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귀멸의 칼날을 사랑하는 이유
귀멸의 칼날 '상현집결 그리고 도공마을로' 편이 곧 한국에서 개봉을 앞두고 있다. 아주 안타깝게도 처음 개봉하는 날에 보지는 못하게 되었으나, 앞으로 N차 관람하게 될 것임은 확실해 보인다. (솔직히 지금 마음이 몹시 두근거려, 글씨를 제대로 치려면 키보드를 힘 있게 두드려야 하는 지경이다.)
본론에 들어가기 앞서서 먼저 얘기한다. 나는 애니 덕후가 아니다. 그냥 귀멸의 칼날 덕후일 뿐이다. 애니 덕후라면, 요즘 핫한 애니와 진짜(?)들이 사랑하는 애니 목록을 줄줄 읊어야 하지 않겠는가? 안타깝게도 나는 애니메이션에 그 정도의 열정이 없다. 그러니 나는 아직(?) 애니 덕후가 아닌 셈이다. 이렇게 애니덕후가 아님을 선언하는 내가, 왜 이토록 귀멸의 칼날에는 미쳐있을까. 오늘은 그 이유에 대해서 자세하게 적어보려고 한다.
어느 겨울, 비극에 너무도 무방비했던 내게 갑자기 불운이 닥친후에, 나는 인간혐오와 인생의 허무함에 대해서 필요 이상으로 자주 생각하며 지냈다. 당시 나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 오가는 '인독'과 늙고 병드는 육체의 허무함에 대해 굉장히 골몰했다. 그렇게 매일을 머리 쥐어 싸매고 지내는 내게 어느 친구가 귀멸의 칼날을 추천해 주었다. 그때까지는 알지 못했다. 이 애니메이션 하나가 내게 얼마나 큰 위안을 줄지.
'중꺾마'탄지로
주인공인 탄지로는 어느 날 밤 오니의 습격을 받아 오니가 돼버린 여동생을 제외하고 모든 가족을 잃는다. 어머니와 몇 명의 동생들을 한 번에 잃고, 처참한 광경을 직접 두 눈으로 목격한다. 이후 가족을 잃은 슬픈 마음을 추스리기도 전에, 오니가 되어버린 여동생을 다시 사람으로 돌리기 위해 탄지로는 오니를 죽이는 귀살대가 된다. 그런 상황에 놓인다면, 보통의 경우 세상을 원망할 것이다. '왜 하필 나인가, 왜 하필 우리인가.' 하고 말이다. 탄지로는 세상을 원망하지 않고 본인을 원망한다. '내가 힘이 없어서, 그날 밤 집에 있지 않아서 모두를 지키지 못했다'라고 자책을 한다. 그리고 더욱 강해지기 위해, 모두를 지키기 위해 수련을 한다. 탄지로야 말로 요즘 유행하는 '중요한 건 꺾이지 않는 마음'이 어울리는 인물이다. 이렇듯 탄지로가 삶을 대하는 자세를 보면, 부끄러움을 느끼게 된다. 이런 고고한 정신은 주인공인 탄지로에게서만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인간에 대한 사랑을, 렌고쿠 쿄주로'
귀멸의 칼날 전 회차를 통틀어서, 가장 사랑하는 인물을 세명 정도 꼽으라면 그중 하나가 렌고쿠 쿄주로 일 것이다. 어렸을 때부터 강하게 태어난 렌고쿠는 어머니에게 '강하게 태어난 이유는 다른 사람을 돕기 위함'이라는 가르침을 받고, 강인한 육체와 정신력으로 단련해 결국 귀살대의 염주 자리에 오른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폐인이 돼버린 렌고쿠의 아버지는 그가 주가 된 것을 인정하지 못하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귀살대의 임무를 다한다. 무한열차 편에서 렌고쿠는 탄지로 일행과 무한열차에 올라 하현을 처리하고, 후반부에 등장한 상현 아카자에 의해 장렬하게 죽음을 맞이한다. 렌고쿠가 죽음을 맞이하는 문제의(?) '아카자와의 전투신'에서 렌고쿠를 사랑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장면이 등장한다. 인간이었을 때의 어떠한 사연 때문에 약함을 참을 수 없이 경멸하고, 그래서 궁극의 강함을 추구하는 상현 오니 아카자는 렌고쿠의 강함과 기개에 오니가 될 것임을 제안한다. 사람의 몸은 늙고 병드니, 오니가 되어 불멸하는 몸으로 강함을 겨루자고 말이다. 하지만 이에 렌고쿠는 사람은 늙고 병들기 때문에 참을 수 없이 아름다운 것이라고 얘기하며 오니가 되라는 제안을 칼같이 거절한다. 렌고쿠의 그 한마디가 그간 사람은 왜 병들고 약해지는가에 대해서 허무함과 분노만을 느끼던 나의 뺨을 후려(?) 갈겼다. 이렇게 렌고쿠는 내가 사람임을 다시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도록 깨우친다.
이렇듯 귀멸의 칼날 작가는, 그가 만든 인물을 통해 우리에게 극복과 사랑의 메시지를 던진다.
우리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야 한다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름답다고. 그 메시지는 이렇게 나를 덕질하게 만들고, 비극을 극복하게 만든다.
귀멸의 칼날은 작화가 좋기로 유명하다. 자연스러운 CG, 3D, 2D의 조화가 아주 잘돼있어, 매번 새로운 기수가 나올 때 어김없이 새로운 감동을 준다. 특히 '환락의 거리'편의 전투장면은 입을 닫고는 볼 수 없다.
(그냥 직접 보는 것을 추천한다.)
귀멸의 칼날은 사운드 트랙이 매번 덕후들의 마음을 울린다. 무한열차편의 아카자와 렌고쿠의 전투신에서 나온 음악은 특히 더 좋아서, 출근길에 자주 듣기까지 했다. 시대상에 맞게 적당히 고전적인 느낌과, 일렉 사운드가 적절하게 조합되어 있어서 안 들어봤다면 한 번쯤 들어보는 걸 추천한다. 또한 각 캐릭터의 테마는 캐릭터의 성격과 상황에 맞게 절묘하게 만들어져 듣기만 해도 해당 캐릭터에 몰입되는 감상을 준다. (무한열차 편, 탄지로가 꿈에서 가족들과 만나는 장면에서 탄지로의 테마곡이 흘러나올 땐 눈물을 참을 수 없었다.) 귀멸의 칼날 사운드 트랙을 담당하는 분은 실로 감성 변태가 아닐 수 없다.
귀멸의 칼날 사운드 트랙 몇 곡을 추천해 본다.
1.炎- LiSA
2. 탄지로의 노래 (Tanjiro no Uta)
3.Akaza vs Rengoku Theme-Samuel kim
귀멸의 칼날은 전개가 빠른 편에 속한다. 질질 끄는 것이 없이 한 회에 할 수 있는 얘기는 한 회에 끝내버린다. 그러니, 보는 사람도 지치지 않고 계속 볼 수가 있다. 참을성 없는 내가 이 시리즈를 오랫동안 좋아할 수 있는 데는 이런 빠른 전개속도가 한몫했다고도 볼 수 있다. 주인공인 탄지로가 소년물의 여타 등장인물들이 그러하듯이 약하고, 의지만 넘치던 인물에서 거의 먼치킨 캐릭터가 되기까지의 과정이 빠르게 진행되며 보는 이들로 하여금 쾌감을 느낄 수 있도록 한다. 또 열린 결말이 아니라, 확실하게 닫힌 결말로 끝나는 것도 장점이라면 장점이라고 할 수 있다. 애매하게 악인을 살려두는 엔딩이 아니라는 것이 속 시원한 포인트. 다만 이 것은 후속작이 없다는 얘기이니 귀멸의 칼날 덕후로서는 조금 슬픈 부분이기도 하다.
귀멸의 칼날은 꽤 심각한 상황 속에서도 유머를 집어넣어, 무게감의 완급을 조절한다. 대표적인 예를 들어보자. 어떤 심각한 상황에서 탄지로가 쓰는 '비기'라는 것은 현란한 호흡법이 아니라, 딱딱한 머리로 내리치는 박치기이다. 어떤 이는 이런 식의 전개가 다소 뜬금없다고 비판한다. 하지만 나는 이런 식의 귀칼 식 유머를 사랑한다. 사실 심각한 상황 속에서 가장 중요한 건 다른 게 아니고, 가벼운 농담과 유머가 아닐까? 잠시 웃어봐 하는 목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또 귀멸의 칼날에서 표현되는 다소 우스꽝스러운 묘사, 예를 들어 멧돼지 탈을 쓰고 있는 이노스케의 모습. 이 우스꽝스러운 모습뒤에는 나름대로의 절절한 사연이 있고, 탈 안에는 눈이 빛나는 잘생긴 청년의 얼굴이 있다는 반전이 있다. 나는 이런 계란을 까먹는 것 같은 귀멸의 칼날 식 반전 연출을 좋아한다.
어쩌면 숨도 안 쉬고 적어 내려온 이 글의 전개가 몹시 엉성하게 느껴지고, 업로드하기에 부끄러움을 느끼지만 이 작품을 힘내 사랑하는 마음은 한치도 부끄럽지 않다. 누군가에게 이 글이 닿아, 멋진 작품을 접할 수 있는 기회가 되기를, 그리고 나처럼 위안받을 수 있기를!