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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우창성 Apr 01. 2019

벚꽃은 원래 냄새가 안 나요.

벚꽃 향기와 뷰티 크라우드펀딩, 그 섹시한 상관관계

 아- 향기로운 주말 아침이다. 밀린 빨래를 하려고 섬유유연제를 찾는다. 다우니 벚꽃향 섬유유연제가 다 떨어진 것을 확인하고, 헤비츠 쇼룸에서 구매한 파란 가방(feat. 장바구니)을 챙겨 벚꽃 냄새가 폴폴 나는 섬유유연제를 찾으러 다이소로 향하고 있다. 왜냐면 3월과 4월의 중간이니까. 왠지 벚꽃 냄새가 나면 좋을 것 같아서.

 곧 하나둘 피어날 벚꽃 나무들 사이를 열심히 지난다. 나의 직장생활에 봄날이 끊이지 않길 바라면서, 핑크빛 체리 블라-쌈을 꿈꾸며, 도로에 벚꽃 향기가 가득 차길 바라면서, 그렇게 지난다.


 건대입구역 다이소에 들어왔다. 아직 벚꽃이 만개하지도 않았는데, 입구 오른편에 핑크색으로 '다이소 벚꽃 에디션'이 만개했다. 역시 봄은 봄이구나 하며 바라본다. 이따금씩 콩순이 프로님도 생각난다. 분홍색을 참 좋아하는데, 다이소 오면 좋아하겠다.


 만개한 다이소 벚꽃 에디션 자리 언저리에서 한참을 서있는다. 들어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벚꽃축제라도 온 것처럼 열심히 핑크빛 판대를 바라본다. 나는 벚꽃향 디퓨저를 바라본다. 벚꽃 조화가 꽂혀있는 모습이 봄을 실감하게 한다. 하나 사볼까 하다가, 모던함과 빈티지함을 동시에 유지하는 우리 집과는 어울리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에 내려놓는다.

 '벚꽃향 캔들도 있구나.' 곧 가깝게 다가올 벚꽃 향기를 캔들로 맡는다. 역시 다우니 벚꽃향 섬유유연제와 동일한 냄새라고 생각하면서.

1년 전, 시드니에서 바라본 벚꽃향 건물

 '뭐야. 다르네.'라고 내뱉는다. 

 벚꽃향 캔들이라는 고작 [상품명]이 머릿속을 에돌며 '벚꽃향이라고 생각해!'라고 얘기한다. 나는 벚꽃향 캔들과 벚꽃향 다우니의 향기가 지극히 다름을 확인하고 '벚꽃향'에 대해 드디어 의문을 품는다.


"나 왜 울어.."

아 그렇구나. 나 생각해보니.. 벚꽃 냄새를 맡아본 적이 없다.


벚꽃은 원래 냄새가 안 난다.
(나더라도 벚꽃 냄새를 장미향처럼 명확히 떠올리는 사람은 드물 것이다.)


 우리는 매년 3월과 4월의 중간에서, 상품기획자들이 [딱딱한 구글 닥스]와 [스프레드 시트 속 함수]로 열심히 준비한 핑크빛 프로모션에 부드럽게 녹아버린다.

우리는 그렇게 벚꽃향에 녹는다. 녹으며 생각해보니, 나도 벚꽃향 프로모션 비슷하게 무엇을 팔고 있었다.


 엉덩이를 긁으며 일어나 어울리지 않는 브런치(breakfast + lunch)를 찾던 나, 그리고 벚꽃향 섬유유연제를 찾던 나. 전날 과음한 탓인지 여기저기 굴러다니던 내 생각 회로는 나를 브런치(brunch write)까지 끌고 왔다. 벚꽃향, 벚꽃향 마케팅은 뷰티 카테고리 크라우드펀딩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1. "온라인으로 뷰티 제품을 덥석 구매하기에는.. 좀 그렇죠."

 현관문 코앞에 있는, 아니 그냥 코에 있는 H&B스토어. 다양성과 편리함,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화장품 주 구입 장소의 60%를 차지하고 있다. 최근 조사에 따르면, H&B스토어 이용이 증가한 소비자는 40%대에 가깝다.

 온라인으로 뷰티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도 많으나, 단호히 얘기하자면 '나 같아도 가서 써보고 사겠다.'

이렇듯 어쩔 수 없어 보이는 뷰티 시장이다. 오프라인으로 소비자들에게 바로 다가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크라우드펀딩과 벚꽃향 마케팅의 섹시한 상관관계를 떠올리자.


2. 벚꽃향과 크라우드펀딩 (sub 무취인데 향이 너무 좋다 이거)

 자칭 타칭 '핫한' 크라우드펀딩 플랫폼 와디즈. 2-3월에 정확히 27개의 뷰티 기업과 미팅을 했다. 크고 작은 뷰티 기업들을 만나며 자주 듣는 이야기가 있다.

 '다른 곳에서는 반응이 있을 것 같은 화장품이라고 생각하진 않는데, 와디즈에서는 반응이 오네요.'

 많은 뷰티 기업들이 꿈꾸는 '와디즈의 반응'은 어떻게 만들었나요?라는 질문에 아래의 예시와 featuring 벚꽃 마케팅이라고 말하고 싶다.


(1) 매쉬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31312)

 퍼퓸 브랜드 '매쉬'는 두 번의 펀딩으로 5,000만 원이 넘는 금액을 모금받았다. 섬유 향수를 온라인에서, 어떻게 5,000만 원이라는 펀딩 금액을 달성할 수 있었을까. (샤넬 넘버 5나 르라보 샹떼처럼 아이덴티티가 강하여 바로 떠오르는 향도 아닐 텐데.)

매쉬의 와디즈 크라우드펀딩 스토리 중 발췌 (thx to. 디렉팅의 신.. 수현프로님)

 링크를 타고 들어가 읽어보면 알겠지만, '상상하게 했다.'라는 말이 정답이다. 웹툰 형식으로 향수에 대한 스토리를 제작하여 향기를 상상하도록 유도했다. 이 프로젝트의 스토리는 재미와 센스 있는(혹은 섹시한) 설명으로 많은 유저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말 그대로 벚꽃 마케팅이다. 음주운전을 했지만 술은 마시지 않은 그런 상황이다. 향을 맡을 순 없는데, 향이 그려진다. 


(2) 코스메쉐프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31069)

 코스메쉐프는 브랜드 네임 그대로 요리하여 나온 화장품이라는 뜻이다. 아직 인지도 없는 화장품 브랜드가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에서 3,200만 원의 펀딩금액을 달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 역시나 벚꽃 마케팅과 연관된다. '맡아보지 않았어도, 맡아본 것처럼 / 써보지 않았어도, 써본 것처럼'

 이 화장품 브랜드의 스토리에는 직접 대표님이 출연했다. 왜 이 화장품을 만들게 되었는지에 대해, 누구나 할만한 고민들을 엮어 자신의 피부 문제 해결 스토리로 이어갔다. 스토리를 천천히 읽다 보면, 왠지 이 화장품은 사야 할 것 같다.

코스메쉐프의 크라우드펀딩 스토리 중 발췌

  위와 같은 후기를 통해, 스토리를 읽어가며 '써보지 않았어도, 써본 것 같은 느낌'을 심었다. 실제적이고 자연스러운 후기는 아직 써보지 않은 사람들에게 훌륭한 참고자료가 된다. 


(3) 셀룸 (https://www.wadiz.kr/web/campaign/detail/32019)

 셀룸은 피부과 화장품이다. 피부과 화장품이라는 이름만 들어도 정말 좋을 것 같다. 하지만 광고심의 규정상, 피부과라는 말은 화장품 광고에 들어갈 수 없다. 가장 강력한 USP(Unique Selling Point)를 데리고 가지 못하는 상황, 셀룸은 2,700만 원 정도의 펀딩금액을 달성하고 있다. 어떻게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었을까?

 

셀룸의 크라우드펀딩 스토리 중 발췌

 긴 스토리를 읽으면서, 마치 내가 사용하는 듯한 착각을 주도록 유도했다. 역시나 '써보지 않았어도, 써본 것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 노력했다.

 GIF형태(흔히 말해 움짤)로 제작되어있는 스토리는 보고 있는 사람들을 말 그대로 현혹시킨다.


 어렵지 않다. 입장만 바꾸면 된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가 귀가 닳도록 말씀하셨던 "상대방 입장에서 생각해라."가 정답이다. (역시 엄마 말이 정답이다.)

 입장을 바꿔, 소비자(서포터)가 궁금해할 만한 모든 내용들을 담으면 된다. 누군가가 그랬다. 뷰티 제품은 다른 제품들보다 훨씬 친절해야 한다고. 친절하게 알려줘야, 그래야 관심이라도 갖는다.

 

 입장을 바꿔 설명하고, 그 설명이 마치 써본 듯한 착각으로 흘러가게끔 유도하자. 앞으로 셀룸의 USP는 '피부과 화장품'이 아니다. 온라인 페이지에서 사진과 움짤로만 보고 있어도, 사용한 듯한 착각을 하게 하는 '마법'이 셀룸의 새로운 USP다.






 나는 PD라고 불리는, 소싱을 기쁜 숙명처럼 여기는 사람이다. 청춘을 저당 잡힌 사람처럼 슬프게 살아가는 것이 싫어 이곳(와디즈)에서 일하고 있다. 직무의 특성상 새로운 시작이나 첫 도전에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을 많이 만난다. 앞으론 어려움을 겪는 기업들에게 주위를 단순하게 바라보지 말라고 얘기할 것이다. 벚꽃향 섬유유연제가 필요해 다이소에 방문했다가 이렇게 브런치를 작성하고 있는 나처럼 주위를 둘러보라고 말을 건네고 싶다. (물론 내가 주위 것들에 통달한 것은 결코 절대 절대 진짜 아니다.)


 역시나 글의 마지막은 '문제 될 시 자삭할게.'라고 얘기하고 싶지만, 무게감이 꽤 있어 아래의 말로 마무리하려고 한다.

 정답은 없다. 하지만 레퍼런스는 늘 있다. 늘 생긴다. 당신도, 당신의 기업도 그 레퍼런스의 주인공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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