기어코 꽉꽉 채워나가고 있다.
짧기도, 길기도 한 3개월의 시간을 단순히 버티긴 싫었다. [버티다]라는 어원이 사랑스럽지 않을뿐더러, 내가 가장 중요시하는 [행복]과 [버팀]이 잘 어울리진 않는다. 정말 바쁜 날이 아니라면, 꼭 짬을 내서 '행복한가?'라고 질문을 했다.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거나 미팅을 가다가 '나.. 행복하다.. 나 왜 울어.. 또륵'이라고 청승을 떨진 않았다. 하지만, 속에서 내 마음이 행복하다고 대답했던 것 같다. 행복을 위한 필요충분조건을 채워줬기 때문에, 나는 이 일을 사랑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리고 앞으로도 이 일을 잘하는 게 내 목표다.
(몇 개월 전 나와 같은) 취준생들은 회사 선택에 있어서 다양한 필요충분조건을 내걸고 있다. 나의 조건은 단순했다. 이 일이 나를 행복하게 하고, 내 주위 사람의 행복으로 이어지는가. 아마도 누군가에겐 최고로 복잡한 조건일 것이다. 하지만, 나에게는 정말 단순한 조건이다. 월급통장의 희열도 아니고, 워라밸에서 오는 평온함도 아니다. 정말 잘 튀겨진 돈까스의 첫 입을 물었을 때처럼, 입 안에서 유니콘이 2번 어금니와 설소대를 차례차례 점핑하는 느낌이랄까. 그냥 이 일에서 나의 도파민과 세로토닌이 분비되는 것. 그리고 가끔의 카타르시스를 느끼는 것이다.
키가 컸다는 것은 아니다. 같은 거리를 남들보다 많이 밟아볼 수 있는 짧고 굵은 다리는 여전하다. 3개월 동안 가장 많이 들은 단어는 단언하건대 딱 두 가지. [흠]과 [성장]이다. [흠]에 대해서는 이 글의 5번 단락에서 말할 예정이고, [성장]을 여기서 얘기해보려고 한다.
'우리 회사가 급격한 성장을 어떻게 했을까?'라는 답을, 이미 단물이 다 빠진 희망 용어 [R=VD]에서 찾을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찌 보면 [R=VD]의 새로운 사례, 새로운 단물이 될 수도 있겠다. 계속 성장이라는 말을 하더라. 처음엔 빛 좋은 개살구의 유형인 줄 알았는데, 저 말이 정답인 것 같다. 나 자신이 성장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다. 개인의 성장이 회사의 성장으로 돌아가는 좋은 사례다. 구성원의 성장을 책임지고, 그 성장이 회사의 성장으로 귀결되고 있다.
내가 발전할 수 없는 회사에는 절대 다니기 싫었다. 나는 후배 누군가에게 창성이형이지, 완성형은 절대 아니다. 성장에 좋은 양분을 주고, 완성의 단계를 바라볼 수 있게 해주는 그런 회사가 다니고 싶었다. 딱 지금이다. 조금 과장해서 하루하루 느낀다. 신체적인 성장은 아니지만, 하루하루 짧고 굵은 다리로 밟아가고 있는 길이 완성에 가까워지는 길이라는 것을!
3개월 동안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사람을 만나는 것을 원체 좋아해서, 사람과 사람이 일하는 이 일이 좋은 것도 있다. 좋아하는 브랜드의 대표를 만나 설렘을 느끼고, 관심 있던 제품의 탄생 스토리를 생생하게 듣고, 때론 '내가 이런 사람이랑 대화를 섞다니.'라고 생각이 드는 디자이너, 작가들도 만났다. 세상엔 내가 생각한 것보다 더 많은 유형의 사람들이 있다는 것도 다시금 깨달았다.
근데 이렇게 다양한 유형들의 사람들이라도, 프로젝트가 기획단에 접어들 때마다 느끼는 것은 하나다.
'제발 잘됐으면 좋겠다.' 나와 일하는 이 프로젝트가 잘되어서, 당신이 돈을 많이 벌었으면 좋겠다는 것. 아마 이 생각은 나의 동료들 대부분이 느낄 것이다.
같은 시기에 진행한 두 프로젝트가 성공적으로 시작되고 받은 메일과 카톡이다. 이때 내 온몸의 도파민 세로토닌이 분비됐다. 변비로 고생하던 훈련소 화장실(나만 그런 거 아니겠지?), 갈색의 그놈과의 조우에서 느낀 카타르시스를 또 느꼈다.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이때 나는 미친 듯이 행복했다. 짧은 두 인사말이, 앞으로 있을 나의 행복의 기준을 조금 더 견고하게 만들어줄 것이다.
'우리 아들이 직장에서 잘하고 있을까?'라는 기대와 걱정은 언제쯤 낯설어질까. 기대와 걱정의 이유를 알지만, 그 걱정과 기대가 혹시나 작은 스트레스라도 되어 부모님의 걱정을 헤칠까 조심스럽다. 가끔 혹은 매일, 엄마와 아빠 앞에서는 우과장님이 된다. 직급은 프로지만 과장을 섞은 삶의 만족을 내비쳐서 우과장이다.
내 과장의 한 자 한 자는 그들이 받아 자랑 섞인 호흡들로 내뱉는다. 말들과 함께 나는 내가 사랑하는 그대들의 자랑이 된다. 자랑이 되면 나는 또 눈물 나게 행복하다.
엄마는 아마 '기특하고 이쁘고, 언제 이렇게 컸나 싶지'라고 얘기하고 싶었나 보다.
아빠가 나에게 보낸 문자들을 엮어봤다. 혹시나 너무 멀리 가버릴지도 모르는 한 마디 한 마디가 사랑스럽다. 자취방 창문을 잘 닫고 다니는 것부터, 자취방 월세 내기가 빠듯하지는 않은지, 샌드위치를 너무 많이 먹는 것은 아닌지, 밥을 또 너무 짜게 먹는 것은 아닌지. 스마트폰을 만지기엔 어색한 손가락으로 마음을 전한다. 마음을 울리면서도 나의 행복을 올리는 가장 기억에 남는 한마디는 다음과 같다. '처음이라서 그려, 아빠도 처음엔 어려웠어.'
효도는 나중에 있을 후회를 줄여나가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나중에 후회하기 싫다. 일의 행복이라는 귀중한 스타트를 끊은 지금, 다행이다. 내가 행복한 '일'을 하는 것이 그대들이 행복한 일이라니 다행이다. 정말!
회사라는 숲과 나무라는 동료들의 조합이 유토피아도 아니고, 디스토피아도 아니라 다행이다. 유토피아였으면 나를 생각할 시간 조차 없었을 것이고, 디스토피아면 관계에 지쳐 나가떨어졌을 것이다.
이 글의 2번에서 3개월간 많이 들은 단어 중 하나로 [흠]을 말했다. [흠]은 3개월간 나를 열심히 가르쳐준 PD님이 자주 한말이다. '흠..'이라는 소리가 들리면 자동적으로 중추신경계가 굳는다. 가끔씩 그 외마디가 무섭기도 했는데, 어찌 보면 행복한 꾸지람의 일종이었던 것으로 정리가 가능하다. 다른 사회 속에서는 누군가에게 고맙다는 소리를 주로 들었었는데, 이곳에선 내가 진심으로 고맙다고 하고 있었다. 고마운 사람들이 많은 곳, 고마운 조직임에 틀림없다.
나를 걱정하지만 360번 정도 돌려 말하는 유형(아버지라고도 하더라), 핑크색을 닮은 열정과 마음을 가진 유형, 고맙다는 말을 잘해 존경스러운(아직 전역을 안 하신 것 같다) 유형까지. 정말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이 모였다. 이렇게 다양한 유형의 사람들은 한마디로 정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다. 기존에 있는 말을 빌려 쓰지만, 그 말이 가장 정답인 것 같다.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
내가 이 '좋아하는 일을 하는 사람들'의 한 명이 될 수 있어 행복하다.
오줌도 아니다. 의구심을 흘리지 않을 거다. '믿지 못하고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커왔다. 두려워하는 마음 때문에 브레이크가 걸리긴 하지만, 결국 브레이크 조차 두려워하는 마음으로 이겨왔다고 생각한다. 직무의 특성상 의구심을 흘리지 않는다는 것도 있지만, 내가 일을 함에 있어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계속 던질 예정이다.
그리고 나와 함께하는 모든 동료들과 파트너에게도 마찬가지다. '나와 일해서 행복한가?'라는 질문을 던졌을 때, '당연히'라는 말을 들을 수 있을 때까지 노력할 것이다.
글을 쓰는 마무리하는 중간에 100일이 되었다고 알림이 왔다. 기념일 어플을 다운받고, 잊은 상태에서 흐르고 있었는데 100일이 되었단다. 앞으로 위와 같은 기념일을 200일, 300일, 1000일까지 맞이할지는 아무도 모른다. 다만 '좋아하는 일'이라는 것에 취해, 잊고 흐르고 싶을 뿐이다.
모두에게 마음을 담아 감사하다.
thx to : reward div. / smoking mate / 운영팀♡ (차프로님 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