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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일공삼 Oct 21. 2022

최종병기 '다정'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 K-장녀의 심금을 울리다.


많은 이들에게 극찬을 받았다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앳 원스. 내용 따위는 하나도 모른 채로 무턱대고 봤는데, 왜 그리들 극찬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영화 속 엄마와 딸에 대한 서사가, K-장녀인 내 마음을 흔들어놓았다.




네 맘 이해한다 조이.


엄마와의 관계가 가장 힘들었던 때 나는 상경을 결정했다. 눈앞에서 멀어지면 엄마를 이해할 수 있을까 기대했는데, 그 생각은 맞기도 틀리기도 했다. 멀리서 엄마를 생각해보니 그제야 이해할 수 있는 부분이 있었으나 멀리 있기 때문에 당장 엄마의 마음이 어떤지 알 수가 없었다. 그때 더 큰 혼란이 시작됐다. 엄마로부터 벗어나고 싶은 마음과, 엄마를 사랑하는 마음이 대치해 괴로웠다. 영화 주인공 에블린(양자경)의 딸 조이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었을 거다. 엄마를 존경하고 사랑하면서도, 이해할 수 없는 엄마의 행동들에 지쳐가지 않았을까.


영화에서 에블린은 조이가 동성애자임을 인정하지 않고, 그녀가 잘못된 길로 들어서고 있다는 듯 조이를 대한다. 또, 조이가 듣고 싶어 하지 않는 말을 어김없이 내뱉으며, 그녀에게 상처를 준다. 에블린도 여느 엄마가 다르지 않듯이 딸에게 그런 식으로 상처를 주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엄마대로, 딸은 딸대로 어쩔 수 없는 상황이 있다. '에-에-올'은 그런 갈등을 어떻게 해결하고, 허무주의로 치닫는-때로는 무의미한, 결과가 정해진 듯 보이는-일상들을 어떻게 살아나갈 것인지에 대해 질문하고 있다.




'만약'이라는 마약


우리들은 '만약'이라는 마약에 본인도 모르는 사이 중독되고 마는 것 같다. '만약 내가 당신과 결혼하지 않았다면', '만약 내 딸이 이런 사람이었다면', '만약 내가 이런 사람이었다면..' '만약'이라는 생각은 당장 내게 주어진 일상을 허무하고, 별 볼일 없는 것으로 느껴지게 한다.

멀티버스라는 개념과 세계관이 다양한 작품에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더 나은 멀티버스에서 내 모습은 어떨까. 내 삶은 어땠을까를 고민하게 됐다. 재미있는 것은 항상 본인이 더 나은 모습일 멀티버스만을 생각하고, 비참한 모습일 멀티버스 따위는 상상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물론 나도 그랬고, 엄마도 그랬다. 만나기만 하면 우리는 '아빠가 그렇게 아프지 않았다면', '아빠가 다른 치료방법을 썼다면', '애초에 아빠와 결혼 자체를 하지 않았다면', '어딘가에는 아빠가 건강하게 살아있는 세계도 있지 않을까'하는 류의 얘기들을 줄줄 늘어놓으며 현실을 부정하고 한탄했다. 그러다 매번 허무라는 결과에 도달했다.'열심히 살아봤자 소용없을 텐데', '이렇게 살아봤자 죽을 텐데'...


에블린은 사람들이 상상만 하는 멀티버스-내가 이런 결정을 했다면 어땠을까의 세계-를 실제로 경험한다. 현실에선 비루하기 짝이 없는 자신이 결혼을 하지 않고, 남편 없이 커리어를 쌓아 셀럽이 된 모습을 경험한 에블린은 남편 없이 얼마나 멋진 삶을 살았을지를 그에게 자랑하지만, 또 다른 멀티버스에서는 손가락이 소시지로 이루어진 기괴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빛나고 달콤하게만 보이는 멀티버스에서 머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에블린에게 세계를 구하라는 임무를 준 알파 남편은 에블린에게 경고한다. 다른 멀티버스를 탐하면, 멀티버스 세계 간에 균열이 일어나 재앙이 일어날 것이라고. 어쩌면 만약에라는 마약에 취해 충분히 빛나는 현실을 부정하는 이들에게 보내는 감독의 일침이 아닐까.



'위트'라는 치트키


'에-에-올' 주인공들은 위기에 처했을 때, 뜬금없는 행동을 함으로써 다른 멀티버스의 본인에게 연결되고, 능력을 부여받는다. 왜 하필 뜬금없는, 가장 우스꽝스러운 행동이 이 세계의 치트 키인 걸까? 예상해 보건대, 위기 상황을 가장 유연하게 헤쳐나갈 수 있게 해주는 건 '위트'임을 전하기 위함 일 것이다.

가장 인상 깊은 장면은, 에블린이 격투 기술을 습득하기 위해 빌런에게 사랑하지 않아도 진심으로 사랑한다고 해야 하는 장면이었는데, 이 우스꽝스러운 장면이 이 영화 전반에 걸쳐져 있는 다정함과 사랑에 대한 메시지를 모두 함축하고 있다.



최종 병기 '다정'


엄마와의 관계가 회복되기 시작한 건, 나의 아주 사소한 심경 변화에서부터였다. 엄마의 존재를 두고 괴로워하던 나는 어느 날 어차피 그녀가 나의 '엄마'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는 것을 인정하고, 받아들이게 됐다. 내 마음을 괴롭게 해도 엄마는 '나의 엄마'였다. 그 누구도 대체할 수 없는 나의 엄마. 잘라낼 수 없는 괴로움이라면 오히려 힘껏 안아버리기로 했다. 전보다 더 자주 전화를 하고 안부를 물었다. 엄마가 얼마나 멋진 사람인지를 계속 얘기했다. 처음엔 어색해하던 엄마도 금방 달라지기 시작했다. 절대 변할 것 같지 않던 엄마가 그렇게 빨리 변할 줄이야. 다정함이 이리도 큰 무기였을 줄이야.


여러 멀티버스에서 능력을 얻어 세계관의 빌런을 처치한 에블린의 최종 무기도 다정함이었다.

다만, 그 다정함은 본인에게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남편에게서 배운 다정함이었다. 웨이먼드의 방식-다정함을 보여주는 것-으로 적들과 싸우겠다는 에블린은 결국 모든 것을 구하고 일상을 되찾는다. 에블린이 다른 멀티버스의 자신으로부터 능력을 구하고, 끝내 남편의 다정함으로 세상을 구하는 것은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을 해낼 수 있게 해주는 것은 결국 함께 살 맞대고 살아가는 사람들의 사랑이고, 그들로부터 받은 다정함이라는 메시지를 준다.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익숙해진 아픈 마음들 자꾸 너와 날 놓아주지 않아

우린 행복할 수 있을까

그러니 우린 손을 잡아야 해 바다에 빠지지 않도록

끊임없이 눈을 맞춰야 해

가끔은 너무 익숙해져 버린 서로를 잃어버리지 않도록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백예린의 '그건 아마 우리의 잘못은 아닐 거야'를 떠올렸다. 그래 우리는 끊임없이 눈을 맞추고, 손을 잡아야 한다. 서로가 허무와 절망의 늪에 빠지지 않도록, 때로는 권태로워진 일상이 얼마나 소중했는지를 다시금 느낄 수 있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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