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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업의 전환

지난 2년간의 시간들에 대한 소회

by 흔적




어떻게 말해야 할까.

시원하고 또 섭섭하다. 지난 2년간 이 문을 들락날락하며 숱한 감정들을 느꼈다. 때로는 과감하게 도전해 성취의 기쁨을 맛보았고 때로는 한숨을 푹푹 쉬며 끝없는 고민을 이어가기도 했다. 발랄하게 걸어 들어가기도, 어깨가 축 처져 나오기도 했다.

어쨌든 확실한 건 할 수 있는 선에서 할 수 있는 모든 것들을 해봤다는 것이다. 해본 건 해봐서 후회가 없다. 못한 건 못한 것 대로 나름의 이유와 사정이 있었으므로 그것 역시 있는 그대로 나의 경험치고 배움이 되었다.

정말이지 제로웨이스트샵 만큼은 할 생각이 없었는데, 계획에도 없던 사업에 그것도 동업을 하고, 강의도 하고 섭외도 하고 체험 행사도 하고 책까지 냈다. 내 인생 통틀어 이렇게까지 도전적이고 변화무쌍한 때가 있었던가.





마지막으로 세제를 리필하기 위해 2리터짜리 용기 3개를 챙겨 왔던 단골손님의 “이제 전 어디 가서 리필하나요.”라는 말이 마음에 콕 남았다. 어떻게든 잘 운영하기 위해 기회가 닿는 대로 외부 활동을 활발히 했지만, 역시나 이 공간의 존재 이유와 역할은 제로웨이스트를 실천할 수 있는 구심점이 되는 것이었다. 그것이 본질임을 마지막 리필 손님이 다시 한번 일깨워 주었다.




자주 오던 어린이집에서 자원순환을 위해 방문했던 날 선생님께 내 책을 드렸다. 책에 어린이집 친구들과 함께 했던 추억들을 기록했기 때문에 드리고 싶었다. 읽어보시면서 지난 시간들을 떠올렸으면 좋겠다. 귀여운 꼬마 손님들 덕분에 이 공간의 이야기가 더 풍성해졌다. 환경의 날에 버려진 상자로 만든 북극곰에 고사리 같은 손으로 병뚜껑을 붙여주던 모습을 잊지 못할 것 같다.





숨 가쁘게 달려온 시간들이었다. 내 사업을 한다고 하면 내 마음대로 할 수 있을 것 같지만 현실은 반대였다. 나도 그럴 줄 알았다. 날개 단 듯 내가 해보고 싶은 걸 다 시도하는 실험의 장이 될 줄 알았다. 분명 그런 부분도 존재했지만, 안정적인 운영을 위해서는 기회가 닿는 것을 놓치지 않는 것이 더 중요했다. 내가 그려놓은 그림대로 상황을 이끌어가는 것이 아니라, 일단 기회를 잡고 주어진 상황 안에서 그림을 그리는 식이었다.

완벽하게 내 마음에 드는 상황을 기다리는 것보다는 주어진 기회 안에서 조금씩 업그레이드하며 진화해 나갔다. ‘친환경’이라는 카테고리는 아주 좁아 보이지만, 의외로 정해진 게 없기 때문에 콘텐츠도 만들기 나름이며 확장의 가능성도 무궁무진하다. 수많은 객관식과 주관식의 세상에서 나만의 논술 답안지를 작성하는 느낌이랄까. 망망대해에서 자유로움과 막막함을 모두 경험했다.




계약 종료 시점이 다가오며 고민이 깊어졌다. 그리고 냉정하게 판단해 보았다. 오프라인 상점, 온라인 스마트 스토어, 병뚜껑 키링 제작, 헌 옷으로 만드는 업사이클링 현수막, 환경 강의 등 많은 활동들을 해왔다. 하나만 하지 않고 여러 가지 활동을 다방면으로 했던 이유는 안정적인 수익을 위해서였고 동업자와 나의 특기가 달라서이기도 했다. 둘이서 일당백씩을 하며 몇 배의 퍼포먼스를 내려고 노력하다 보니 분야와 카테고리가 많아졌다.

장단점이 있었다. 많은 일들을 하다 보니 기회가 다양하게 찾아왔고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이 적어도 다른 일에서 메꿀 수 있었다. 하지만 그만큼 각각의 일들에 전문성을 더하고 그 안에서 확장하는 속도는 더뎠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정체성을 견고하게 해야 할 필요성을 느꼈다.





지난 시간에 대한 후회가 아니다. 모든 경험은 과정을 통해 얻는 것이지 완벽함이 아니다. 협동도 갈등도 모두 필요한 수순이었다. 여러 상황에 놓이게 되며 내가 원하는 것, 할 수 있는 것, 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스스로 깨닫게 되었다. 시간이 흐를수록 내 안에서 분명해졌다. 내가 가야 할 방향이 어디인지. 내가 추구하는 것이 어떤 모습인지. 조급하지 않게 내가 목표로 한 세계관을 구현하기 위해 묵묵히 한발 한발 내딛고 싶어졌다.




어찌 보면 진정한 홀로서기는 이제부터가 아닌가 싶다. 두렵고 막막한 마음도 들지만, 한 번은 넘어야 할 산이고 이제 올라야 할 때가 되었음을 직감한다. 최근 몇 달간은 친구에게도 고민을 털어놓지 않았다. 남편과 의논하는 시간도 줄었다. 온전히 나 혼자만의 결정이 필요한 시기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누군가의 조언이 필요한 게 아니라, 내가 나 자신과 잘 의논해서 오롯이 나만을 위한 결정을 해야 한다. 이건 내 삶이니까. 나의 일이니까.

세컨드 잡도 사이드 프로젝트도 아닌 직업으로서 친환경의 세계에 완전히 발을 담근 첫 2년이 지나갔다. 이제 나는 더 깊이 들어가려 한다. 중심을 옮기고 나의 정체성을 뾰족하게 다듬을 시간이다. 그게 뭔지 정답은 모르지만, 그래도 나는 거기로 가야겠다. 그리고 해내고 싶다. 돈이 안 되는 이 일로 결국은 돈을 벌어내고 싶다.




함께 했던 도드리님과는 조금 더 느슨한 협업 관계를 이어가기로 했다. 각자의 길을 가면서 함께 할 일 있을 때는 함께 할 것이다. 병뚜껑 관련 수업이나 현수막 제작에 관련한 협업이 주요할 것 같고 12월에 예정된 행사도 함께 진행하기로 했다.




마지막 영업일을 보냈고 정산할 것들을 정산하고 나니 이제 조금씩 실감이 난다. 마지막 불을 끄고 문을 닫는 것처럼 바빴던 마음들을 차분히 정돈해야 가벼운 마음으로 다음을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소회를 기록하는 것으로 지난 시간들에 대한 문을 닫는다.

책의 마지막 장을 덮는 끝맺음이 아니라 다음 챕터로 넘어가는 전환이다. 지난 2년 동안 수고했다고 나 자신을 토닥이며 칭찬해 주고 싶다. 앞으로의 시간이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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