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부터 계획한 건 아니었다.
우리 아이가 자유로운 영혼이기는 하나 이제 어엿한 다섯 살. 외출할 때 신발을 신어야 한다는 것쯤은 이미 잘 알고 지키는 아이였다. 답답한 운동화보다 편한 슬리퍼를 더 좋아하긴 했지만 딱히 밖에서 신발을 벗고 싶어 한 적은 없었다.
발단은 유치원 실내화였다.
맨발로 생활하던 가정 어린이집을 졸업하고 유치원에 입학하게 되었다. 유치원은 실내화를 신고 생활해야 하기에 당근 마켓에서 적당히 깨끗하고 아이 발에 잘 맞는 사이즈의 실내화로 구해 준비했다.
아이는 처음 만나는 선생님, 친구들과 금세 친해졌고 낯선 공간에서도 빠르게 적응했다. 입학 첫날 점심시간에 선생님께 밥을 다섯 번이나 더 달라고 했다는 이야기에 ‘역시 내 아들 못 말리는군’이라고 생각하며 그의 빠른 적응력에 감탄했다.
그런데 복병이 있었으니 그건 바로 실내화였다. 너무 딱 맞는 실내화 때문이었을까 아니면, 실내화 생활이 익숙지 않아서였을까.
하원하러 데리러 가니 유치원에서 나오자마자 신발과 양말을 벗고 맨발로 모레 놀이터에 들어가는 게 아닌가. 하루 종일 답답했다며 너무도 자유로워하는 모습에 말릴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모습도 좋다고 생각했다. 어릴 때 아니면 언제 이렇게 놀아보겠는가.
그날부터였다. 다음 날도, 그다음 날도 맨발 행진은 계속되었다. 처음엔 놀이터였는데 점점 활동 반경을 확장해 맨발로 길거리를 활보하기 시작했다.
선생님은 실내화가 너무 딱 맞고 통풍이 안돼서 그런 것 같다고 하셨다. 답답하면 실내화를 벗어도 된다고 했지만 벗지 않고 애쓰는 모습이었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제 맘대로만 하는 아기인 줄 알았는데 나름 단체 생활 규칙을 따르려고 노력하고 있었구나.
구멍이 숭숭 뚫린 한 치수 큰 실내화를 새로 마련했다. 아이가 훨씬 안 답답하고 좋다고 해서 안도했다. 하지만 맨발은 계속되었다.
시도 때도 없이 신발을 벗어던졌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웃으며 쳐다보기도 했다. 아마 어른이었다면 인상을 찌푸리거나 이상하게 바라보는 시선이었겠지만 다섯 살은 아직 엉뚱함이 허용되는 나이다.
그렇다고 맨발의 자연인이 되게 할 수는 없었다. 길거리에는 어른들이 버린 담배꽁초, 뱉어놓은 침 같은 더러운 것들이 가득했고 유리 조각이라도 밟으면 다칠 수 있기 때문이다. 안전에도, 위생에도 좋지 않은 걸 계속 유지할 수는 없었다.
아이의 욕구를 막지 않으면서도 지켜야 할 규칙을 알려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놀이터에서만 벗는 거야. 놀이터를 벗어나면 신발을 신어야 해.”
나름의 가이드라인을 주니 아이는 금세 적응하고 받아들였다. 놀이터만 가면 발을 동동 거리며 신발 벗을 준비를 하며 묻는다.
“엄마 신발 벗어도 돼요?"
“그럼! 여기 놀이터잖아.”
이상하다며 말을 걸어오는 건 어른들이 아니라 또래였다. 주로 아이보다 한두 살 많은 누나, 형들이었다. 어디서든 신발을 잘 신고 다녀야 한다고 철저하게 교육을 받았기에 맨발로 다니는 우리 아이가 이상하게 느껴졌던 것 같다. 맨발로 다니니까 냄새난다며 놀리는 7살 형도 있었다.
“신발이 너무 답답하다고 해서 놀이터에서만 벗기로 했어.”
모두가 그래야 할 필요는 없지만 타인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선에서 사람마다 지켜야 할 규칙이 다른 법. 우리만의 규칙을 또래 친구들에게 알려주었더니 아이들은 금세 수긍했다.
역으로 ‘맨발의 효과’를 찾아보니 꽤나 좋은 점들이 많았다. 맨발은 스트레스 해소에 좋고, 전두엽을 활성화해 좌뇌와 우뇌를 고르게 발달시킨다고 한다. 몸에 자극을 주어 쌓여있는 활성 산소도 배출 시킨다니 이건 어른에게도 필요한 거네.
나의 선택이 아닌 아이의 의지로 신발을 벗었다. 그리고 합의점을 찾았다. 아이를 맨발로 키우는 이유가 특별한 게 아니다. 아이가 원해서 크다.
참고로 아이는 생후 24개월에 등에만 있던 약한 아토피를 졸업했다. 그 다음 해엔 엉덩이를 가려워했고 지금은 발만 남았다. 비가 와서 장화 속 발이 축축하거나 너무 더우면 발등이나 발바닥을 긁어달라고 한다. 아이의 발에만 남아있는 가려움이 어서 활성 산소와 함께 빠져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실컷 소원 풀이해서인지 요즘은 놀이터에서 신발을 잘 신고 있을 때도 많다. 그래도 아이가 원할 땐 허용해 줄 생각이다. 특히 황톳길이나 흙길이라면 언제든 오케이. 차가운 아스팔트를 더 익숙하게 느끼며 도심에서 자라나는 아이에게 잠깐이라도 흙을 밟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다면 주저 않고 신발을 벗으라고 말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