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회용도 다회용도 아닌 그 중간쯤 어딘가에
카페에서 음료를 마시고 갈 경우 보통은 유리컵 혹은 머그컵과 같은 다회용 잔에 담아준다. 스타벅스를 비롯한 유명 프랜차이즈와 일부 개인 카페들은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규칙을 비교적 잘 지키는 편이고 손님이 테이크아웃을 원할 경우에만 일회용 컵에 담아 제공한다. 빨대 사용은 자율에 맡긴다.
언뜻 보면 환경을 위한 실천이 잘 이루어지는 것 같기도 하지만 실상은 아니다. 엄청난 양의 일회용 컵이 버려지고 있다. 테이크아웃이 너무 일반화되었기 때문이다. 테이크아웃만 전문으로 하는 저가 프랜차이즈가 점점 많아지고 있고 매장 내에서 버젓이 일회용 컵을 쓰는 사각지대도 너무나 많이 존재한다. 지난해 카페와 패스트푸드점에서 쓴 일회용 컵만 9억 4천만 개에 이른다고 한다.
매장 내에서 일회용 컵을 쓰지 않아서 잘했다고 하기에는 만들어내는 쓰레기의 양이 너무 어마어마하다. 텀블러를 가져와서 담아 가는 실천자는 적고 테이크아웃 손님은 많으니 카페에서는 일회용 컵을 비치해두고 필요할 때마다 사용하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환경을 생각한다고 말하는 카페들은 어떤 선택들을 하고 있을까. 내 경험상 두 가지로 나뉘는데 첫 번째는 일회용 컵을 제공하지 않는 카페다. 손에 꼽는다. 서촌 '얼스어스', 제주 '앤드유카페', 인천 '컵둥지'. 더 이상 생각이 나지 않는다. 비건 카페, 제로웨이스트 공간 찾아다니는 내게도 이런 곳에 대한 경험은 아주 적다.
극소수의 공간들이 살아남는 법은 제로웨이스트를 전면에 내세우며 건강과 맛으로 승부하는 것이다. 또한 용기를 낼 경우 할인을 해주며 제로웨이스트를 카 페만의 시그니처로 가져가는 것이다. 하지만, 정말 용기가 필요한 일임은 분명하다. 일회용품 없이 음식을 담는 단 한 번의 용기내 챌린지에도 용기가 필요한데 손님이 와야 장사가 되는 생업에 그 용기를 내건다는 건 정말 보통 용기로는 할 수 없는 일이다.
대체로 선택하는 건 환경에 덜 유해한 일회용기를 사용하는 것이다. 친환경 일회용품이라는 말 자체가 모순이긴 하지만 일회용품 사용이 너무 만연화되며 대안으로 생겨났다. 펄프 등 종이 소재의 용기나 생분해되는 PLA 컵이 이에 해당한다.
PLA는 옥수수나 사탕수수처럼 식물성 소재를 사용하여 만들어낸 플라스틱이다. 일정 조건 아래에서 분해가 빨라 '생분해성' 혹은 '친환경'이라는 꼬리표를 얻게 되었다.
환경을 생각한다고 말하는 카페들 중 일부는 이 PLA 일회용 컵을 사용한다. 일회용품을 사용하면서도 환경에 미치는 영향에 대한 죄책감을 덜어내는 방법이다.
하지만 PLA 일회용 컵을 친환경이라고 정의할 수 있을까. 아직은 이르다. 두 가지 문제점이 있는데 첫 번째는 앞서 말했듯 일회용품 사용에 대한 죄책감을 상쇄시켜 오히려 남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점이다. 버려져도 자연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기 때문인데 실상은 그렇지 않다.
PLA는 일정 온도 (60도)와 환경이 갖춰져있을 때 분해가 일어나는데 일반 매립지의 온도는 그와 다른 상온이며 제대로 분해가 되지 않을 경우 오히려 미세 플라스틱이 배출된다. 가장 중요한 건 이제 더 이상 매립할 곳이 없다는 것이다. 대부분 소각으로 가는 추세인데 잘 썩는 PLA가 도대체 무슨 소용이란 말인가.
혼란 속에 피어난 ‘리유저블(reusable)'
매장 내 일회용품 사용 규제와 친환경 PLA의 혼란 속에 피어난 새로운 용어가 있다. 다시 쓸 수 있다는 의미의 ‘리유저블(reusable)’이다. 한 번 사용하고 버리는 것이 아닌 여러 번 재사용한다는 뜻에서 친환경적이라는 이미지를 담고 있다.
언젠가부터 일부 카페에서 일회용 컵 대신 리유저블 컵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그런데 환경을 생각한다는 메시지와 함께 사용된 이 리유저블 컵은 어딘가 좀 이상했다. 말만 재사용이지 누가 어떻게 재사용한다는 것인지 그 주체와 의미가 불분명했다.
예를 들어 손님이 아이스 아메리카노 한 잔을 테이크아웃으로 주문하면 리유저블 컵에 담아 제공하는 식인데 일반 일회용 컵 보다 크고 튼튼하고 반투명한 색을 띠고 있다. 이 리유저블 컵은 사용 후 다시 카페에 반납하는 것이 아니라 손님에게 제공되는 서비스다. 커피를 사면 계속 쓸 수 있는 컵 하나를 제공받는 셈이다.
처음 리유저블 컵을 알게 되었을 때 몇 가지 의문이 생겼다. 일회용 컵으로 제공되기에는 단가가 비싸지 않나. 일회용 컵 보다 더 많은 플라스틱이 사용되었다면 오히려 환경에 안 좋은 게 아닐까. 하지만 저걸 가지고 다니며 여러 번 재사용한다면 환경적으로 의미 있는 게 아닐까.
친구네 집에 방문했을 때 친구 남편이 대접한다고 집 주변 카페에서 커피를 사다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리유저블 컵에 담긴 커피를 받은 적이 있다. 평소 일회용 컵은 물론 리유저블컵 조차 사용하지 않는 편이라 적잖이 당황했던 적이 있다. 그러다 그 리유저블컵을 집에 챙겨와 재활용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볍고 음료가 많이 들어가 몇 번을 커피 마실 때 사용하기도 했다.
그런데 얼마 안 가 컵에 금이 갔다. 일회용 컵보다는 내구성이 좋지만 일반 다회용 컵이라고 하기에는 한없이 약하고 부실했다. 차라리 매장에서 회수해서 다시 쓴다면 모를까 집에 이미 텀블러가 넘쳐나게 많은 사람들이 대부분일 텐데 이 리유저블이 환경적으로 어떤 가치와 의미가 있을까. 단순히 카페에서 마음 놓고 일회용품을 쓸 수 있는 명분만 주게 되는 건 아닐까.
리유저블 컵을 여러 번 사용하는 사람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그게 현실이다.
얼마 전 좋아하는 비건 베이커리 카페에 방문해 커피를 주문하며 "다회용 컵에 주세요."라고 말한 적이 있다. 카페에 일회용 컵이 비치되어 있을 경우 불안해서 매번 그렇게 한 번씩 더 확답을 받기 위한 습관이다. 유리잔이 소진되면 일회용 컵을 쓰는 곳도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말이 크나큰 주문 실수가 되었다. 다른 손님들은 유리잔 혹은 머그컵에 음료를 마시고 있었는데 나만 플라스틱 리유저블컵에 받은 것이다. 가방에 텀블러도 있었고 마시고 갈 거였고 다회용 컵에 달라고 요청도 했었기에 이 상황을 이해할 수가 없었다. 너무 당황해서 표정 관리도 되지 않았다.
어떻게 된 건지 카운터에 물었더니 매장에서 사용하는 테이크아웃 전용 리유저블 컵을 매장에서 직원들끼리 '다회용컵'으로 부르고 있어서 당연히 리유저블 컵에 제공해달라는 의미인 줄 알았다는 답이 돌아왔다. 머리가 멍해졌다. 여러 번 재사용한다는 의미의 '리유저블'을 한 번도 다회용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던 나의 오류일까.
너무 맛이 좋은 카페라서 속상했고 리유저블을 친환경이라고 생각한다는 것에 대한 배신감이 들었다.
리유저블을 과연 누가 재사용할까. 몇 번이나 재사용할까. 불필요한 컵이 하나 더 생기는 것에 대해 여러 번 쓸 수 있다는 것만으로 친환경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을까. 일반 텀블러도 최소 1000번은 써야 일회용 컵을 쓰는 것보다 환경적으로 의미가 있다고 하는데 리유저블 컵은 몇 번이나 사용해야 의미가 있을까.
매장에선 그 컵을 재사용하겠다고 했지만 뚜껑이 개봉되면 다시 원래대로 돌이킬 수 없는 형태라 그냥 집에 가지고 왔다. 집에서 어떻게든 재사용해 보려고 노력할 테지만 그러다 또 언젠간 버려지겠지.
일회용도, 다회용도 아닌 그 중간 어딘가쯤에 애매하게 발을 걸치고 마음만 편하게 만들어주는 리유저블은 내게 오히려 더 불편한 기억만 안겨주었다. 500년간 썩지 않는 플라스틱을 백 번도 쓸 수 없다면 리유저블이라는 말은 어울리지 않는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