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야구소녀> 그리고 드라마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낡아빠진 글러브와 윤이 나는 바이올린, 짧게 쳐낸 머리와 길게 웨이브 진 머리, 운동복과 드레스, 열아홉과 스물아홉, 가난과 부유함, 그리고 야구와 클래식.
<야구소녀> 주수인과 <브람스를 좋아하세요?> 채송아는 절대 엮이지 않을 것처럼 분리된 세상에 산다. 그런데도 둘은 참 닮았다.
닮은 모습의 둘
주수인은 고교 야구팀의 유일한 여자다. 어린 시절 ‘천재 야구소녀’로 주목받았으나, 나이가 들수록 남자 선수들에게 뒤처지고 있다. 졸업 후 프로팀에 입단해 계속해서 야구를 하는 것이 꿈이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제대로 된 평가도 기회도 잡지 못한다. 수인은 ‘여자 치고’ 잘하는 선수로 평가 절하된다.
채송아는 명문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후, 삼수 끝에 바이올린 전공으로 대학에 재입학했다. 그러나 어렵게 들어간 음대에서 4년 내내 실기성적 최하위권을 기록한다. 늦게 악기를 배우기 시작한 송아는 유년 시절부터 악기를 다뤄온 동기들과의 실력 차를 쉽게 좁히지 못한다. 졸업을 앞두고 동기들은 모두 유학, 대학원 등 진로가 정해졌는데 송아는 정해진 것이 없다.
수인은 야구공에 피가 얼룩덜룩 묻어나도록 밤새 공을 던지고, 송아는 목에 흉이 사라질 날이 없게 연습한다. 그러나 수인은 제대로 된 선수 취급도 받지 못하고, 송아는 공연 직전, 공연장에서 쫓겨난다. 가족들은 이제 현실을 생각하라며 압박을 준다. 결국 수인은 공장에서, 송아는 문화재단에서 공연 기획 일을 시작하지만, 시간이 날 때마다 야구공과 바이올린을 손에 쥔다.
달라지는 둘
수인과 송아 앞에 새로운 '스승'들이 나타난다. 그리고 이들은 수인과 송아가 갈림길에 서는 시발점이 된다.
수인의 야구팀에 새로 온 코치인 ‘진태’는 수인의 ‘귀인’이다. 처음엔 수인을 무시하지만, 수인의 재능과 열정을 알아보고 수인을 전폭적으로 돕기 시작한다. 진태의 도움으로 수인은 어렵게 트라이아웃 기회를 얻고 그곳에서 좋은 결과를 얻는다.
반면, 송아의 앞에 나타난 이수경 교수는 ‘악연’이다. 이 교수는 송아에게 한 줄기 빛과 같았다. 대학원 추천을 받지 못한 송아가 대학원에 갈 수 있는 유일한 기회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교수는 송아를 이용할 생각뿐이다. 송아를 연주자로 가르칠 생각은 없고, 송아를 사무직 조교로만 활용한다. 송아는 결국 이 교수를 떠난다. 사실상 대학원 진학의 기회가 모두 사라진 상황에서 묵묵히 대학원 입학시험을 준비한다.
둘의 선택
트라이아웃에서 좋은 모습을 보였음에도 수인에게 들어오는 제안은 선수로서 입단이 아닌, 프런트 입사다. 반면, 송아는 기적적으로 대학원 합격 통지를 받는다. 송아에게는 간절히 바랐던 일이고, 수인에게는 나쁘지 않은 제안이다. 그러나 둘 다 이를 거절한다. 수인은 끝까지 ‘선수’로 남길 선택했고, 송아는 ‘연주자’를 포기한다. 결국 수인은 2군으로나마 야구 구장을 밟고, 송아는 연주자로선 넘지 못했던 '예술의 전당'이라는 선을 기획자로서 넘는다.
<야구소녀>에 비해 <브람스를 좋아하세요?>의 결말은 지극히 현실적이다. 송아는 자신의 꿈이었던 ‘연주자’를 위해 노력했으나 결국 꿈을 이루지 못했다. 채송아도 한 때는 주수인처럼 뚝심 있게 꿈을 선택했었다. 주위의 만류에도 계속해서 도전할 용기가 있었고, 결국 대입에 성공했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야구소녀>의 말미에, 수인의 계약을 앞두고 구단장은 수인의 엄마에게 ‘앞으로가 더 힘들어질 것’이라 말한다. 스물아홉 채송아는 열아홉 수인보다 먼저 그 ‘앞으로’를 경험했다. 꿈에 가까워지는 희망을 경험했으나, 점점 꿈과 멀어지는 절망을 겪었다.
수인은 코치에게 새로운 글로브를 선물 받는다. 반면, 채송아는 스스로 바이올린을 떠나보낸다. 꿈을 계속해서 사랑하는 것은 큰 용기다. 그러나 그 꿈을 떠나보내는 것은 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채송아는 모든 힘을 다해 바이올린을 사랑했고, 그랬기에 바이올린을 보낼 수 있었다. <야구소녀>는 판타지스러웠지만 간절히 보고 싶던 마지막을 보여줬다. <브람스를 좋아하세요?>는 현실적이라 마음 아팠지만 그래서 더 위로가 됐다.
꿈과 현실의 간극에 대고 보기 좋게 직구를 날리던 주수인, 지난날의 꿈에 안녕을 고하고 새로운 발걸음을 내딛던 채송아, 그리고 주수인과 채송아 사이에 있을 이들 모두가 행복했으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